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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플레인 걸 때는 냉정해져라

목소리 큰 사람이 진다.

by 마담 히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항상 지르고, 자기주장을 밀어붙임으로써 자기의 이익을 더 챙기고 안 될 것 같던 일도 되게 만드는 경우를 뜻한다. 보통 싸울 때, 혹은 컴플레인 걸 때에 해당되는 말인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 말은 꽤나 옳은 말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이 잘못 나왔을 때, 행정기관에서 서류가 꼬였을 때, 결국 더 정확하게, 세게 말하는 쪽이 원하는 걸 얻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고객이 왕이다"라는 말이 진리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왕이 호통을 칠 때 신하는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매니저 불러!"가 상대를 제압하는 주문처럼 쓰일까. 목소리를 높여서 문제를 제기하면, 결국 담당 직원은 더 윗사람을 불러오고, 그제야 일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 이런 상황들을 목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강하게 말해야 원하는 걸 얻는다", 즉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내 경험상,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우리가 불편함을 느껴 항의하는 순간, 이미 감정은 끓어오른다. 서비스가 엉망이었거나, 상품에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단순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건 쉽다.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도 그 순간에는 통쾌할 수 있다. 나 또한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아웃사이더같이 속사포 랩을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런 태도가 곧바로 역효과를 낸다. 오히려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대화는 바로 막혀버린다. 점원은 더 느긋하게 굴거나, 차갑게 "그럼 경찰을 부르라"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화를 내는 고객은 설득력 있는 정당한 컴플레인을 거는 사람 이 아니라 "문제가 되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어쩌다 시비가 붙은 상대방일지라도, 데시벨이 높아지는 순간 자리를 떠날 수도 있다. 그는 당신이 무서워서도,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어서도 아니다. 단지 상대하기 불쾌하고 피곤해서 피하는 것이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어떤 방식으로든 바로 대화를 원천 차단했다는 것은, 당신은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한다. 다 내뱉으면 속이야 시원하겠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이게 과연 "내가 이기는 방식"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프랑스에서 컴플레인을 걸 때는 냉정해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왜 부당한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해결책이 무엇인지 간단하고 분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감정을 절제하고, 단어를 차분히 고르며, 때로는 서류나 증거를 조용히 꺼내 보이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설치가 몇 주째 미뤄지고 있을 때, 한국 같았으면 "이게 말이 되냐!"며 언성을 높이거나 이메일을 하루에 10통씩 써가면서 쪼아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차분하게 계약 조항을 짚고, 내가 낸 금액과 지연된 날짜를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는 게 훨씬 빠른 길이었다.


결국 이기는 사람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침착하게 자기주장을 유지하는 사람인 것이다.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온도를 낮춘 목소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 그게 프랑스식 사회에서 진짜 힘을 발휘하는 방식이다.




냉정함은 상대의 실수를 드러내면서도 모욕하지 않는 힘을 가진다. 차분한 태도는 불편한 진실을 날카롭게 드러내지만, 동시에 대화의 문을 닫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컴플레인을 걸 일이 있다면 일단 냉수 한 잔 들이켜고 몸의 온도를 낮추는 것부터 시작하자.

결국 이기는 사람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라, 냉정함을 끝까지 유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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