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그녀 때문이었다

제21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센트로

by 그루


8월 13일, 날도 활짝 개인 토요일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첫날은 팔레르모 지역을 중심으로 돌았고, 어제는 보카 지구, 오늘은 가까운 센트로를 돌아보려고 한다. 호텔이 센트로에 있으니 마음도 가볍다. 게다가 오후에는 기대하던 이과수로 간다. 17시간 이상 가는 먼 길이지만 버스의 환경이 좋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틀 동안 서너 번도 더 지나다녔던 플로리다 거리와 라바제 거리를 지나면 콜론극장과 ‘7월 9일 대로’에 있는 오벨리스크, 대통령궁과 5월 광장, 대성당과 까빌도 등 중요한 볼거리들이 모여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어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한나절이면 가능하다.



콜론 극장 앞의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전인데도 세계 3대 극장 중 하나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콜론극장 앞에는 공연이 곧 시작하는지 사람들로 붐빈다. 악수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 서둘러 들어가는 사람들, “토요일이어서 공연을 일찍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1920년대만 해도 세계 5대 경제 강국이었다는 말이 떠오른다.



제국의 상징 오벨리스크


라바제 거리에서 콜론극장을 지나면 바로 7월 9일 대로가 나온다. 144m의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 폭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리 좋은 것인가. 오른쪽에 보무도 당당한 72m의 오벨리스크가 보인다.


7월 9일 대로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원래 고대 이집트의 사원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뾰족 기둥이다. 사각형의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기둥은 대부분 아스완의 화강암 채석장에서 캐낸 것으로 몸체에는 종교적 헌사나 파라오의 생애 등을 상형문자로 적어놓았다. 카르낙크에 있는 하솁슈트 오벨리스크 아랫 부분에는 이 거석을 깎아내는데 7개월이 걸렸다고 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고, 테베에 있는 하솁슈트장전을 가보면 나일강에서 나룻배로 옮겨지는 장면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거대한 한 개의 돌덩어리를 다루는 기술은 퍽 어려워 페니키아나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도 따라 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로마를 통하여 최소 12개는 서방으로 유출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탈리아는 물론, 지금은 미국에도, 영국에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제국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다. 자랑처럼 새워 놓은 것이나, 남의 것을 짓밟고 빼앗아온 것이니 제국의 상징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건설 4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오벨리스크, 굳이 오벨리스크 모양을 세워야만 했을까 싶다.



오벨리스크를 지나면 어느 길이든지 5월 광장 쪽으로 향해있다. 핑크색이 칠해져 있는 대통령궁을 마주 보고 왼쪽에는 12개의 기둥을 가진 고전주의적인 장중한 느낌의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종탑도 없을 뿐 아니라 주랑의 형태도 여느 가톨릭 교회와는 다른데, 그리스나 로마 신전의 느낌이 강하다.


교황이 되기 전까지 프란체스코 교황이 재임했었던 대성당



남아메리카 해방의 아버지 ‘산 마르틴’ 장군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며, 철도노동자였던 이탈리아 이민자를 아버지로 두었던 프란체스코 교황이 재임했었던 교회였다고 한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인구는 원주민보다 이민자가 더 많았던 시기였으니 세 사람 중 한두 명은 이민자로 어릴적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봤을 ‘엄마 찾아 삼만리’(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살던 아이가 부자나라인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라는 동화는 20세기 초 당시 부자였던 아르헨티나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에바, 그녀 때문이었다.


하지만 5월 광장으로 내 발을 이끈 것은 대성당도 아니고, 스페인 총독부 건물이었던 ‘까빌도’도 아니다. 대통령궁인 까사로사다Casa Rosada로 불렸던 곳을 보고 싶었다. 아니, 영화에서나 사진에서 에바 페론이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손을 뻗었던 발코니와, 에바가 세상을 떠났던 날 슬픔의 꽃다발이 구름처럼 감쌌던 사진 속의 대통령궁을 보고 싶었다. 영화나 노래, 문화의 영향은 대단한 것이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오고 싶었던 욕망은 단지 에바, 그녀 때문이었다.


대통령궁과 5월광장에 서 있는 아르헨티나 국기의 창안자 '마누엘 벨그라노'장군의 기마상



1945년 당시 부통령이던 후안 페론과 결혼한, 성공한 배우였던 에바 두아르테는 남편의 유세현장에 같이 다니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페론은 1946년 6월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자궁암으로 1952년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7년의 시간 동안 그녀가 해냈던 많은 여정을, 페론을 도운 ‘포퓰리즘’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후안 페론보다도 더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그녀는 진정한 노동자와 민중의 어머니였다.


에바가 없는 남편 후안 페론은 1955년 정계에서 쿠데타로 축출되었으며 쿠데타로 집권한 새 정부에서는 페론과 민중의 상징인 에바의 시신을 이탈리아로 빼 돌렸고 1971년에는 이사벨 페론이 아르헨티나로 송환하여 대통령궁에 안치했으나 다시 일어난 쿠데타 군사정부는 골칫덩어리였던 에바의 유해를 레골레타에 있는 공동묘지 두아르테 가족묘지에 옮겨 버렸다. 어쩌면 에바 자신이 사랑한 아르헨티나의 민중들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에바 페론, 그녀가 서 있을 것만 같은 카사 로사다의 발코니


1930년부터 1976년까지 군사쿠데타가 6번이나 있었던 나라 아르헨티나, 군사독재가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경제적으로 일어설 기미는커녕 2014년에는 또다시 디폴트를 맞았다. 100년 동안이나 전쟁이나 혁명 같은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보다도 다채롭고 자원이 풍부한 땅을 가진 아르헨티나의 추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르헨티나가 걷는 행보는 우리가 조심하고 눈여겨봐야 할 때다.


총독부 건물인 까빌도


에바와 페론 그리고 체 게바라의 사진까지 있는, 그들이 지나다녔을 대통령궁 안을 대충 보고 나오니 저만치 흰색의 까빌도가 햇살을 받아 더욱 하얗게 보인다. 총독부 건물이 순결한 흰색이라니.


거리에서, 수준높은 탱고와 다양한 연주를 즐길 수 있는 플로리다 거리


오후 호텔로 돌아오는 길, 플로리다 거리에서 3페소에 거리 커피 한잔, 라바제 Calle Lavalle거리에서 멀지 않은 파시피코 백화점, 이과수에서 물에 젖으면 갈아입을 수 있는 짧은 반팔티셔츠를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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