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도 이해하지만 애정이 가는 영화
한국형 좀비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부산행>(2016)을 감동적으로 봤다고 얘기하면, 재미있긴 했지만 그게 왜 감동적이냐고 하는 사람이 많다.
좀비에게 점령당한 부산행 KTX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준 영화라 생각한다. 특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2016)로 로맨틱 코미디 대표가 된 공유의 또 다른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쩌다 보니 부산행을 도깨비보다 나중에 보게 됐기에 더 그랬는지도...
사극과 좀비물을 좋아하는 내게 <창궐>은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실망스럽다는 영화평이 쏟아져도 일단 내가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중요한 또 한 가지, 현빈이 나온다니 봐야지.
* 영화 <창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태평 씨, 언제부터 그렇게 재밌었어요?
현빈은 착실히 연기를 늘려가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잘생긴 외모도 물론 내 취향이지만, 연기가 익숙하지 않을 때도(내 이름은 김삼순, 2005) 그 역할에는 분명 잘 맞는 연기를 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2008)의 정지오 일 때도, <시크릿 가든>(2010)의 김주원 일 때도 점점 더 나은 연기를 보여주면서 그가 아니면 그 배역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물로 변신했다.
<창궐>의 강림 대군 이청 역도 현빈을 위한 역할이 맞다. 약간 껄렁하게 등장해서 세상 혼자 사는 얼굴과 액션으로 모든 걸 다 해낸다.
김성훈 감독은 현빈의 팬인지, 멋진 장면은 현빈에게 다 몰아줬다. <공조>(2017)에서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현빈은 모든 걸 다 해낸다. 칼 쓰고, 말 타고, 뛰어오르고. 일단 현빈의 사극 액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이번엔 개그 담당이다. 자꾸 웃기고, 철없이 굴어서 모든 걸 다 가진 주인공이 이렇게 웃기려고 해도 되나 싶다.(하지만 얼굴이 개그스럽지 않아서 실패)
해병대 입대 전 TvN <택시>에서 보여줬던 모범생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정말 언제부터 이렇게 껄렁하게 재밌었는지 묻고 싶지만,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다 이랬던 것 같아서 연기를 잘 하는 걸로 생각하기로 한다.
분장, 세트, 의상 다 좋은데...
좀비 같은 야귀(夜鬼)가 영화 내내 등장하다 보니, 분장에도 꽤 신경을 쓴 듯하다. 부산행에서도 그랬듯, 우리나라 영화 분장도 이제 흠잡을 데 없다 싶었다.
세트도 좋았고, 특히 의상은 좀비물인데도 참 아름답더라는...
하지만 170억 제작비가 들었다는 이 영화의 단점 중 하나는 드론 샷이 너무 과하다는 거다.
요즘은 드론 샷 없는 영화나 드라마가 별로 없다. 예능도 그렇고... 드론 샷이 나올만할 때 나와주면 시야가 트여서 좋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슷비슷한 드론 샷을 정말 많이 넣었다.
궁궐 위를 계속 보여주는데 자꾸 시대가 헛갈리는 효과(?)를 내는 것 같더라는... 좀비로 궁궐이 뒤덮였다는 걸 보여주는 목적이라면, 반으로 줄여도 아무 문제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횃불 든 백성들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촛불집회 느낌도 나고...(분명 예전이라면 모두 블랙리스트에 올랐겠구나 싶은 씬이었다)
그 많은 떡밥은 누가 다 회수할까
121분이라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수많은 떡밥이 뿌려졌으나, 회수된 건 별로 없어 보이는 게 안타까웠다. 생각나는 것만 대략 적어보자면...
자결한 세자의 부인인 경빈이 강림 대군(현빈)과 뭔가 있었음
강림 대군은 청나라에서 꽤나 자유로운 생활을 했음
여자 빌헬름 텔인 덕희를 강림 대군이 매우 맘에 들어함
청나라 사신은 야귀에게 물려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은데 뒤처리는 어떻게 하나
김자준(장동건)은 야심을 실현할 기회를 엿보다 우연한 기회에 야귀를 이용하게 됐음. 그가 야심을 가진 계기는?
이조(김의성)의 후궁이었다 야귀가 된 후궁 조씨(서지혜)는 야귀가 되기 전 김자준을 친근하게 부르며 오는데 둘 사이에도 원래 뭔가 있었던 것 같음
이 외에도 대체 왜 왕자를 청나라에 보냈나, 왕은 왜 주위에 간신뿐인가, 세자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아랫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결을 하는데 과연 그래서 아랫사람들은 무사해졌나 등등... 궁금증이 가득이다.
정황상 왕은 인조(삼전도 얘기가 나오므로), 세자는 소현세자, 강림 대군은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이라는 걸 인지하고 관람하지 않는다면 조선은 엄청나게 허술한 나라라는 결론이 된다.
모든 걸 다 해준 김비서님(조우진), 정말 멋졌다
내게는 도깨비의 김비서님으로 익숙한 조우진은 이번에도 역시 다재다능한 연기를 보여줬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멋있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도 세자의 서신을 벌써 강림 대군에게 전했고
동료들과 탈출해 제물포에서 야귀가 아닌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야귀가 되어서도 마지막까지 훌륭히 임무를 완수했다. 터미네이터 같은 김자준 만 아니었어도 성공했을 텐데...
영화 말고 16부작 드라마였으면
아이디어 자체는 심플하지만, 이렇게 공을 많이 들인 고퀄 작품이라면 차라리 드라마로 차근차근 모든 걸 담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강림 대군과 경빈의 과거
강림 대군의 청나라 생활
김자준의 출신과 그의 터미네이터 같은 체력, 왜 이렇게 야심을 갖게 되는지
이조가 왜 나라를 저렇게 망치고 있었는지
이런 것들이 추가된다면 혹평 없이, 의외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작품으로 남았을 것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영화는 나온 것을...
현빈의 개그와 조우진의 멋짐이 폭발한 영화로 남기는 수밖에.
CGV 고객 평점도 다 이유가 있다.
네이버 웹툰으로도 연재되니 다음에 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살짝 해 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웹툰을 보니, 의문점들이 어느정도 설명돼 있어 이해가 간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703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