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엄마는 결혼 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아마 그때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했다. 초등학교를 입학도 하기 전, 엄마 손을 잡고 한 달에 한 번은 정신 병원에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 무슨 병원인지, 엄마가 어디가 아픈지는 몰랐으나 꼬박 꼬박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았다. 엄마는 59세가 된 지금까지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
엄마가 어떤 약을 먹는지 고등학생 때쯤 알았던 것 같다. 엄마의 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너도 이제는 알아야 한다고 말했던가. 중학생 때는 눈치를 좀 챘던가. 아무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엄마의 우울증은 만성 질환이 되었다. 엄마는 약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과 우울이 엄마를 지배한다. 우울은 또한 합병증을 불러온다. 우울이 조울로 모습을 바꾸었으며,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을 야기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줄여서 미괴오똑)>에서도 "내가 만난 인터뷰이 중 거의 모두가 우울증과 함께 신체 증상을 겪고 있었다"고 말한다.
"속 답답함, 심장 두근거림, 두통, 몸 떨림 등 증상도 제각기 다양했다. 우울증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이 경험하는 것이 정신질환만은 아니다. 무엇이 먼저인지도 불분명하다. 몸이 아파서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몸이 아픈 것인지?"(같은 책, p.26)
이렇게 정신질환과 신체질환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미괴오똑에서 딸기라는 인물은 원인 모를 통증이 찾아온 뒤 병명을 찾기 위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가정의학과, 한의원, 류머티즘내과를 전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단과 처방은 다양했다.
엄마 또한 가보지 않은 진료과가 없었다. 어느 날은 두통이 너무 심하고, 다른 날은 허리와 어깨가 너무 아프고, 또 다른 날은 심장이 옥죄어온다.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한의원, 류머티즘내과, 심혈관내과, 뇌혈관센터 등을 방문했지만 어떤 곳에서는 아무런 진단을 받지 못했고 어떤 곳에서는 주사와 약을 처방했다.
엄마는 온전히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지 못한 나머지 더이상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 이름을 부였다. 몸에 암덩어리가 돌아다니고 있어 여러 군데가 아픈 거라고. 점점 나이가 들며 엄마의 신체 기능은 더 떨어지고 끊을 수 없는 약은 몸에 자꾸만 쌓인다.
정신과 약의 부작용을 나는 근래에야 알게 되었다. 입마름, 기억력 저하, 식욕 증진, 졸음, 속 울렁거림, 변비 등이 있는데 이 모두 엄마에게도 해당되는 증상이다. 항상 물과 사탕을 들고 다니는 엄마를 보고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속이 안 좋다던 엄마는 꼭 밤만 되면 과자나 간식 거리 등 그렇게 찾아 먹었다. 아빠와 나는 그런 엄마에게 밤에, 그것도 몸에 나쁜 음식만 먹는다며 잔소리를 해댔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도,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도 엄마는 내 앞에서 자꾸 졸리다는 말을 했다. 원래 이상한 엄마가 더 이상해졌다고 생각했고 짜증이 났다. 그럴 거면 집에서 자지 왜 나왔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미괴오똑에 따르면 정신과 약은 대부분 그 작용기전(약이 신체에서 작용하는 방식)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증상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대규모 통계조사가 가능해졌다는 연구가 있는데, 이런 연구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증가했다기보다는, 규정된 증상에 걸맞은 사람을 찾아내기 쉬워지면서 우울증 환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선별해내기 쉬워졌다고 주장한다.
"진료실 안에서는 고통의 맥락이 삭제됐다. 그곳에서 중요한 건 우울의 원인이 아니라 우울의 증상이었다. 고통의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보다는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나는 치료가 필요했으나, 인생을 해석할 권한을 누구에데고 넘기고 싶지 않았다" (같은 책, p.48)
만약 디스크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약물과 주사로만 처방을 하는 것이 아닌 잘못된 자세를 교정하고 운동법을 가르쳐주어서 더 나빠지지 않게끔 할 수 있다. 도수 치료나 재활 운동을 시킬 수도 있다. 정신 진료도 증상을 경감시키는데만 약물을 처방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이에 필요한 것을 총 동원해서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심리 상담이 필요한 이에게는 의사가 적극적으로 상담을 권유 및 연결하고(의사의 진료 이후, 바로 '도수 치료를 받고 가세요'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분 개선 및 활력 증진에 운동이 효과를 볼 것 같다면 이들이 좀 더 쉽게 운동을 접할 만한 곳을.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한 이에게는 현재 문제와 고민되는 여러 커뮤니티들이 환자에게 바로 연계되면 어떨까.
정신적인 문제는 신체적인 문제보다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데 현실은 신체적인 문제보다 케어가 더 안되는 듯하다. 환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케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도움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것이다. 정신과 진료에 있어서도 필요한 것을 개인의 과업으로만 미루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좋겠다. 그러면 자신의 고통의 맥락을 조금이라도 더듬을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고통이 적거나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