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역사를 2시간 만에 마스터한다
이번 홍콩 여행은 상당히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더 더워지기 전에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고
휴가도, 예산도, 체력도 부족해서 먼 나라는 안되고
어쩐지 일본은 가기 싫고... 거기다 가는 비행기에서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까지 봐서 더 싫었나.
요즘은 초등학생이 합법적으로 여행을 갈 수 있는데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면 된다고 한다. 회사에서 탈탈 털리면서 잊고 있었는데 이제 2학년이라고 본인이 직접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언제까지 신청서를 내야 한다고 말도 해준다.
체험학습 사유에 '그냥 놀러 가요.'라고 쓸 수는 없으니 '박물관에 가서 역사체험여행을 하겠습니다.'라고 써서 냈다.
그러고 보니 땅값 비싼 홍콩에 박물관이 꽤 많다. 그것도 도심에!
쇼핑의 도시? 박물관의 도시!
홍콩에는 뮤지엄 패스가 있다. 구입 후 일주일 이내에 7개의 박물관(홍콩 역사박물관, 홍콩 문화유산 박물관, 홍콩 해안경비 박물관, 홍콩 예술관, 홍콩 과학박물관, 홍콩 우주 박물관(우주 극장 제외), 쑨원 박물관)을 들어갈 수 있는 패스로, 무제한 입장 가능. 물론 일부 특별 전시는 제외될 수도 있다지만 이게 어딘가...
다행인지 이번에는 무료인 홍콩 역사박물관과, 저 패스에 포함되지 않는 홍콩 해양 박물관에 갔으니 다음에 또 올 이유가 만들어졌다.
홍콩 역사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쳐 중국으로 반환된 후 현재까지의 홍콩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의 전시실은 크게 자연사(홍콩의 자연환경), 고대사(선사시대, 한나라에서 명나라까지), 민족사(홍콩의 민속문화), 지역사(아편전쟁과 홍콩의 양도, 영국과 도시 성장의 초기, 일본 강점기, 현대와 중국 반환)등 네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http://www.lcsd.gov.hk/CE/Museum/History/en_US/web/mh/index.html
꽤 알차게 꾸며놓은 데다, 입장료는 무료...
가볍게 둘러봐도 2시간 전후는 걸리는 코스이니 반나절을 여기에 할애해도 괜찮다. 호텔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이곳에서 오전 시간을 보낸 후, 14시에 시작하는 애프터눈 티를 했더니 딱 맞았다!
중국 안의 또 다른 섬나라, 홍콩
홍콩은 1997년 영국령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20년 넘게 지났지만 도로 방향도 아직 영국과 같고, 밀크티가 유명하고, 많은 곳에서 영어가 통한다.
그 유명한 아편전쟁(1839~1842)으로 영국은 총독부를 홍콩에 설치했다. 1898년부터 99년간 영국령이었으며, 영국의 무역항으로 이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3년여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는데(1941~1945), 이 시기는 전시 내 한 섹션으로 따로 분리되어 있다. 전쟁 전 인구가 160만, 전쟁 후에는 거의 100만 정도가 줄어들어 60만에 불과했다고 한다. 식량 배급을 받았으며,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았던 듯하다.
배경은 상하이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태양의 제국(1987)>를 보면 이해가 쉽다.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636
1945년 8월, 영국은 종전과 함께 지배권을 돌려받아 1997년까지 다시 홍콩을 통치한다...
비슷한 점이 많은 두 섬나라에게 지배당하다니 뭔가 참. 섬나라는 다 나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진으로 보는 전시
전시 곳곳에 상영 중인 영상물들은 예상외로 상세했다. 당시 촬영 필름을 적절히 사용해 근현대의 홍콩을 느끼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위치때문에 인기를 얻었지만
역시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은 위치가 최고다. 홍콩도 그 위치 덕을 보았고, 위치 때문에 부대끼기도 했다.
영국이 이 위치 좋은 도시를 영국령으로 만들어 활용했던 이유를 체감할 수 있는 박물관이었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그럴진대, 과거에는 위치의 영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그 역사를 2시간 동안 지나오면서... 내가 현대에 태어난 것이 감사했다.
100년 전에만 살았어도 개인, 그것도 평민이라면 그 역사에 휩쓸려버렸을 것 같아서...
지금이라고 휩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의 인권이 조금 더 보장되는 사회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다음 날 소나기를 뚫고 페리를 타고 이동하면서, 과거에 이 바다를 건너며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도 상상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역사가 점점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생각이 많이 끼어드는 걸 보니 늙었다는 증거겠지.
다음에는 비를 피하려 들어갔다가 구경하게 된, 홍콩 해양 박물관을 소개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