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슬픔
독립 후에도 엄마와 거리를 두지 못해, 매 주말마다 본가를 찾고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상담을 시작한 후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둬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첫번째로 본가를 방문하는 일을 줄이기로 했다. 본가 방문은 외동딸로서 의무 같은 거랄까. 강아지가 보고 싶기도 했고, 이주에 한 번씩은 꼭 본가에 가서 식사도 하고 함께 텔레비전도 보고 잠도 자고 오곤 했다. 그런데 꼭 갈 때마다 엄마와 트러블이 생겼다. 어느 날은 빨래 안 걷는다고, 또 어떤 날은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또 다른 날은... 아무튼 다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 잘 기억도 안 난다.
본가만 다녀오거나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늘 자꾸 일상이 무너져 복기하는데도 힘이 들었다.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썩어 불쾌한 냄새가 났고, 방 안은 널부러진 옷가지들과 기타 잡동사니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음식물과 각종 쓰레기, 옷들이 발에 치였고 그것을 요리조리 잘 피해다녀야 했다. 엄마와 혹은 엄마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렇게 나는 하던 모든 것이 정지됐다. 요리도,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그냥 침대에 납작하게 누워 무기력한 잠에 빠져드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엄마와의 잠시 거리두기를 선언한지 두세 달 쯤 되었을까, 5월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엄마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먼저 있던 결혼 기념일에는 한창 엄마 아빠가 이혼 이야기가 나올 때라서 나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이혼 이슈가 조금 사그라든 무렵, 어버이날이 가까워오자 아빠 편에 엄마에게 주라고 카네이션과 편지를 전했다. 진짜 어버이날이 되니 남들 다 축하받고 선물받고 있을 텐데 홀로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서 얼굴이라도 뵙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해서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할 건지 물었다. 엄마도 내심 좋은 눈치였다.
평소 함께 가고 싶었던 강남면옥에서 두어 달만에 얼굴을 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본가에 들러 잠시 강아지를 보고 가기로 했다. 자주 찾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맨날 아빠에게 사진으로만 전해 본 내 새끼들. 사실 강아지만 보려고 본가를 찾으려 한 적도 있었다. 아빠에게 잠시 산책시키라고 나온 뒤에 근처 공원에서 접선할 계획이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내가 좋으면서도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살며시 나의 근황을 물어왔다. 그렇게 서먹하지만 애틋한 모녀 간의 대화를 나눴다.
집에 도착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나의 새끼들을 보고 뒹굴거렸다. 안방에 누워 텔레비전도 보고 평화롭고 뭇 가족와 같은 평범한 시간이 이어졌다. 잠시 자고 갈까,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본가에 내 방은 엄마 방이 되었고 나는 건너방에서 쪽잠 자는 신세가 되었기에 잠자리가 매우 불편했다. 더욱이 이제 더는 울면서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일이 터지기 전에 얼른 일어나야지. 편한 옷으로 갈아 입은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집에 가려고 채비하는 내게 엄마는 "자고 가지..."라며 조심스럽게 마음을 비추었다. 잠깐 흔들렸으나 이내 마음을 잡고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엄마는 아쉬워했지만 붙잡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쇼핑백 두 봉지를 건네줬다. 모두 화장품과 화장품 샘플이 담긴 종이 봉투였다. 엄마는 이미 4천 만원 가까운 빚을 지고 있었고 그 빚은 모두 쇼핑에 썼다. 내게 30만 원이 넘는 액자를 뜬금없이 보내기도 하고, 옷이나 화장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에게 나는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이미 엄마가 준 화장품들이 집에 많고 심지어 돌려보낸 적도 있다. 내가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6평 짜리 원룸에 둘 곳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양보하지 않았다. 끝까지 가져가라고 우겼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았다. 엄마의 과소비를 원치도 않았고 내 집에 쓸 일 없는 물건들을 방치해두며 스트레스 받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내게 필요도 없고, 둘 곳도 없다는 말을 다섯 번 정도 반복하고나서야 엄마에게 풀려날 수 있었다. 풀려났다기보다 일방적으로 내가 문을 열고 나간 것뿐이지만. 그래도 엄마랑 싸운 것도 아니고 엄마에게 언성을 높힌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내 상황과 마음을 잘 전달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주는 물건을 거절해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누워 이제 쉬려는데 아빠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가 주는 물건을 좀 가져가지 그랬냐는 거다. 이유를 들어보니 나 때문에 화가 난 엄마가 애먼 아빠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 역시나 내가 간 게 잘못일까, 두 세달만에 간 게 또 문제가 되는구나. 오늘은 싸운 것도 아니고 좋게 이야기하고 나왔는데 엄마에겐 그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구나. 그 사실로 엄마가 지금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아니나다를까 엄마가 장문의 카톡을 보내왔다. 대충 요약하자면, 날 만난 후로는 기분이 나빠 아빠와 싸운다고 그래서 자신의 일상과 리듬이 무너진다고. 니 아빠라는 사람한테 아내 대접도 못 받고 여자에게 뭘 해줘야 하는지도 모르는 인간이랑 살고 있는데 여기가 지옥이라고. 엿 같은 하루라고.
연락은 새벽 내내 이어졌다. '시팔 니가 그렇게 잘났어', '니가 나한테 뭐 잘한 게 있다고 건방지게 구는 거냐', '나 살고 싶지 않으니까 더이상 참견 말라', '너 나한테 엄마라 부르지마. 나 너 엄마 아니야'. 아침에 눈 뜨니 사진이 여러 개 와 있었다. 얼굴, 팔, 다리, 입술 등 멍이 들고 까진 사진이었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받지 않으니 음성 메세지로 인연을 끊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며 전화 달라고 했다. 엄마가 내가 사는 집에 찾아와 난동을 부릴까 걱정됐다. 집주인과 경찰이 오는 상상을 하니 끔찍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레퍼토리가 또 시작됐다. 나는 환자고 피해자, 아픈 사람이다. 근데 너네는 이렇게 나에게 상처를 줘야겠냐.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거냐. 가만히 놔도도 나는 힘들다. 나쁜 사람. 못된 년. 패륜아.
저녁에 외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도 사진을 보내고 전화해서 너 때문에 이렇게 산다고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울고 난리를 쳤다고 했다. 암투병 생활을 막 마쳐 심신이 지친 할머니는 더이상 내가 관여할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난동을 피우는 엄마를 가장 오랜 세월 보아왔다. 할머니를 안심시키고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다. 밤에는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집으로 당장 오라고 했다며,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을 전했다. 자기를 못 살게 군다고 했다. 나는 아빠에게 절대 폭력은 안된다며 집에 있을 수 없으면 할머니 댁으로 잠시 가 있으라고 전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엄마의 넋두리를 받아주었다. 원망과 비난 끝에는 고통에 대한 한이 이어졌다. 자신에 대한 비밀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쉬쉬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나쁘다고 했다. 평생 자기를 속여왔다고. 그게 뭐냐고 하니 자신은 암이고 다운 증후군이라고 했다. 몇 년전에도 들었던 이야기다. 자신이 장애이고 기형아라고. 어릴 적 아이큐 검사했을 때도 지능이 70인가 그랬다고. 엄마는 이미 확신한 상태를 넘어선 듯 했다. 엄마가 무슨 다운 증후군이냐고, 그건 얼굴에서부터 다르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지만 엄마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정상이 아니라고 했다. 엄마는 자신의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듯 이렇게 말했다.
"내 얼굴을 봐"
엄마의 얼굴이 갈수록 좋지 않아 걱정스럽긴 했다. 몸 어딘가가 확실히 안 좋은지 퉁퉁 부은 것도 같았고 인상을 하도 많이 써 얼굴에 그대로 그 짜증스럽고 신경질적인 인상이 박혀 버렸다. 운동도 하지 않고 평소 자기 관리도 하는 것이 없으니 좋을 리가 없다. 다만 화장품은 열심히 발라서인지 나보다 피부는 좋다.
내가 아무 곳에서도 진단이 나온 적이 없지 않냐고 말했지만 병원이고 의사 놈들은 믿지 못한다고 했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자신에게는 심장병도 있다고 했다. 예전에 심혈관 검사했을 때 의사가 신경과 약이랑 심장병 약 둘 중 선택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심혈관 검사한 건 내가 스무 살 때니까, 벌써 10년 전인데 금시초문이었다. 자신은 무서워서 원래 먹고 있던 신경과 약을 먹기로 했다고. 그리고 아빠하고 싸우면 화가 올라와 그때는 심장이 아프지 않아서, 언제는 아빠가 일부러 자기에게 싸움 거나 싶었다고. 심장이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그게 망상이라고 했다. 엄마는 왠일로 그건 망상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고, 엄마의 고통은 선명한데 진단되지 않고, 그렇다보니 엄마는 자신의 고통에 이름을 붙였다. 다운 증후군을 검색해보니 몸이 이곳 저곳 아픈 곳이 많다. 심장도 약하고 호흡기관도 문제가 있고 지능도 낮고, 엄마는 인터넷을 검색해보다 다운 증후군의 증상을 보고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아 드디어 나의 문제를 찾았다. 나는 다운 증후군이었구나. 엄마는 왜 이걸 나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여태껏 비밀로 했을까. 사람들은 왜 다 나를 속이는 걸까, 그냥 속 시원히 말해주면 될 것을. 이런 말을 나에게 했었다.
몸이 아파서 엄마의 정신이 아픈 건지, 엄마의 정신이 아파서 몸이 아픈 건지 분간되지 않는다. 엄마는 할머니를 원망한다. 자신은 어릴 적 순하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갑자기 정신 병원에 입원해서 너무 놀랐다고. 그때부터 자신은 망가졌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그때도 그랬다며, 언제부터 이상해졌는지 자신도 모르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는 아빠를 원망한다. 자신은 순하고 조용한 여자였는데 너희 아빠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못 된 사람이었는지, 그때부터 화가 많아지고 이 지경이 됐다고 했다. 내가 본 아빠는 마음이 여리고 꼬박꼬박 퇴근해서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킬만큼 가정에 충실하다.
엄마는 이제 나를 비난한다.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4년제 대학 나오면 그래도 되는 것이냐고. 왜 너희들은 안 그래도 힘든 나를 못 괴롭혀서 안달이냐고. 타인을 향한 엄마의 비난은 멈출줄 모른다. 마치 폭주 기관차 같다. 우리는 그 기관차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엄마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너무도 알고 싶다. 다음에 할머니를 찾아가 하루밤 자면서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봐야겠다. 엄마의 젊은 시절, 엄마의 어린 시절은 어땠고 엄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엄마는 나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은 미로이자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