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의 지도

부드러운 중저음톤의 매력에 빠지다

by 새벽별노리

집으로 향하는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낯익은 멜로디에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어, 이 음악 뭐지? 어디서 들었더라….”

희미하게 끝나는 음에 잠시 멈칫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물음표뿐이었죠. 주차를 마친 뒤에도 그 음을 따라 흥얼거려 봅니다.


‘아, 이거…!‘

그 순간, 갑자기 온몸이 시원해지면서 눈앞에 아름다운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바로 영화 <가위손>의 OST였어요.


핸드폰을 꺼내 OST를 검색하며 그 아름다운 영화와 다시 만난 저녁,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몇 번이고 돌려보던 그 시절의 추억까지, 음악은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생생하게 되살려 주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사뿐히 쏟아지는 비가 얼음 조각 같은 눈꽃송이로 느껴질 만큼 황홀한 순간이었죠. 그렇게 음악이 불러온 추억은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 잊고 지냈던 순수와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나 봅니다.


하지만 귀는 단순히 음악에만 예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리라는 감각은 언제나 마음의 온도와 감정을 읽어내는 특별한 레이더와도 같습니다.


저는 사람의 목소리에 유난히 민감합니다. 특히 부드러운 중저음 톤에는 경계심 대신 나를 감싸는 포근한 담요처럼 푸근함을 느꼈습니다.


그 음성에서 시작되는 알 수 없는 친근감과 매력 때문에, 친구들 중 목소리가 낮은 친구의 말에는 유난히 귀를 기울이곤 했습니다.


그런 끌림은 이성을 만날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묵직한 중저음을 가진 남자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갔고, 전화 통화 시 그 목소리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에 따라 관계의 발전 속도가 좌우되기도 했습니다.


제게 평생의 이상형은 바로 목소리 좋은 남자입니다. 단순히 듣기 좋은 목소리를 넘어, 듣는 이의 모든 감정을 흔드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죠. 싸우다가도 그의 목소리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고, 그 음성이 하루의 멜로디가 되어 끊임없이 나를 설레게 하는, 그런 존재를 매일 곁에 두고 싶습니다.


마치 잊고 지냈던 추억을 소환하는 음악처럼, 누군가의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와 설렘을 주고 관계의 가장 깊은 본질을 느끼게 해주는 힘을 가졌다고 믿습니다.


문득 20대 학창 시절의 짝사랑이 떠오릅니다. 웃는 모습이 참 멋있었던 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었죠. 웃을 때면 턱이 들어가고 각진 턱선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골조, 그리고 2mm의 수염이 그의 남성미를 더했습니다. 열 개의 이가 환하게 드러나는 호탕한 웃음소리는 제게 목소리만큼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는 그를 보러 친구와 함께 캠퍼스를 누비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 일쑤였지만, 친구들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저를 위해 그의 동선을 알려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외적인 매력에 끌렸던 그 시절의 짝사랑은 결국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아마도 제 이상형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진정으로 웃게 하고 위로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귀로 들리는 것에 있었나 봅니다. 뒤늦게 깨달은 저의 평생 이상형은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요.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진정한 이상형의 조건'이 있다면, 귀 기울여 보세요.



<에필로그>


당신의 목소리엔 나를 멈추게 하는 힘이 있어요.


낮고 부드러운 중저음의 톤은, 조용히 잠든 내 마음에 돌 하나를 던지듯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죠.


그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세상의 모든 소음은 아득히 사라지고 오직 당신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해요.


이름 세 글자에 담긴 간절한 설렘.


당신이 무심코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이유 없이 당신을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환하게 웃는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져요.


당신의 웃음은 세상 그 어떤 빛보다 눈부셔서,

나는 당신의 목소리에 반하고 그 빛나는 웃음에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집니다.



에피소드


그는 언제나 다정한 눈빛으로,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로, 또 때로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아 내 이름을 불러주곤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내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 나로 인해 느끼는 행복, 그리고 헤어져 있을 때의 간절한 그리움이 모두 담겨 있었다.


서로를 향한 존중과 깊은 신뢰가 깃든, 우리만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면 특별한 애칭을 덧붙였다.

그 이름은 아무도 모를, 오직 우리에게만 의미 있는 단어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언어를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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