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고민 중인 며느리를 소환합니다
얼마 전, KTX 예매 피켓팅에 뛰어들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 추석 준비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추석이나 설날이나, 명절이라면 친척들을 만나며 준비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내 한 몸 건사하면 되던 싱글에서 '며느리'라는 신분이 되면 챙겨야 할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론 집집마다 사정은 다 다르겠으나...
대한민국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시가에 갈 때마다 옷차림이 신경 쓰일 것이다.
오죽하면 '며느리룩'이라는 검색어를 사용하는 쇼핑몰이 많을까.
명절에 전 부칠 때 입기 좋다거나, 어른들 오실 때 신경 쓰이지 않아 좋다는 상품 설명도 꽤 공감이 가는 멘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시가 방문용 옷'을 새로 구입하는 모양이다.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추석을 앞두고 '최고의 며느리룩'을 한 번 찾아보자.
처음에는 일명 '청담동 며느리 룩'이라는 스타일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럭셔리하면서도 단정한 30대 여성복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배우였던 심은하의 연기가 인상적인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JhRrlvkEK0k
심지어 네이버 오픈사전에도 아래와 같이 실려 있을 정도다.
[청담동 며느리룩]
단아하고 심플한 분위기의 디자인으로 마치 청담동의 며느리들이 입는 것 같다 하여 나온 신조어
청담동 며느리룩은 20년 전 옷도 단정하니 예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며느리 룩은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인데...
(시가에) 명절에 가는 옷차림
(시가에) 식사하러 가는 옷차림
(시가에) 뭔가 갖다 놓으러 / 가져오려고 가는 옷차림
(시가족들과) 여행 가는 옷차림(아이 있는 버전/ 없는 버전)
여기까지 읽다가 '아니, 그게 왜 신경 쓰일 일이야?'라고 한다면 당신은 남자이거나, 여자라면 비혼 친구들이 대부분이라서 아직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나이일 것이다.
명절이 끝나면 주부 카페 게시판에는 이번 명절의 무용담(?)이 쉴 새 없이 등록된다. 그중 옷 이야기도 꽤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여러 가지 가사 노동이 몰려오니 힘들고, 어색한 친척들과 자연스럽고 예의 있게 지내다 오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내 옷차림까지 참견하는 이들이 있으니 시어머니와 (있다면) 시누이, 시이모 들이다.
결혼하고 첫 명절, 한복 외에도 이것저것 입을 옷을 준비했는데 시어머니는 그리 맘에 안 들었던 것 같다.
본인 옷장을 막 찾아서 발목까지 오는 긴 고무줄 치마를 내밀었다.
네 치마는 너무 짧다
여기서 설명을 좀 하면, 나는 대학교 입학식 때 입은 치마가 가장 짧은 치마일 것이다.
무릎 위로 10cm 정도 올라오는 길이였다.
보통은 무릎길이,
워낙 풀 스커트를 좋아하는 데다 최근에는 맥시 길이가 유행하면서 발목까지 오는 스커트를 입고 출근도 한다.
아마 그때 들고 간 치마도 무릎 길이였을 거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
한참이 지난 후 생각해보니 그분은 나와 키가 20cm 이상 차이 난다. 그리고 그걸 커버하기 위해 항상 발까지 끌리는 긴치마를 입고 꽤 높은 구두를 신는다. 그런 그분이 보기에는 내 무릎길이 치마가 다리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건도 있었고 내 옷차림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 건 접은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막 결혼한 며느리라면 나처럼 신경 안 쓰기는 어려울 테니....
시어머니의 스타일과 비슷한 옷을 준비해서 방문 시에는 그것만 입으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시어머니 옷장에서 옷을 (강제로) 빌려 입는 경우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어색한 며느리에게 일부러 딴지를 걸기 위해 옷을 지적하거나 빌려주는 시어머니는 없을 거라 믿는다.
내 경우는 시어머니를 제외한 전 가족이 남자였는데, 나중에 이런 변명(?)을 들었다.
시아버지 보기에 치마가 짧아 민망하다(무릎길이인데?)
앉아서 전 부치기 불편해 보인다(나는 안 불편하지만 약간 이해해 본다. 실제로 앉아서 부칠 일은 없었다.)
다른 친척들이 보기에 이게 낫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친하게 지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꽤나 불편했다.
'옷도 셀프'로 입는 게 편하다. 내가 부탁하지 않는 한...
세상에 완벽한 게 어디 있을까. 있으면 댓글로 제보 부탁드린다.
하지만 며느리가 원하는 완벽한 며느리룩은 '시가에서 누군가 대놓고 품평하지 않는 옷' 이 아닐까 싶다.
사실 뭘 입고 오면 어떤가.
내 자식과 결혼해서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인데.
눈을 둘 데가 없을 만큼 민망한 노출을 하거나, 같이 앉아 있기 두려울 만큼 위생상태가 불량한 게 아니라면 넌 왜 그렇게 입었냐 , 일하기 불편하니 갈아입으라 등의 참견은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닌가 싶다.
곧 추석이다.
뭘 입고 갈지 고민인 며느리들에게도, 며느리가 어색해서 어색한 말만 하게 되는 시어머니들에게도 편안하고 기분 좋은 명절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