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저녁. ‘미드나잇 인 파리’
(다음 날 아침)
호텔 로비
파리의 아침은 늦은 밤만큼이나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이언은 호텔 로비에서 담미를 기다렸다. 어제와 달리, 그는 편안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들떠 보이는 표정의 그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
담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녀는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이언은 그 모습이 더 좋았다. 그녀는 어떤 옷을 입어도, 그날의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울렸다.
이언은 담미의 손을 잡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이언의 완벽한 계획표에는 퐁피두 센터의 동선이 꼼꼼히 체크되어 있었지만, 이언은 그 계획을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다.
메트로, 낯선 시스템의 매력
담미
“우리 퐁피두 가는 거예요?”
담미의 질문에 이언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언
“글쎄요." (그는 그녀를 보며 자신있는 미소를 짓는다.)
메트로를 향해 계단을 내려가자, 낡은 지하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언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을 수동으로 열어야 하는 시스템에 잠시 멈칫했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를 보며 담미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담미
“큐레이터님, 그냥 확! 열어야 돼요! 파리에서는 뭐든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언
“네, 그렇죠! 적극적으로. (담미와 시선을 맞추며)
담미
"저는 말이에요. 처음에는 그렇게도 낯설고 답답했던 이 도시의 시스템이, 파리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매력적으로 다가오더군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문을 직접 열고 닫는 수동식 손잡이가 승객 개개인의 자유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고, 마치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상징하는 예술적 표현처럼 느껴졌죠."
이언
“놀랍군요. 정말 대단한 통찰력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시스템의 비효율성이나 불편함에만 주목하죠. 하지만 작가님은 그 '불편한 작동' 자체를 가장 완벽한 형태의 개념 예술로 읽어내셨어요.
문을 직접 연다는 그 사소한 행위, 즉 개입은 분명히 파리 시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미학적 장치입니다.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일상의 가장 보편적인 공간인 지하철에서 개인의 자유 의지라는 숭고한 가치를 매일 되풀이되는 퍼포먼스로 재현하는 것이죠.
저는 그 손잡이를 수백 번 보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해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작가님의 시선은 어떤 경계를 넘어섭니다. 예술과 현실, 불편함과 자유를 한 문장으로 큐레이팅해버리셨어요. 저는 지금, 작가님이라는 '작품'에 매료된 것 같습니다.“
(메트로에서 내려 붐비는 출구 계단을 올라 거리로 나온 두 사람. 파리 특유의 소음과 햇살이 그들을 감싼다.)
이언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그녀를 보며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짓는다.)
“허담미 작가님.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공식적인 연수 기간은 끝났을지 몰라도, 작가님과의 이 지적인 교류는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습니다.”
담미
(햇살에 눈을 찡긋하며)
“어머, 이언 씨. 갑자기 비장해지시네요. 저를 메트로의 수동식 손잡이처럼 개인의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로 인정해주시니 영광이랄까요?”
이언
(미소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그 이상입니다. 작가님의 그 통찰은 제가 이 도시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의 핵심을 관통했어요. 저는 지금 작가님에게 이 파리라는 거대한 예술 작품의 가장 비밀스럽고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담미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이라... 좋아요. 제 시트콤에 나올 법한 로맨틱한 클리셰가 시작되는 건가요? 큐레이터님의 사적인 갤러리라니, 기대되네요.
이언
(앞장서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며)
“클리셰가 아닙니다. 작가님의 예술적 해석이 ‘현실의 오브제‘와 만났을 때, 어떤 새로운 의미가 창조되는지를 직접 보게 되실 겁니다.
제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이유, 그리고 지금 작가님께 깊이 매료된 이유를 그곳에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쪽입니다. 파리가 우리에게 준 자유 시간을 온전히 사용합시다.“
(이언은 벅찬 기대감과 약간의 떨림이 섞인 채 그녀를 이끌고 골목을 따라 작은 갤러리를 향해 걷는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오래된 건물의 2층에 자리한 작은 갤러리였다. 간판도 없이, 그저 낡은 나무 문이 전부였다.
이언
"여긴 파리에 와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에요. 저만 아는 비밀 장소죠."
이언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지고 있었다. 갤러리 안은 유명한 작품들 대신, 아마추어 화가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그의 완벽한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담미
"이런 곳도 좋아하세요?" 담미가 놀란 듯 물었다.
이언은 그림 하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다 대답했다.
이언
“완벽하진 않아서요. 오히려 그런 점이 좋더라고요. 어떤 그림은 삐뚤삐뚤하고, 어떤 그림은 색깔이 엉망이지만, 그 안에 담긴 솔직한 감정이 느껴져서요.“
그는 자신의 과거 상처 때문에 감정에 무감각해졌고, 완벽함 속에서 결핍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이 갤러리의 그림들처럼, 엉성하지만 솔직한 감정들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는 것을 그는 그녀를 통해 깨닫고 있었다.
그는 담미에게 그림 한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언
“이 그림, 당신이 그린 것 같지 않나요?"
그림 속에는 엉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담미는 그림을 보더니 픽 웃음을 터뜨렸다.
담미
“어제 제가 카페에서 찍은 셀카랑 똑같네요!”
그녀의 웃음소리가 작은 갤러리 안에 울려 퍼졌다. 이언은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언
(이언의 혼잣말)
‘나의 완벽한 세계에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불완전함이었구나.' 그는 그녀의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다시 한번 매료되었다.
이언과 담미는 갤러리 안의 그림들을 감상한 뒤, 햇살이 쏟아지는 작은 정원으로 나왔다. 낡은 벽돌로 쌓인 벽을 따라 세 개의 앤티크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책들이 쌓여 있는 듯한 분위기는 갤러리만큼이나 탐미적이고 지적인 느낌을 풍겼다. 이언은 커피를 주문했다.
이언
“이곳은 정말… 담미씨 작업실 같아요.”
이언은 감탄하며 말했다. 담미는 픽 웃더니 곧바로 공책과 펜을 꺼내 들었다.
담미
“여기 분위기가 좋네요.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를 좀 적어야겠어요.”
그녀는 진지하게 펜을 놀렸다. 이언은 그녀의 작업에 방해가 될까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잠시 후, 담미는 고개를 들고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담미
“아까 그 갤러리 그림들, 미술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는 어떤가요? 저도 시트콤을 쓸 때 캐릭터의 서사나 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혹시 그런 면에서 이 그림들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나요?”
그녀의 질문에 이언은 눈이 빛났다. 그는 큐레이터로서의 전문적인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림 속의 색감, 구도, 작가의 숨겨진 의도까지 분석하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담미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입술을 오므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재빨리 공책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대화가 잠시 끊기자, 담미는 따뜻한 커피 잔을 들고 향을 맡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담미
“아, 역시 커피는 이탈리안인데, 프랑스 커피는 정말이지 맛이 없어요.”
순간, 이언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진지한 예술에 대해 논하던 사람이, 갑자기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커피 맛을 혹평하는 모습은 그의 완벽한 세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멈출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언은 눈물이 맺힐 만큼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담미
“대체… 왜 이렇게 웃어요?”
담미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고, 이언은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이언
“당신은… 정말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군요.”
그의 말이 끝나자, 담미도 그제야 자신의 엉뚱함에 민망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이언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마치 파리의 아침 햇살처럼 따뜻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함께 거리를 걸으며 침묵 속에서도 둘은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교감했고, 이윽고 함께 걸었던 좁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담미가 예전에 공부하던 학교 근처였다. 담미는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를 이끌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작정이었지만, 이언은 그 걸음에서 그녀의 지나온 시간들을 엿볼 수 있었다.
담미가 그를 데려간 곳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었다. 이언은 입구부터 굳은 얼굴을 풀고 감탄했다.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들어서자, 천장이 아득하게 높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꽂힌 책들이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초록색 램프가 드리워진 독서 테이블들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이언
“작가님... 이곳은...”
이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담미
“멋있죠? 저는 이 초록 조명을 제일 좋아했어요. 맑은 하늘이 없어도, 완벽한 풍경이 없어도, 이 초록색 조명만 있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뭔가 제 머릿속에 시트콤 아이디어를 쏙쏙 넣어줄 것만 같았고요.”
이언의 눈에는 ‘아름다운 도서관‘이 보였지만, 담미의 눈에는 ‘이야기의 창고‘가 보였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낭만과 엉뚱함의 공존 도서관을 나선 그들은 생미셸로 향했다. 담미는 예전에 종종 가던 작은 피아노 바를 가리키며 추억에 잠겼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좋아했던 파리 곳곳의 ‘오점들‘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오데옹과 생또노레로 이어졌다. 갤러리와 이탈리아 식당들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며, 이언은 담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관광 명소가 아닌, 두 사람만의 의미 있는 공간들이 보였다.
(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회색빛 파리가 거리의 조명 사이에서 시간을 알렸다.)
이언은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걷는 내내 파리의 밤거리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가로등 불빛은 옅은 금빛으로 빛났고, 샹젤리제 거리는 낭만적인 기운으로 가득했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의 주변이 낯선 마법에 휩싸이는 듯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그들을 감쌌다. 이언은 담미의 자리에 의자를 빼주며 그녀가 편하게 앉도록 배려했다. 메뉴를 고르던 중, 그녀는 망설임 없이 양고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이언
“양고기 좋아하세요?”
담미
“네.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종종 먹었거든요. 특히 어린 양은 부드럽기가 여기 음식만큼 맛있는 곳이 없어요.
뭐, 족발이 아니라서 실망하신 건 아니죠?
족발 요리라면 독일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이언은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그녀가 한국에서만 활동한 작가인 줄 알았다. 그녀는 그가 예상했던 틀을 매 순간 깨뜨리고 있었다.
이언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 공부하셨어요? 어느 학교에서요?”
담미
“그냥… 잠깐이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죠.”
담미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파리에 대한 애틋함이 스쳐 지나갔다.
담미
“파리라는 도시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죠.”
그녀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언은 그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껏 파리를 그저 전시회와 예술을 위한 도시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으니, 이 도시는 차가운 건축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가 사랑을 잃은 뒤 미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듯, 그녀를 통해 파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하고 있었다. 완벽주의라는 가면 아래 깊숙이 숨겨두었던, 사랑의 상처와 결핍이 그녀 앞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듯했다.
식사가 진행될수록 이언은 그녀의 작은 습관들을 마음속에 담기 시작했다. 포크로 양고기를 자르는 섬세한 손동작, 와인 한 모금에 작게 미소 짓는 표정, 그리고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살짝 찡그리는 미간까지. 그는 큐레이터로서 미술품을 감상하듯, 그녀의 모든 순간을 찬찬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이 밤을, 이 사람을, 온전히 느끼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완벽한 클라이맥스
재즈의 밤 마지막 종착지는 오데옹 근처의 호텔에 있는 재즈 바, Hôtel Laurent였다. 작은 공간 안에는 재즈 트리오의 연주가 흐르고 있었다. 이언은 칵테일을 시키고, 담미는 무대 위 연주자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담미는 문득, 낯선 여자의 손을 잡고 있던 베르니니의 조각상을 떠올렸다. 오늘 그녀는 과거의 자신을 현재의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이언은 이제 더 이상 완벽한 큐레이터가 아니었다.
담미
“제가 살았던 파리에서… 완벽한 큐레이터님과 이렇게 같이 앉아 있을 줄은 몰랐어요.”
담미가 중얼거리자, 이언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언
“저도 제 완벽한 계획에, 작가님과 함께 파리의 낯선 재즈 바에 앉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퐁피두는 완벽한 계획에나 필요한 것이었네요. 그리고… 이게 가장 완벽한 계획이었다는 것도요.“
음악이 흐르는 밤, 그들은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며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파리의 마지막 밤, 몽마르트르 언덕과 재즈 바를 거쳐 Hôtel Laurent의 로비 라운지바는 여전히 재즈 선율로 가득했고, 두 사람은 아늑한 소파에 앉아 칵테일을 마셨다.
그때, 담미의 휴대전화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담미
“어... 잠시만요.”
담미는 당황하며 전화기에 손을 뻗었다. 엄마에게는 그냥 파리로 출장을 왔다고만 했지, 이언과 동행했다는 이야기는 미처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담미는 휴대전화를 받는 순간, 이언을 향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담미
“엄마한테 저 혼자 왔다고 했는데... 그냥 좀 멀리 떨어져 앉아주시면 안 될까요?”
이언은 담미의 말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담미는 이미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담미
“엄마! 나 잘 도착해서 잘 지내고 있지! 응, 일은 잘 마무리됐어.”
화면 속 담미의 어머니는 딸의 안부를 묻다 말고, 담미의 옆에 앉아 있는 이언을 발견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담미의 엄마 (진경)
“아니, 우리 딸 옆에 저렇게 번듯한 청년은 누구니? 배우니? 아니면 이번에 같이 간 연출가니?”
이언은 엉겁결에 화면에 잡혔고, 담미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담미
“그냥 같이 일하는 큐레이터님이야!”
이언은 담미의 어머니에게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이언
“안녕하세요. 강 이언이라고 합니다. 담미 작가님과 함께 파리 연수 때문에 동행했습니다.”
엄마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녀는 화면을 클로즈업해 이언을 훑어보더니, 목소리를 한층 낮춰 담미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담미의 엄마 (진경)
“큐레이터? 우리 딸이 이렇게 잘생긴 큐레이터를 다 만나고... 혹시... 사귀는 거니?”
이언은 담미 엄마의 솔직한 질문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담미는 얼굴이 빨개져서 화면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담미
“엄마! 그런 거 아니야!
담미의 엄마 (진경)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알겠구만! 그래, 둘이 보기 좋다! 우리 딸 잘 부탁해요!”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끊어졌다. 담미는 빨개진 얼굴로 이언을 바라보았다. 이언은 담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언
“이제… 우리 시트콤에 어머님이라는 새 등장인물이 추가되었네요.”
담미는 이언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담미
“이게... 엄마의 마지막 대사일 줄은... 저도 몰랐어요.”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파리에서의 모든 엉뚱하고 완벽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이제 이 둘만의 가장 완벽한 사랑의 에피소드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