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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dame Snoopy Jul 01. 2018

그래도, 돈보다는 자존감

박정선 작가의 <희망 퇴사>

어느 오후, 사무실 자리를 잠시 비웠다 돌아오니 이 책이 책상 위에 있었다.


회사에서 내놓고 읽기에는 좀 그런 제목. <희망 퇴사>

퇴근 직전이어서 잽싸 들고 나왔는데...


뭐, 이 분이 글을 잘 쓰는 건 원래 알고 있었고

몇 년 전 8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 이벤트'를 진행한 내용을 기고한 글은 꽤 인기를 얻기도 했다.

https://social.lge.co.kr/people/howto_resign/


맞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사직서'라는 글자를 새기고 다니는 거 아니겠는가.

비록 이제는 흰 봉투에 사직서라고 적어 내미는 게 아니라, 사내 시스템에서 퇴직 신청을 해야 가능하지만 말이다.


그 재미있기도 하고 마음 찡한 이벤트 이후로도 몇 번의 이직과 퇴사가 있었다고 하니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꽤나 흥미가 일었다.


다만 최근 러시를 이루는 퇴직 관련 서적들에 묻히면 좀 안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가 누군가 ㅎㅎ

일단 '글로 밥벌이를 해 온' 박정선 님이 아니던가 ㅋㅋ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내리기에 부담 없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거기에 회사생활에 대한 냉정한 분석도 있다.


일단, (언젠가는 반드시) 퇴사를 해야 할 운명이므로 읽어보자.


퇴사는 끝인가, 과정인가


60~70년대에 입사한 윗 세대에게는 퇴사란 끝을 의미했다. 한번 들어온 직장에서 나름 충성(!)을 바치고, 차근차근 진급을 해서 임원을 달고 정년퇴직을 하는 것이 올바른 직장인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직장생활이 아무리 3, 6, 9로 위기를 맞는다지만 연 단위가 아닌 개월 단위로 퇴사를 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지 않고, 반드시 공채 출신이어야만 임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퇴사를 해도 다음 직장은 기다린다. 반드시.

다만 적성에 맞지 않아한 퇴사임에도 더 안 맞는 직장에 갈 수도 있다.

연봉이 적어서 퇴사했는데 더 적은 연봉으로 일하게 될 수도 있다.

인간관계가 더러워서 나왔는데 싸이코 비율이 훨씬 높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해야만 할 때가 온다.


왜 퇴사하려고 하세요?


위에 나온 이유 중 어떤 게 있을까


작가는 '퇴사를 해야 할 이유는 언제나 차고 넘쳤다' 고 프롤로그부터 얘기한다.


일이 너무 많아서,

일이 너무 없어서,

상사가 별로여서,

오너가 진상이어서,

열심히 준비한 프로젝트가 엎어져서,

기껏 잘한 성과를 누가 가로채서,

거래처 갑질이 심해서 등등.


따라서 그 모든 사직서에 적혀 있던 '일신상의 이유'라는 말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프롤로그 '최종 병기, 사표' 중에서


퇴사의 이유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이 퇴사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이유가 될 수 있다.


혹자는 '돈 때문에 버틴다' 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돈 때문에, 내가 바치는 시간과 열정을 따지면 도대체가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수익률)가 안 나와서 나간다고 한다.


물론 사람 사는데 돈이면 다 된다고도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작가는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자존감(self-respect)이라고 말한다.


워라밸은 눈곱만큼도 찾기 어려운 직장에서 최저시급을 조금 넘길만한 급여를 받으면서도 그 일을 지속하는 이들도 있다. 그건 아마 그들이 자존감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서도 퇴사자는 언제나 생긴다. 그건 위와 반대 사례일 듯.


나는 이 글을 월요일을 앞두고 작성 중이다.


늘, '이 회사를 그만두면 OOO을 하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출근해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일을 할 것이다.


하루의 1/3 이상을 보내고, 그 이상으로 영향을 받는 곳. 종종 육두문자를 날리고 싶을 만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작은 성취감에 고무되기도 한다. 때로는 가족보다 내 패턴을 잘 아는 이들도 존재하며, 개인이라면 받기 어려운 인정을 회사 이름 아래 받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언젠가는 늙어서 직장인의 로망인 '백수' 생활을 하게 될 거라면 한동안 좀 더 치열하게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죽기 전까지 일을 했으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고용인으로 일하는 것은 길어야 20~30년 정도일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있다.


일단 이 책은 직장 생활을 몇 년 하면서 본인이 약간 세파에 찌들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사표를 백만 번 써본 이들 말이다.


하지만 취업준비생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이를테면 결혼은 아직 멀어 보이는 젊은 대학생이 육아서를 심각하게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이미 중간관리자 급 이상의 어른들이 이 책을 읽으면 조금 짜증나실지도 모르겠다. '아니, 요즘 애들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나?'




사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사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작가님이 책을 보내주셨다.

감사인사를 전하며 이 얘기를 하니까 "그러면 퇴사시키고픈 사람한테 선물해주세요~"라는 대답이 왔다.


몇 년 전 나와 같은 직장에 있다가 이직한 분을 포함, 3명의 브런치 작가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그들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책일 거라 기대해본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73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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