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남자. 큐레이터 4 <시즌1>

시트콤: 모네의 정원, 완벽한 풍경에 들어온 오점.

by 새벽별노리

3화 뒷부분

완벽한 여행을 위한 완벽한 사고뭉치

다음 날 아침, 이언의 완벽한 계획대로 그들은 파리 근교 지베르니(Giverny)로 향했다. 이언은 미리 출력해 둔 기차 시간표와 지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담미

"큐레이터님, 우리 왜 지베르니에 가는 거예요?" 담미가 물었다.

이언

"지베르니는 모네의 정원입니다. 빛의 화가인 모네가 인상주의의 정점을 완성한 곳이죠."

담미

"아, 그럼 거기서 모네가 그렸다는 연못도 볼 수 있어요?"

이언

"그럼요. 작가님이 평소 보시던 시트콤 배경과는 차원이 다른... 완벽한 풍경을 보시게 될 겁니다."


이언은 담미에게 완벽한 여행 계획을 설명했다.

기차를 타고, 작은 마을을 둘러보고, 모네의 정원을 거닐며 작품의 배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완벽한 동선이었 다.


4화

기차 안

이언이 모네와 인상주의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담미는 창밖을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수업을 듣는 학생 같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빛의 화가 모네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벌어지는 10분짜리 시트콤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모네의 정원

마침내 모네의 집과 정원에 도착했다. 아담하고 색채가 고운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걸린 그림들과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그들을 반겼다.


이언과 담미는 작은 방들을 함께 지나며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큐레이터인 이언은 작품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했고, 작가인 담미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단어들을 노트에 꼼꼼히 필기했다.


모든 방을 둘러본 뒤, 그들은 마지막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그곳에서 담미는 가볍고 작은 엽서 여러 장을 골랐다. 그녀에게 엽서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불러일으키고, 큐레이터와의 교감을 위한 그녀만의 예의였으며, 오랜 습관과도 같은 행위였다.


정원으로 나온 담미는 벤치에 앉아 방금 산 엽서들을 공책에 꽂고, 그 옆에 자신만의 언어로 감상을 기록했다.


그때, 큐레이터가 그녀를 발견하고 다가와 함께 정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네의 정원 속 일본식 초록색 다리에 이르렀을 때, 이언이 문득 말했다.




이언

“잠시 그곳에 서 보지 않을래요?"


담미는 이미 그보다 더 앞서 걷고 있었기에, 그녀가 서 있는 그 모습은 그림 같은 배경과 어우러져 완벽한 구도를 만들었다. 담미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담미

네? 아, 전 엄마가 찍어주는 사진 외에는 잘 안 나오는데..."


그녀의 말에 이언은 재치 있는 시트콤 작가인 그녀의 취향을 읽고는, 한 편의 시트콤처럼 말했다.


이언

딸, 저기 좀 봐봐!"


그는 그 말을 끝냄과 동시에 셔터를 눌렀고,


담미

“네? 뭐라고요?"

하고 뒤돌아보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순간이 카메라에 담겼다.

(그 둘은 서로를 보며 크게 웃는다)


이언은 계획대로 '수련 연못'과 '일본식 다리' 앞에서 멈춰 섰다.


이언

“저 연못이 바로 모네가 200여 점의 작품을 그린 장소입니다. 빛과 그림자를 탐구하며 인상주의의 정수를 완성했죠.”

“모네의 정원의 초록색 다리는 ‘일본식 다리'(Japanese Bridge)입니다.

모네는 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일본 미술(자포니즘)에 깊은 영향을 받아 자신의 정원에 일본식 건축 요소를 도입했어요. 그 결과, 연못 위에 이 아름다운 녹색 다리를 만들었고, 이 다리는 그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


이언이 큐레이터의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의 옆에서 담미는 연못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담미

“저 연못이… 이혼한 전처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연못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이언은 담미의 질문에 멈칫했다.


그의 지식에는 없는 정보였다.


이언

“아마... 풍문일 겁니다. “


담미

“아니면 말고요.

만약 그랬다면, 이 연못은 '치유의 연못'이라기보다 '전처가 남긴 연못'이라고 불렸을 텐데, 그럼 모네가 좀 짠하네요. 시트콤으로 만들기 딱 좋은 소재인데."


담미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이언은 한숨을 쉬는 대신, 그녀를 데리고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완벽한 계획표에는 없던 길이었다.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담미가 그런 그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담미

“이언 씨, 지금 계획에서 벗어난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이언은 옅게 미소 지었다.


이언

“이곳의 진짜 완벽함은 모네의 작품이 아니라, 작가님처럼 계획에 없던 곳에서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담미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트콤 대본에는 없는, 이언 만의 대사였다.


완벽한 큐레이터는 완벽한 풍경을 완벽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가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풍경은 더 이상 작품이 아니라 그의 곁에 있는 담미였다.


그날 오후, 그들은 기차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언은 원래대로라면 불같이 화를 내야 했지만, 담미와 함께 늦은 기차를 기다리며 그가 한 일이라고는, 그녀가 쓴 시트콤의 다음 대본에 대해 웃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파리 여행은, 그제야 진짜 '담미의 시트콤'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획 없는 밤

완벽해진 오점. 지베르니에서 기차 시간을 놓친 그날 밤, 이언은 지도와 스케줄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들의 파리 여행은 이제 '담미의 시트콤'이라는 새로운 각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언은 완벽한 큐레이터의 모습 대신, 담미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는 미아가 되었다.

담미는 이언을 이끌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걷고,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가라오케 바에 들어갔다.(아이들부터 낯선 사람들까지, 모두가 함께 홀에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는 공개형 술집) 그들의 코스에는 오직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곳'이라는 원칙만이 존재했다.


이언은 처음에는 불안해했지만, 이내 그녀의 계획 없는 발걸음을 따라 걷는 것이 얼마나 편안하고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다. 어둠이 내린 파리의 골목을 걷던 중, 담미가 멈춰 섰다.


담미

“ 여기 봐요. 저기 커플 봐요. 남자는 엄청 진지한데 여자는 키득거리고 있죠? 딱 우리네. 근데 저기서 남자가 웃으면 바로 로맨틱 코미디로 넘어가는 거예요.”


담미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이언은 그녀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았다.

이내 그는 멈춰 서서 담미를 빤히 바라봤다.

담미는 무슨 대사를 쳐야 할지 몰라 그를 마주 보았다.


이언

“허담미 작가님.”

이언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가 생각했던 완벽한 파리는 완벽한 전시, 완벽한 동선, 완벽한 야경이었어요. 그런데… 작가님과 함께하니, 완벽한 풍경은 계획에 없던 곳에서 나오네요.”


그의 말에 담미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시트콤 대본에도 없던, 진심이 담긴 대사였다. 완벽주의자 큐레이터는 이제 자신의 완벽함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담미

“큐레이터님, 지금 이 대사는… 정말 제 시트콤에 쓰고 싶네요. 근데... 아마 시청자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믿지 않을 것 같아요.”


담미가 장난스레 대답했다. 이언은 그녀의 얼굴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그의 손이 그녀의 뺨에 닿자, 파리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번져왔다. 이언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언

“그럼... 믿게 해 주면 되죠. 현실에서."


그의 말이 끝나자, 주변의 모든 소리가 아득해졌다.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파리 밤의 고요를 채웠다. 계획에 없던 키스가 이어졌고, 그들의 파리 여행은 이제 완벽한 로맨스로 완성되었다.


그날 밤의 키스, 이제 막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 그 후의 이야기는 5화에서 계속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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