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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일라KAYLA Mar 27. 2017

부르고뉴 지방 200년 전통의 카페테리아에서 일하기

프랑스 워홀비자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만30세 미만의 성인에게 부여되는 "한 국가당 한 번씩, 단 1년간만' 가능한 비자입니다.


제가 프랑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은 것은 바야흐로......2016년 6월6일.

지금으로부터 무려 9개월 전이군요. 달리말하면 지금 저에게 남은 비자 기간은 약 2개월이네요. 비자를 받기까지는 희망에 부풀었고, 받고나서는 뭔가 다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현실은 드라이 아이스처럼 너무나 차갑고 뿌연 연기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했습니다.

'학교에 가서 언어라도 제대로 배우고 있자.'

언어를 배워야 말이라도 해볼 수 있고, 고용주 입장에서 프렌치가 아닌 '나'아시아 여자애를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줄 수가 있다!


근데 사실 이것 또한 큰 꿈이었어요. 그래서 그냥 잠자코 공부나하고 한국 학생들도 만나고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하면서 숨 고르는 시간을 가졌고...얼마전 한국에도 다녀왔겠다..일단 '이력서나 써서 한번 돌려보자!' 생각을 했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실행하는 와중에도 불안감과 우울함은 시도때도없이 찾아왔고요...이를테면 이런거죠,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라고 워홀비자 받은건가,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한국에서 일하는 게 더 낫겠다. 나는 진짜 여기서 낯선 이방인인 주제에 아무 쓸모도 없는 애구나. 아무도 날 몰라봐주고...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래도 꿋꿋하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썼습니다.

한국하고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사람인, 알바몬' 같은 종합일자리정보센터(?)가 몇 개 없고요...대부분 회사 본사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넣거나, 우리식의 알바(시간제 서비스직 근무?)의 경우, 길거리 상점에 구인광고가 부쳐져 있어요. 그러나 아주 '아날로그'적인 방법은, 그냥 이력서를 들고 무작정 찾아가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을 좀 뵐 수 있나요? 제가 이력서를 들고 왔어요. (하며 '방긋' 웃는다)"


처음은 비교적 큰 브랜드 위주로 이력서를 넣었어요.

1. 까르푸, 모노프리같은 대형마트의 계산원

2. 스시, 중국식당의 서버

3. 맥도날드 주방보조 및 주문받는 직원

4. 집근처 성당 앞 광장의 카페테리아

5. 학교다닐적에 매일 지나치던 카페테리아(꼭두새벽에도 사람이 많던 곳)



1,2은 아예 답변도 없었고요, 3번은 면접을 보았으나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고, 4번은 긍정적이었는데 처음엔 카페서빙에서 갑자기 자기 딸이 하는 식당(2분거리에 위치)에서 주방보조로 일해야하고 5월달부터 계약할 수 있다고 합디다...?


'에휴 그러던지 말던지, 5번 카페에도 이력서 내보자!' 하고선 찾아갔는데...마침 사장이 있었고, 이력서를 보더니 잠깐 저쪽에 앉으라고...이력서 내용을 쭉 보다가,  취미칸에 적어놓은 '태권도'가 뭐냐고 묻습니다.


"태퀀토가 뭡니까?"

"태퀀토는....(사실 그냥 적은건데..)쿵푸판다 같은겁니다."

"쿵푸퐌다?!"

"네 애기들 보는 만화영화 있잖아요. 판다가 무술하는거요. 그런거 같은거에요! (빵긋 미소 발사)"

"아~~~그거 우리 애들도 좋아하는데! 일단 우리 테스트 한번 해보죠. 그리고나서 서로 잘 맞으면 일해보는 걸로 하고, 테스트 기간에도 최저시급으로 임금지불 해드립니다. 다음주 월~수. 아침9시부터 오후4시까지. 괜찮아요?"

"아 정말요? 네 좋아요!"

"다음주 월요일 아침 9시에 봅시다."


악수하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돌아오는길에 "예쓰 예쓰!!!!!!!" 소리지르고

월요일을 기다리며 스트레스 이빠이 받아가며......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월요일!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침에 왔다가 출석도장 찍고 오후에 또 오고

친구랑 같이 오고,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기도하고...단골이 얼마나 많던지, 나한텐 다 비슷비슷한데

이미 일하고 있던 서빙선배들은 그 어르신들을 다 기억하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척척 커피배달.

그러니 팁은 덤이고...말많은 노인들 다 맞춰주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에게 나는 그냥 '아시아 여자애'. 아시아 여자하면 떠오르는 까만 아이라인에 빨간 입술을 한 여자신입. 말귀 못알아들어도 웃고, 모르니까 또 웃고, 돈계산 잘못해줘서 웃고 근데 열심히 일은 하고 빨리빨리 움직이고.


그러니 그 단골손님들이 먼저 인정해주고 받아주고, 사장한테 칭찬해주고.

동네 유지인 사장은 또 거기서 더 감동을 받고,

역시 쿵푸판다와 태권도의 힘이래나 뭐래나.

그래서 정식 계약 체결했고 비자 끝나기 전까지 일하는걸로....

그리고 한국에서 돌아오면 또 바로 일하는 걸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워홀비자로 한인마트나 면세점에서 아시아인들 상대하는 일을 하는 것은 꽤 쉬운편이에요.

그리고 파리나 대도시에서도 일하기 쉬운 편이고요

근데 저같이 시골에 살거나, 작은 도시에 있는 경우에는 쉽지 않지요..집안 대대로 카페를 운영해온 사장님은 워홀비자를 처음본다고 했고 또 외국인은 처음 고용해본대요. 그래서 저는 저대로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첫 발자국을 잘 만들어야할텐데, 그래야 이 사람들에게 아시아에대한,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남을텐데....

말하자면, 안창호선생의 마음이지요! 허허!


오늘은 말이 많이 길었네요. 다음번에는 사진많이 넣어서 글 올릴게요.

매일매일 찾아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싣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카페 일, 서빙하는 일이 뭐라고 이렇게 좋을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은 생산적인 일을 해야 우울감도 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려! 집에 있는 것보다 백만배는 나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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