배 뭉치면 누우라던 나라 vs 배 두드리며 춤추는 나라
난 두 아이의 엄마로, 프랑스에서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보고 들은 게 한국식 정보가 더 많았으나, 실제로 내가 사는 곳은 프랑스라는 점에서 오는 간극이 컸다.
2022년 첫 임신.
첫 번째 임신 때는 누구나 그렇듯 "유난"인 편이었는데, 이는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시작되었다.
임신을 "네이버 블로그" 및 "맘카페"로 배운 나는, 두 줄을 확인하자마자 초록창에 있는 많은 글들을 읽었다. 최대한 빨리 초음파를 보고 임신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온몸이 근질거렸으나, 남편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권고 기준대로 조금 더 지나고 심장이 뛰는 게 확실해질 무렵에 초음파 예약을 잡자는 입장이었다.
나는 자궁 외 임신이면 어떡하냐며 (?) 내가 죽어도 좋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고, 그렇게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의사를 볼 수 있는 병원을 예약했고, 그는 파리 시내 중에서도 가장 비싼 동네의 한 병원이었다.
후회는 빨랐다.
의사는 점처럼 보이는 아기집을 보여주며 태연하게 말했다.
"아직 심장도 안 뛰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자궁 외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찍 왔다고 하니 약간의 한숨을 쉬며, 인터넷이 환자들을 다 망쳐놨다고 (나이 있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진료 예약 플랫폼 같은 게 생겨서 이렇게 너무 쉽게 진료 예약을 잡는 게 아니냐는 말을 했다.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내가 맘카페에서 주워들은 정보들을 줄줄이 늘어놓자, 의사는 잠깐 황당하더니, 프랑스 기준으로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임산부들은 화장도 안 하고, 샴푸도 다 바꾼다는데 그래야 하나요?"
내 질문의 클라이막스였고, 결국 의사는 말 그대로 빵 터져서 끅끅대는 상황에 이르렀다.
의사가 숨을 고르고는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임신한 거예요. 아픈 게 아니고요."
한국에서는 임신할 여성을 바람에 날아갈까 무서운 존재로 여긴다.
뭔가 하면 안 된다고 하고, 무조건 쉬라고 하고, 기댈 곳이 필요하면 당연히 양보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조금만 배가 불러도 주변에서 "조심해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배가 뭉치기라도 하면 그건 당장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호이다.
만삭 임산부는 더 심하다. 난 둘째 임신 막달에 혼자 차 타고 출산병원에 다녔는데,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병원이 겨우 차로 5분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그 모든 말들이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하지만 그 과잉 배려가 때로는 임신부를 독립적인 존재로 보기보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환자"로 취급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임신을 한다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
직장에 나가고, 회의에 참여하고, 퇴근 후 친구를 만나 맥주 대신 주스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운동을 계속하는 임신부도 많고, 유모차를 끌며 두 번째, 세 번째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도 흔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임신한 몸으로 테니스를 쳤고 (나는 개인적으로 둘째 임신 후 테니스를 관뒀는데, 이는 내가 초보이기 때문. 그분은 실력이 상당했다.) 취미로 춤을 추시던 분도 임신 8개월까지 계속 춤을 추었다.
이렇듯이 곳에서는 임신을 할지언정, 본인의 삶은 지속된다.
물론 임신은 분명히 특별한 상태다. 평소보다 피곤하고, 몸이 무겁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편함이 몰려온다. 그렇다고 해서 병처럼 격리되거나 무력하게 취급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건 과잉보호가 아니라 적절한 배려와 존중이다.
실제로 임신한 상태로 지하철에 들어가면, 말 그대로 "모세의 기적" 이 일어나곤 한다.
임산부 자리 같은 건 없다. 노약자석만 전차 맨 뒤쪽에 위치하는데, 사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전에 누군가는 꼭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리를 양보할 테니까.
프랑스에서 임신을 했다면 꼭 기억하자.
임신은 병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것 또한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한 생명을 품으며 살아간다.
병자가 아니라, 창조자이자 돌봄의 주체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