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hall We Cak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dame Snoopy Feb 17. 2018

플라워 케이크를 만들며 깨달은 5가지

꽃을 피워요, 인생을 배워요

책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 케이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라, 케이크 데코레이션에 신경 쓰지 않은 케이크는 정말 궁극의 맛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내 취향이니.


꼭 배워보고 싶던 플라워 케이크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원래 홈베이킹에 관심이 많고 케이크(빵류)에 들인 돈이 많다 보니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품목이었다. 이 수업은 아무래도 기술 전수(!) 같은 면이 있다. 원데이 클래스로는 정말 손가락으로 한번 찍어 맛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려 1년간의 서칭 및 망설임을 거쳐 5주짜리 수업에 등록했다.


겨우 5주 수업을 듣고 창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맛있는 떡 케이크 위에 내 손으로 예쁜 꽃을 올려 보고 싶었을 뿐.(결국 스페셜로 버터크림 플라워도 해 봤다는..)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또 먹으며 몇 가지 느낀 점은 비단 플라워 케이크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이 글은 플라워 케이크 만드는 법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1. 이 세상 전부가 좋아해도, 내가 싫은 건 하지 말자.


위에 썼듯이, 나는 수업을 등록하는데 거의 1년이 걸렸다. 대체 왜?


수업 시간은 선생님과 얼마든지 조정이 가능했고, 수업료가 터무니없이 고가라서 적금을 들어야 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 기간 동안 '내가 좋아하는 플라워 케이크 스타일'을 찾고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플라워케이크, #앙금플라워, #버터크림케이크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수많은 사진이 쏟아진다. 처음에는 '손으로 만드는 꽃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다가 백인백색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체감했다. 꽃의 컬러, 떡 종류, 배열 방법 등 내가 몰랐던 엄청난 세계가 펼쳐졌다.


연예인 계정급의 엄청난 팔로워를 자랑하는 공방도 '대체 왜 이런 케이크를'이라고 생각이 드는 곳도 있었다.(그냥 내 취향이 아닌 것이다.) 반면 팔로워가 일반인 수준이라도 마음에 들어 연락한 경우도 있었다.(아쉽게도 당시에는 클래스 운영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탕수육 먹는 법조차 부먹과 찍먹이 존재하는데 하물며 손으로 만드는 케이크는 더 다양한 취향이 존재했다.


결국 나는 팔로워 숫자는 많지 않지만 꽃의 느낌이 마음에 드는 선생님께 배웠는데 놀랍도록 잘한 선택이었다. 디저트 취향도 비슷해서 더 재미있게 배웠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내 마음에 드는 게 최고다.


5번째 앙금플라워. 떡케익은 단호박인데 맛도 모양도 대만족


2. 일단 시작하자. 첫발은 부끄럽지만 위대하다.


첫날은 짜는 주머니에 앙금을 넣는 것부터 부들부들..

꽃받침에 꽃을 짜다가 몇 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대체 완성은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의외로(!) 괜찮았다.

내가 만든 꽃과 아닌 꽃이 단박에 눈에 띈다 ㅠㅠ

만족을 외치며 집에 와서 먹어본 떡케이크 역시 맛있었다. 계속 망설이기만 했더라면 부끄러운 결과물이라도 시작하지 못했을 텐데..

일단 시작하니 다음 수업이 기대가 됐다. 집에서 한밤중에 에어컨 켜고(당시 여름이었음) 꽃을 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조금 더 일찍 시작하지 못했음을 계속 아쉬워하기도 하고.


시작이 반이다. 이 말은 정말 진리인 듯..


3. 연습 없이 얻어지는 결과는 없다.


첫 수업을 마치며, 선생님이 당부하셨다.

꼭 연습해오세요.
연습 안 하면 다음 주에도 똑같아요.


아무리 취미라지만, 연습이 필요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이 계속 수정을 해 주고, 어설픈 부분이 있으면 바로 다시 보여줬다. 잠깐이지만 마치 내가 선생님보다 약간 못한 실력을 가진 전문가라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수업은 수업일뿐,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분명 장미꽃을 배웠는데 나는 정체불명의 만두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도 몇 번 연습을 거치니 장미 같은 꽃을 내놓게 되었다. 전문가가 되려면 하루 종일 꽃을 짜야겠지만, 취미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위로했다.


뭐든 배우면 복습이 필수다. 특히 손으로 하는 결과물은 더욱더..

초기에 집에서 연습한 결과물


4.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내 손은 처음 만들어보지만, 머릿속에는 그간 보았던 엄청난 플라워 케이크의 이미지가 각인돼있었다. 내가 만든 꽃은 왜 다 못생긴 것일까.


그런데 선생님은 분명 '이 꽃은 이런 이유로 조금 부족해요.'라고 하면서도 일단 보관하라고 했다. 나중에 보면 쓸 곳이 있다면서.


5주차 꽃들. 잘 보면 모양도 다 다르고 이상한 꽃도 많다.

케이크 위에 꽃을 올릴 때, 마음에 들지 않는 꽃들도 다 자리가 있었다. 꽃 하나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구성을 생각해야 한다. 약간 속으로 숨어야 하는 꽃, 옆으로 눕혀야 하는 꽃 등 각각의 쓰임새가 존재했다. 꽃을 올릴때 마다 이 꽃을 버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플라워 케이크도 그렇지만, 인생도 그렇다. 한 가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뭔가 잘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그걸 확 던져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회를 보아 활용해 더 멋진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5. 때로는 과감함도 필요하다.


수업에 재미가 붙어, 버터크림 플라워 케이크 수업도 1주 들었다.


알고 보니 꽃 짜는 방법은 같았다. 하지만 재료의 습성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앙금 크림을, 어떤 사람은 버터크림을 더 쉽게 느낀다고 한다.


버터는 한번 액체상태가 되면 맛이 변해서, 다시 고체상태로 돌아와도 맛이 확 떨어진다.

이게 바로 진짜 크림화이트 컬러. 버터가 녹지 않도록 재빨리 다뤄야 한다.

그래서 버터크림으로 꽃을 짤 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크림을 짜야한다. 손의 체온으로 금방 버터가 녹기 때문이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조심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도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직장이든, 돈 문제든, 인간관계든.


충동적으로 결단하라는 말이 아니다. 너무 오래 망설이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충분히 생각했다면, 빠른 결단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된다.

과감함이 필요했던 버터크림 플라워 케이크




케이크 수업에서도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이 없더라도 케이크는 소중하다. 일본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よしながふみ)의 <앤티크>에 나오는 말로 마무리한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땐 케이크를 준비하세요!
케이크는 행복한 한때에 화려함을 더해주는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한 친구랍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꼭 먹어야 할 케이크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