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여름 어느 다정한 날, 병실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서로에게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삶의 빛나는 가치와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오후 열두 시를 훌쩍 넘긴 여름의 한복판, 후끈한 공기가 도시를 감쌌지만, 내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나는 자기 성찰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타인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순수함과 대범함을 동시에 품고 약한 이들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을 내어주었다.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인 감각은 나만의 세계를 만들었지만, 그 경계를 무례하게 침범하려는 이에게는 결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조용하고 말이 없었으나, 참을성과 인내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는 늘 따뜻한 위로와 깊은 공감의 말이 절실했을 것이다. 열린 마음이면서도, 자신 안의 고통과 치열하게 싸워 헤쳐 나오려는 강인함을 지닌 친구. 지금 그는 병마와 씨름하며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체력이 고갈되어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은 내 마음도 함께 고통 속으로 잠기게 했다.
잠자리가 하늘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오후,
그 뒤를 따라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사뿐히 내려앉은 곳에 병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느 때와는 다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묘한 감정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마음 한구석에는 어렴풋한 상쾌함이 감돌았지만,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온몸의 근육이 돌처럼 굳어 닫힌 문을 미는 손에 힘조차 들어가지 않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공기 속,
병실로 향하는 복도를 걷던 나는 낯익은 그림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간병인과 함께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메마른 갈증처럼 쌓여왔던 그리움이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덥석 잡자,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 그 모든 슬픔을 애써 삼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친구 역시 아픈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웃어주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끌리듯 어깨동무를 하며 그리움의 간극을 한순간에 지웠다.
복도를 가득 채운 우리의 웃음소리는 마주 오던 이들마저 놀라게 했고, 그들 역시 우리의 기쁨에 동화되어 함께 미소 지었다.
"야! 드디어 만났네! 괜찮아?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목청껏 외쳤다.
그는 굳게 닫혔던 입술을 겨우 열었다.
“응… 괜찮아. ”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깊은 회한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네 얼굴 보니까 좀 살 것 같다."
병원에 격리되어 세상과 단절된 채, 공간과 위로, 따뜻한 손길을 그토록 그리워했을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저릿했다.
말로는 다하지 못했을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을 친구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시렸다. 슬픔에 잠식될까 두려워, 나는 서둘러 기쁜 상상으로 마음을 채우려 애썼다.
우리는 면회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었다.
손에 들린 것은 그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음식들. 병원의 흰쌀밥만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는 그의 말에, 이 음식이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바람이자, 고된 시간 속에서 발견한 희망의 빛일지도 몰랐다. 어떤 것이든 먹여서 기운을 차리게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환자 휴게 공간의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조심스럽게 음식의 뚜껑을 열고, 컵에 물을 따라주며 그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저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많이 먹어. 이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힘내야지, 응?"
식혀 온 보리차를 컵에 따르며, 애써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꾸밈없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듯, 잔잔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말없이, 오랫동안 음식을 음미하듯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먹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마음속 어딘가에서 따스한 온기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밥을 먹는 동안 바깥세상 이야기와 시시콜콜한 농담들을 쉴 새 없이 주절거렸다. 그는 대부분 듣기만 했지만,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환하게 웃어주며 마음으로 함께해 주었다. 우리 둘 사이의 허공에 떠도는 따뜻한 온기가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녹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기적인지를. 왜 평소에는 그토록 맑게 웃지 못했는지, 늘 굳게 닫힌 입술로 세상과 거리를 두었는지. 천진난만한 마음이 가득했음에도 마치 회색빛 세상에 갇힌 듯 살아왔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제야 그에게 온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미안함과 함께 내 안의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이 평범함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비로소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와의 만남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마음속은 알 수 없는 벅차오름으로 가득했다. 머리 위로는 맑은 여름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알레프의 노랫말은 왠지 모르게 소극적이었던 나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조용히 어루만져 주었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서시'나 '자화상'처럼,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뭉클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네가 사랑한 것들을 기억할게
함께 기다릴게 영원한 사랑을
침묵을 지킬 때 이해할게
이제야 네 마음을 훑어보는 날
용서해
많이 미안해
네가 지내온 것들을
알 수 없던 나야
살아내
더 많이 사랑할
네 모습 낯설지 않게
깊은 추억에 빠진 널
위로할게
허락해 준다면
그래준다면
다정한 표정을 지어줄게
노래는 계속 흘러나왔고, 나는 이어서 들려오는 가사를 나지막이 따라 불렀다.
이제야 네 마음을 훑어보는 날
용서해
많이 미안해
네가 지내온 것들을
알 수 없던 나야
살아내
더 많이 사랑할
네 모습 낯설지 않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널 위한 말이야
살아내
그래야만 해
지금까지
정말 힘들었겠지만
노래의 울림은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사랑해
많이 미안해
네가 지내온 것들을
알 수 없던 나야
살아내
더 많이 사랑할
네 모습 낯설지 않게
사랑해
많이 미안해
네가 지내온 것들을
알 수 없던 나야
살아내
더 많이 사랑할
네 모습 낯설지 않게
네 모습 낯설지 않게 “
그와의 만남, 그리고 이 노래.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주는 더없이 소중한 선물 같았다. 오늘 만났던 그와의 다정한 장면들, 함께 나눈 소박한 웃음, 그리고 마음 깊이 느꼈던 따스한 감정들은 내 안에 영원히 새겨질 기억이 되었다.
병원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나만의 시를 읊조렸다.
그대로, 그대가,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잘 견디는 것, 그것 또한 희망이다.
당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부디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다시 그를 만날 날을 간절히 기대하며, 그때까지 나 자신을 더 깊이 발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에게, 또 세상의 다른 이들에게 좀 더 다정하고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익혀나가기로 했다. 이 다정한 고백의 하루는, 내 삶의 가장 찬란한 시작이 될 것임을 예감하며.
*에필로그*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부디 온전히 회복되어 희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 다시 함께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 곁에 있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말 한마디에 얼마나 깊은 마음을 담아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작은 일상들을 소중히 기록하며, 그 속에서 행복이 늘 가까이에 있었음을 다시금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내적 성찰을 통해, 우리 함께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성장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