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dame Snoopy Aug 26. 2018

이 가지 철의 끝을 잡고

가지를 먹지 않던 사람이 가지를 좋아하게 만들어 준 음식들

가지 밥을 먹으면서 이 글을 떠올렸지만,

사실 난 20대 초반까지는 가지를 싫어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먹긴 했지만

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색깔.

보라색, 그것도 진한 보라색을 미치도록 좋아하지만 음식이 왜 보라색인 거냐며...


그래서 유희열의 <익숙한 그 집 앞>에서 가지가 형광 보라색이라 안 먹는다는 이야기를 봤을 때 어찌나 동질감이 느껴지던지...



어디선가 '가지는 아무런 영양가가 없다'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가지를 밀어놓곤 했다.

알고 보니 잘못된 이야기였지만..


가지는 독특한 향이 나지는 않지만, 익히면 흐물흐물해지는 질감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내게 가지가 맛있다는 걸 알려준 음식들을 소개한다.


맥주와 찰떡궁합일 거야, 가지 앤쵸비 피자


가지 앤쵸비 피자는 거의 환상 속의 음식이다.

나에게 가지를 먹게 해 준 음식이니...


여러 가지 정황상 분명히 아닌데, 자꾸 이탈리아 어느 식당에서 먹은 듯한 생각이 드는 건 그만큼 이 음식이 이탈리아를 느껴지게 해서 일듯.


그 피자는 꽤 단순했다.

진한 토마토 베이스도 아니고 넓게 썬 가지와 통 앤쵸비가 올려진 얇은 피자였는데...

분명 맥주와 먹지 않았을 텐데 한 입 먹으니 '이건 맥주 안주로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맥주를 많이 마셔보기도 전의 일인데 지금까지도 그 맛이 기억에 남는다.


서울 양평동 코끼리 베이글. 베이글 반죽에 토마토 소스와 가지가 올라가 있다. 추억의 가지 앤쵸비 피자는 아니지만 그나마 가장 비슷할듯


그때부터였다.
가지를 좋아하게 된 게...


고향의 맛, 가지 브리치즈 샌드위치


난 분명히 한국 사람이고 된장찌개와 김치, 청국장도 좋아한다.


하지만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식이 있는데...

잘 익은 가지를 적당한 두께로 썰어 구운 뒤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뿌려 썬드라이드 토마토와 함께 먹으면 마음에 안정이 온다.


가지피자로 '가지도 먹을만한 음식이구나'를 느낀 뒤 고기도 없으면서 이렇게 훌륭한 샌드위치는 처음이라고 생각한 음식이 바로 이것, 가지 브리치즈 샌드위치다.


잘 구운 가지와 가지 두께로 썬 브리치즈, 썬드라이드 토마토에 페스토 소스를 바르고 루꼴라도 약간 넣으면 천상의 맛을 만날 수 있다. 가지가 고기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식사로도 훌륭하고 와인 안주로도 당연히 잘 어울리는 맛이다.


가지는 역시 기름과 만나야 제맛, 어향 가지


이번에는 중국식이다.


의사결정권자의 취향으로 팀 회식 때마다 중국 요리를 자꾸 먹게 된다. 언젠가 모처럼 중식이 아닌 메뉴를 골랐는데 하필 그 음식점이 업종 변경을 해서 중국집이 되어버렸다.


셰프가 '신라호텔 팔선' 출신임을 강조하는 사장님의 설명이 어쩐지 못 미더워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음식을 기다렸는데...


의외로 괜찮은 음식들이 하나하나 나오던 중, 어향가지가 나왔다.


 서울 서교동 문차이나의 '어향가지 새우'

두껍게 썬 가지 중간에 깊게 칼집을 내서 새우 다진 것을 넣고 튀겨냈다. 그리고 청경채, 죽순 등 야채와 슬쩍 볶아 어향소스를 넣고 녹말물로 걸쭉하게 만든 음식이다. 


술만 안 마셨어도 더 잘 먹을 수 있었는데... 회식인데 술을 안 마실수 없어 아쉬웠던 음식이다.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집밥 백선생 가지밥



마지막으로 가지를 찾게 만든 음식은 집밥 백선생에서 본 '가지밥'이다. 사실 이 음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파 기름에 볶은 가지를 넣고 밥을 지어
간장 양념장에 비벼 먹는다


그게 뭐가 그렇게 맛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직 가지밥을 맛보지 못한 사람이다. 조리법도 간단하니 꼭 가지 철이 지나기 전에 맛보길 권한다. 아마 이 음식을 먹고 나면, 가지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날 것이다.


레시피는 집밥 백선생의 공식 포스트에 친절하게 나와 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681219&memberNo=19357942


여기에 한 가지 더,

생가지도 맛있지만, 반건조시킨 가지를 사용하면 조금 더 진한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다. 가지는 원래 강한 향도 없고, 익히면 형체가 잘 유지되지 않는다. 반건조시켜서 요리하면 가지 형태도 좀 더 살아있고 맛도 좋아진다.

+ 가지를 볶을때 간장, 후추, 맛술로 밑간한 돼지고기를 넣으면 더 맛있지만, 가지만으로도 이미 훌륭하니 꼭 넣지 않아도 된다.


반건조 시켜 냉동 보관중인 가지




누구나 싫어하는 식재료가 있다.

몸에 좋으니까 그냥 먹으라고 하기보다는, 도저히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음식으로 만들어 준다면 결국은 그 식재료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보라색 가지를 정말 싫어했던 나는 이 음식들을 먹고 가지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가지 철이 지나기 전에, 한 번쯤 먹어보면 가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