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진가

말 못하는 고통

by 소소한 귤

그를 안 건 한 달하고 보름 전이었을까. 엄마에 관해서 뭐든 정보가 필요했고 위로가 절실했다.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던 중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발견했다. 다른 곳과 조금 다른 건 단체 카톡방이 아닌 일대일 채팅방이었다. 그 카톡방에는 ‘정신 질환 가족’과 ‘외동’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적혀 있었다. 둘 중 하나만 적혀 있었으면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뒤에 적힌 키워드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나와 동갑내기에 외동, 그리고 게다가 현재 백수 상태라는 것도 같았다. 슬펐지만 재밌는 우연이었다.

그는 의사 같기도 하고 심리 상담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편하게 말을 하라고 한 뒤, 내 상황을 듣고선 엄마의 상태와 증상,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 등을 세부적으로 물어왔다. 그리곤 조곤조곤 엄마의 행동의 이유를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그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심리치료를 받는 것을 추천했다. 덧붙여 가족이 다 같이 신경 써줘야 한다고. 어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아도 주변에 아무도 그렇게라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심리치료는 번번이 실패하고 무엇보다 엄마의 상태가 10년 넘게 계속되다 보니 가족들도 이제 모두 지친 상태였지만 그의 말은 내게 큰 위로였다. 그는 내 마음을 다 이해한다며 자신도 겪었다고 덧붙였다.




겨울의 엄마가 발병한 건 겨울이 열네 살 때의 일이었다. 중학교 1학년. 사실 발병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겨울의 인생은 그때를 기점으로 나뉜다. 겨울의 엄마는 환청이 심해 남들이 듣기엔 헛소리로 생각되는 이야기를 했다. 환청을 사실로 여겨 생기는 문제가 많았다. 피해망상이 있었고 의심을 했고 자주 혼잣말을 했다. 엄마의 행동으로 인해 부부는 자주 싸움을 했다. 늘 불안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심리치료, 통원치료를 모두 거쳤지만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가족만이 아픈 엄마를 감당하기엔 벅찼다.


열네 살 겨울은 그때부터 스물아홉이 된 지금까지 입원한 엄마를 줄곧 돌본다. 면회를 가서 필요한 물건을 전달해주고 외박을 할 때면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하거나 할머니네 집에서 함께 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본다. 그렇게 평범한 2박 3일을 마치면 엄마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다. 엄마는 겨울을 너무 사랑하고 그래서 늘 미안하고,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다. 겨울도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병원으로 가는 엄마를 보낼 때마다 겨울의 가슴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어진다. 겨울은 매번 엄마를 만날 때마다 이 의식을 치른다.


엄마와 함께 지내지는 못하지만, 대신 겨울은 병원에 있는 엄마와 매일 통화한다.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듣는다. 보통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늘 그렇듯 그마저도 쉽지 않다. 엄마를 위해 반가운 내색을 하며 걸려온 전화를 받지만, 대뜸 나오는 헛소리는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안부는 잠깐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한참 이어진다. 환청을 사실로 생각해 계속 대화에 활용하는 엄마를 보면 겨울은 이미 그게 헛소리라는 게 뻔히 보여서 머리가 핑 돈다. 매번 따뜻한 말로 “그거 잘못된 거야.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도 다음에 똑같은 이야기로 또 전화를 걸고 고집을 부린다. 공감하는 척 마무리도 해보지만, 겨울의 현실이 여의치 않을 땐 그게 참 힘들고 서럽다.


엄마와의 매번 반복되는 비슷한 패턴의 통화를 하루 한 번은 기본이고 많으면 열 번까지도 한다. 겨울이 회사에 있든 친구들 만나든 겨울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는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엄마의 헛소리에 참지 못해 화를 내는 날이면 겨울에 마음에 죄책감이 드리운다. 그것이 또 겨울을 참 힘들게 한다. 엄마가 전화하며 우는 날도 그렇다. 매일 엄마와 통화하며 자신의 일상을 지키는 다정하면서 단단한 겨울이다. 하지만 엄마가 울거나 자신을 챙기느냐 수고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으면 담담해지려고 무덤덤해지려고 무던히 애써왔던 마음이 흔들리고, 못내 마음이 아파서 욕이 나올 정도다. 겨울은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아마 그건 그가 애써 세워온 일상이 무너지기 때문일 거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겨울이 자신의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엄마가 스무 살 무렵 타지역으로 취업을 나갔는데 울면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되돌아왔다. 겨울은 엄마가 여성인 점을 생각해 성희롱을 겪었거나 일을 못 해 크게 한 소리 들었을까, 그래서 이날을 계기로 엄마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엄마는 살아 있지만 엄마가 아픈 이유를 아무에게도 들을 수가 없다.


겨울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한없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겨울에 따르면, 겨울의 엄마는 심성이 착하고 순하고 여렸다. 그렇기에 때 타기 더 쉬운 성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나의 엄마도 누구보다 여린 마음을 지녔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사람의 성격을 mbti나 혈액형으로 나누는 것처럼 뇌의 구조나 특성도 사람마다 다른 거라고, 겨울은 누군가에겐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일이 어느 누군가에겐 한평생 잊지 못할 일로 남아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 있다는 말을 보탰다.


겨울의 말을 듣고 정신과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착한 사람이 간다는 말이 생각났다. 모든 경우를 그렇다 할 순 없겠지만 본 바로는 이 같은 병에 걸린 이들이 마음이 너무 여리고 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외부 세계에 대응할 만큼의 마음 근육을 갖고 태어나지 못하거나 자라오면서 그 근육을 발달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외부 자극과 위험을 맨몸으로 받아버렸다. 그들의 병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버리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마음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 그런데도 그 마음의 근육을 키울 여건과 상황이 되지 못했던 사람. 세상에는 몸만이 아닌 마음도 약하게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몸이 약한 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듯 마음이 약한 것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겨울은 상황에 어느 정도는 무뎌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뎌지는 것이 곧 무관심은 아니라고 말했다. 내려놓을 부분이 있는 거라고. 소통이 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엄마를 계속 돌보며 겨울은 많이 지쳤지만, 그런 마음으로 자신의 엄마를 외면하지 않고 살뜰히 챙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요청했다. 질병은 현실이고 우리의 마음은 감성이라, 냉정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아팠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만 집중하면 자신조차 망가질 수 있으니 현실은 직면하되 공감하고 의지할 수 있는 내 편을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자신도 처한 현실이 답답한 나머지 이 채팅방을 만들었지만, 먼저 말 걸어주시는 분들을 통해 형, 누나, 동생, 친구가 생겨 형제가 없어도 이해할 수 있는 내 편이 생긴 느낌을 받았다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도 자신의 엄마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한 그였다.


겨울에게 닉네임이 왜 겨울이냐고 물었다. 사계절 중 겨울을 좋아해서란다. 겨울에는 옷 선택이 다양해서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예쁜 옷이 많고, 무엇보다 추운 날 돌아다니다 카페에 들어가서 사르르 녹는 기분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추위에 약한 나는 대체로 겨울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같은 하늘 아래 겨울을 나면서 ‘사르르 녹는 기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추위를 반전시키는 겨울의 진가를, 겨울은 잘 알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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