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저녁, 오마카세를 만나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모자란 창의력을 혹사시키려니 카페를 떠나기 아쉬웠던 저녁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아이디어의 무게에, 글을 쓰다 울컥하며 눈물을 흘렸던 카페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트이게 해주는 무언가를 찾아 이곳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관계는 얼마나 깊어져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군중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섬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외로움을 품고 식탁 앞에 앉은 우리에게, 셰프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관계의 밀도를 건넨다.
셰프는 손님에게 말을 걸어 하루의 고단함에 지쳐 저녁을 먹으러 온 손님의 말 벗이 되어준다. 그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나는 그가 요리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꼈지만, 셰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칼을 움직였다.
배경음악으로 잔잔한 일본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에게서 은은한 초밥 식초와 숯불 향을 맡으며, 단단한 히노키 카운터의 감촉을 느꼈다.
나는 문득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을 떠올렸다. 그 그림 속 인물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에게 등을 돌린 채 각자의 고독 속에 잠겨 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셰프는 단순한 요리사를 넘어 ‘말 벗‘ 이 되어주었고, 나는 그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묶여 있던 마음의 끈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고등어가 신선해, 오마카세 추천 요리입니다.”
셰프는 묻지 않았는데도 말을 걸어왔다.
배가 고프지 않았던 나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화제처럼 위안이 되었다. 그는 남해바다에서 잡아 올린 고등어가 가장 신선하고 으뜸이라며, 다른 일식집과는 다르게 자신이 내어주는 접시 위의 음식은 크기와 양이 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자신만의 비밀을 알려주며 환하게 웃었다. 고등어 한 점을 입에 넣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름진 맛과 비린함 대신 느껴지는 고소함이 혀를 감쌌다.
그들의 관계는 익명과 고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오직 진심과 신뢰로 이루어진 작은 연결고리였다. 셰프는 자신의 요리 철학을, 손님은 자신의 하루를 말한다. 그 짧고 밀도 높은 소통 속에서, 우리는 삶의 본질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배를 채운 것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돌아왔다.
어쩌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은, 그렇게 맛과 함께 새겨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