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싸우고, 사장한테 반말하는 나라 프랑스.
한국의 존댓말 문화는 매우 명확하다. 나이별, 직급별, 혹은 나이가 같아도 친하지 않다면 존댓말.
물론 나도 30이 훌쩍 넘은 지금, 같이 늙어가는 사이니 (?) 친해진 언니동생들과는 반말을 슬쩍 섞어서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존댓말은 조금 특별하다. (그렇다, 프랑스에도 존댓말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말(tutoiement)과 존댓말(vouvoiement)의 사용이 굉장히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vous냐 tu냐,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초반에 가장 헷갈렸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반말 (Tutoiement)과 존댓말(Vouvoiement)의 구분이었다.
물론 단어의 뜻만 보면 쉽다.
Tu는 너, Vous는 당신 혹은 너희들/당신들이라는 복수를 뜻한다.
"tu"를 쓰면 가까운 사이, "vous"를 쓰면 예의 있는 표현—이라는 공식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이 단어 하나에 사회적 거리, 세대 차이, 권력 구조, 친밀도, 취향(!)까지 전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처음 만난 사이의 사람과 대화를 할 땐 긴장을 놓지 않는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언제 반말로 변할지 모르기 때문.
약간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하기와 같이 반말 /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젊은 사람에게 길을 물을 때 → Vous(존댓말)
아기나 어린이에게 말을 할 때 → Tu (반말)
회사에 있는 60대 동료에게 → Tu (반말)
우리 회사 법인장님한테 → Tu (반말) (하지만 웃긴 건 처음 법인장에게 자기소개를 하니, 본인을 Tu 혹은 Vous 내가 편한 대로 불러도 된다고 했다.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반말 (Tutoiement)를 하는 게 불편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물은 거지, 절대 함정(?) 질문이 아니다. 나는 반말을 선택했다.)
일 때문에 연락하는 거래선 사람들 → 처음에는 Vous(존댓말) 하지만 조금 지나면 슬쩍 Tu (반말).
같이 일하는 협력업체 →처음에는 Vous(존댓말)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Tu (반말). 하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경우에는 (일을 심각하게 못한다. 덕분에 고생 좀 했다.) 거리를 두기 위해 존댓말을 한다.
단순히 "나이 많은 사람에겐 존댓말, 친구나 동갑에겐 반말"이라는 한국식 규칙은 통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나이보다도 "분위기"와 "거리감"이 기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말을 놓았는데 반대쪽이 말을 놓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당신을 존중한다는 뜻이라기보단, 적정거리를 두고 싶다는 뜻이다.
나는 이 관계의 미묘한 룰에 적응하느라 꽤 오래 걸렸다.
지금 tu 써도 되나? 상대가 먼저 tu를 썼는데 나도 해도 되나? 등등 고민이 많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그 가족을 처음 만나러 간 자리였다.
부모님에게는 당연히 존댓말인 vous. 문제는 누나였다.
남편 누나는 남편보다 7살, 나보다 9살 많은 상황.
나는 긴장하며 남편에게 슬쩍 물었다.
"존댓말 하면 되지?"
남편은 나를 그럴 줄 알았다는듯한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말 놔. 존댓말 하면 자기 놀린다고 생각할걸"
그렇게 나는 9살 차이 나는 남자 친구의 누나와 바로 말을 놓았다.
이것이 프랑스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싸울 때도 존댓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감정이 격해지면 반말로 소리부터 지르겠지만, 댓말로 충분히 싸우고 긁을(?) 수 있다.
존댓말이라고 해서 존중하는 표현이거나, 반말이라고 해서 무례한 표현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내 상사들에게 반말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젠 나만의 규칙을 세웠다.
그냥 처음엔 vous로 시작하고,
분위기 괜찮으면 "On peut se tutoyer? (우리말 놓을까요?)" 혹은 상대방이 말을 놓았다면 나도 말 놓기. 하지만 조금 불편하다면 그대로 존댓말.
이게 프랑스에서의 "언어로 거리두기"방식이다.
말투 하나로 내 태도를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반말과 존댓말은 사회적 코드이자 관계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