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지도

음식이 건넨 위로

by 새벽별노리


저녁 7시, 한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카페를 나섰다.

온 정신이 글에 파묻혀 있었던 탓에, 따뜻한 물로 리필까지 해가며 겨우 한 모금 마셨던 아메리카노는 컵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빡빡한 월요일과 화요일의 스케줄을 미리 소화하려면 오로지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던 탓인지, 저녁을 함께하자는 연락에 별다른 생각 없이 가자는 곳으로 향했다.


하필이면 일식집이었다. 이미 일주일 중 나흘이나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던 터라 ‘일식'이라는 말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에도 마지못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익숙한 장소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셰프의 인사가 나를 맞아주었고, 한눈에 내 자리가 보였다. 셰프는 조심스레 '기역(ㄱ)' 자로 앉으면 좋겠다며 자리를 옮겨줄 것을 제안했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젓가락을 가지런히 정돈한 뒤, 셰프를 응시했다.


"고등어는 역시 남해죠. 어제 정말 신선한 녀석으로 들여왔어요. 서해나 동해 고등어와는 차원이 다르죠."

셰프가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그 비릿한 등 푸른 생선을 잘 먹지 못한다. 생선의 비린내는 물론, 과일의 달콤한 맛조차 곤혹스럽게 느껴질 만큼, 예민한 입맛을 가진 나로서는 건강한 입맛을 가진 이들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일이었다. 반짝이는 은빛 고등어를 보는 순간, 맛을 보기도 전에 두려움부터 앞섰다. 하지만 이것은 고등어냐, 연어냐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연구 끝에 탄생한 셰프의 '창작품'인가. 나는 거부감을 뒤로하고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놀랍게도 비릿한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식감은 연어처럼 부드러웠고, 그 맛은 마치 참치회처럼 고소했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오일 향은 오히려 귀여운 수준이었고, 재빨리 고추냉이를 곁들여 입안을 깔끔하게 중화시켰다.


"그 순간, 나는 셰프가 단순히 신선한 재료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 나의 미식 경험을 바꾸어 놓고 싶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한 점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세심한 배려가 담긴 작품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셰프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어때요?'라고 묻고 있는 듯했다.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음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오마카세 셰프는 정답게 이야기를 건네주었고, 왠지 모르게 마음의 허전함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하루의 고단함이 달아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것이 바로 오마카세의 매력일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쫀득한 허쉬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야근이 잦던 날, 퇴근길에 사 먹던 ‘새벽의 사치품'. 기분 좋은 마무리에 이보다 더 좋은 디저트는 없을 터였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습관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리운 맛들이 떠올랐다. 프랑스에서 지내던 시절, 감사하게도 내 집은 루브르 박물관과 5분 거리였다. 피라미드 역과 스타벅스를 사이에 둔 그 골목에 하겐다즈 가게가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한국에서 먹던 녹차맛을 떠올리며 지친 기분을 좋게 환기시키곤 했다. 몇 년 못 가 그 가게는 일식집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샹젤리제까지 걸어가서 그 '사치'를 즐기곤 했다. 나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 있는 사치였다.

오늘도 나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미각에 대해 생각한다.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때론 추억이 되고, 때론 위로가 되어주는 마법 같은 존재임을.

오늘도 나는 그 마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쩌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렇게 맛과 함께 새겨지는 것이다.



에필로그

이번 글은 미각에 대한 향수와 음식이 주는 기쁨, 그리고 음식을 통한 치유와 위로의 경험을 담았습니다.

“어떤 맛은 단순한 미각의 경험을 넘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이 됩니다. ”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찌개 한 숟가락에 그 시절의 따스함이 느껴지고, 첫 데이트에서 함께 먹었던 파스타 한 접시에 풋풋했던 설렘이 되살아나듯이 말이죠. 이처럼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을 넘어, 우리를 보듬어주는 다정한 손길이 되기도 합니다. 일상에 지쳐 있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채워주는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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