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항구다.
탱고의 고향 La Boca
부에노스 시내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La Boca지역으로 향했다. 152번 버스를 타면 보카 지구가 종점이란다.
마음을 느긋하게 하고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차림새도, 창밖 풍경도 달라진다. 비가 오고 있어서인가, 센트로와는 다른, 조금은 곤궁해 보이는 풍경이다. 한 시간 정도 가니 종점인 보카 지구다. 항구가 바로 보인다. 부에노스가 항구였다는 것을 이 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식을 못했었다. 항구의 이미지와는 멀었던, 내가 알고 있던 이 도시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boca’는 스페인어로 ‘입’, ‘출구'를 의미하니 Riachuelo강의 하구로 보카는 아르헨티나로 들어오는 창구였었다. 아르헨티나가 부로 명성을 떨쳤을 당시에 유일한 항구였던 이 곳은 유럽의 이민자들이(대부분 이탈리아계) 부푼 꿈을 안고 첫발을 내딛었던 곳이다.
‘보카’는 탱고 Tango의 고향이기도 한 곳으로 탱고는 맨 몸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부두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많은 이민자들의 힘든 삶의 땀방울 속에서 태어난 음악과 춤이다. 쿠바의 무곡과 아르헨티나 음악, 흑인의 축제 음악이 융합하여 만들어진 음악으로 1875년경 탱고(땅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노동자다' 낀께라Benito Quinquela Martin
버스정류장 앞 녹색의 Museo가 보인다. 낀께라 마르틴 미술관이다. 1890년생인 낀께라Benito Quinquela Martin는 배에서 석탄을 날라다가 석탄을 팔아서 생활하는 부모를 두었다. 부모를 돕기 위해 초급학교 3학년에 중퇴를 해 가업을 이었지만 보카 지역의 담장에 그린 그의 ‘그래피티’는 소리 소문 없이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렸다.
미술관은 그가 살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나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뱃사람들의 부적 같은, 뱃전에 장식했던 나무 조각품들을 전시한 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역시 뱃사람이거나, 배를 사랑했거나, 이 곳 보카를 무지무지 사랑했던 것 같다. 그림에는 힘이 넘친다. 넓적한 나이프로 눌러 표현했을 것 같은 묵직하고 두꺼운 질감, 강렬한 색감과 어두운 톤에는 그의 작업하는 모습이 투영되어진다. 보카 항구의 모습과 어두움에 묻힌 배들, 배와 함께 그림자처럼 한 몸이 된 부두 노동자들의 모습은 노동을 숭고하게 묘사한 것을 떠나서 그는 노동자다. 아니 “나는 노동자다.”라고 그가 외친다. 그림 안에서.
힘밖에는 가진 것이 없는 조선소의 노동자, 석탄을 나르는 노동자, 해가 넘어가면 선술집에서 탱고 한 곡으로 몸을 풀고 일당을 날리고 마는 그는 이민 노동자였다. 그림 속에서나마 그는 이들과 ‘보카’와 한 몸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될 정도로 유명해진 뒤 일생동안 살아왔던 보카 지역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아름다운 마을로 꾸미면서 지금의 보카가 탄생된 것이다.
비가 오는 거리에서도 탱고 음악은 시원시원하게, 정열적으로, 때론 질기게 끊어질 듯 여전히 울려 퍼진다. 빗방울만 잦아들면 언제라도 무용수들이 튀어나올 듯한.
조선소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로 벽이며 지붕 등을 칠했다고 하는 작은 골목이라는 뜻의‘Caminito’는 알록달록, 아, 어느 곳에 내가 서 있어도 독특한 화보가 나올 듯하다. 작은 가게마저도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다. 에바 페론도, 20세기 초 일세를 풍미했다는 탱고가수 ‘카를로스 가르델’, 이곳 보카 주니어스 출신의 축구황제 ‘디에고 마라도나’ 등 여기저기 서민들이 사랑하는 인물 피규어들이 반가운 인사를 한다.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 조금 더 걸어가니 카미니또 가까운 곳에 이들의 영웅 마라도나가 뛰었던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이 보인다.
센트로행 29번 버스를 타니 아직 러시아워가 아니어서 한산하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 뒤에 앉은 내게 고개를 돌려 아르헨티나의 인상을 묻는다. 도시가 아름답고 사람들이 너무 친절하다고 말했더니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풋!, “나는 이미 멘도사에서 아르헨티나 사람에게 뻑~ 가버렸는걸.”
환전도 할 겸 호텔과 적절한 거리에서 공연하는 탱고 공연 티켓을 구입하러 라바제 거리의 할인 티켓부스를 왔다 갔다 하다가 Dorrego 광장 부근 ‘바르수르’에서의 티켓을 구입했다.
밤 8시 공연에 도착한 ‘바르수르’, 오래된 거리와 가스등을 켠 것처럼 아스라한 안개는 마치 흑백 영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간 듯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불빛, 카페의 손님들도, 집기나 짙은 색의 인테리어조차도 과거에 와 있다.
깊어가는 밤, 연주자의 호흡과 댄서의 땀방울까지도 리듬감으로 느껴지는 탱고의 선율에서 보카의 고독과 향수, 원초적인 그들의 삶을 느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