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Signagi'

The City-니코 피로스마니와 백만 송이 장미

by 그루


국경에서 1시간여를 달려 택시가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오르더니 해발 800m의 아름다운 마을 시그나기 마을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너무 다듬어놓은 것 같지만 아름다운 주황색의 기와지붕들은 잠시 홀린 듯 쳐다보게 만들고 태워버릴 듯한 태양빛도 짙은 녹음에 잠시 주춤하는 듯하다.

시그나기는 카케티 kakheti주의 작은 마을로 텔라비에서 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2천여 명 정도이다.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심한 지역으로 포도 생산량이 많아서 와인 생산지의 중심지로 마을의 끝자락에는 와인셀러들의 샵이 많다.

18세기 에레클2세는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을 위해 견고한 성벽을 쌓아 이 마을을 만들었으며 시그나기란 명칭도 터키어에서 온 대피소, 피난처라는 Shelter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실크로드의 길목인 이 곳은 19세기에는 최고의 무역 거점지로 발전했다.


시그나기의 성문 중 하나, 성문 밖에는 묘지들이 있었다.
시그나기 마을 전경


마을의 중심에 있는 시그나기 호텔에서 바라보이는 그림 같은 마을의 경관도 훌륭하여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조지아에 올 때는 여름만 피해서 오리라 다짐하면서, 여행자에겐 아무리 더워도 해야만 하는 숙제는 해야 하는 법, 가장 멀리 있는 보드베 수도원부터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지만 7월의 조지아는 가혹하리만치 덥다. 덥다.



보드베 Bodbe수도원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성녀 니노가 묻혔다는 9세기에 세워지고 17세기에 재건한 보드베 Bodbe수도원은 조지아의 성지로 카케티왕국 왕들의 대관식 장소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시그나기에서 2Km 정도 되는 그리 멀지 않은 길로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지만, 그것은 날씨 좋은 봄이나 가을의 얘기, 택시 왕복 8리라에 다녀왔다.


Bodbe수도원의 사이프러스 나무



이곳은 조지아에서는 매우 중요한 곳으로 수도원의 부지가 매우 넓다. 마른땅에서 잘 자란다는 너무 멋진 진한 녹색의 사이프러스는 하늘까지 뻗어있다. 돌아오는 길, 마을 입구에서 실한 복숭아 6개를 4.5 라리에 구입했다. 건조하고 높은 기온만큼 얼마나 당도가 높은지, 과연 과일들의 천국이다.


산책길, 스테판 교회에서 성 조지 교회

18세기 ElekleⅡ세가 만들었다는 4.5Km의 성벽길에는 레이스 모양으로 오린 것 같은 23개나 되는 둥근 망루와 6개나 되는 성문이 시그나기성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동화책에서 나올 법한 레이스모양의 망루


스테판 교회의 망루에서 시작해서 성벽을 따라가다 산책길로 접어들어 카프카스 산맥을 보면서 한참을 걷다 보면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예쁘고 작은 레스토랑도 나오고, 뜰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 두 분이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시며 쉬어가라고 발길을 잡는다. 뿌리치고 그냥 갈 수 없어 시원한 티 한잔에 카프카스 산맥을 보면서 더위를 식히기로 했다. 전망 좋은 곳에 앉아 호감을 보이는 따뜻한 아주머니들과 짧은 러시아말이지만 몇 마디는 주고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 참을 걷다가 시그나기 읍내에 접어들 즈음 퐁퐁 나는 굴뚝 연기에 이끌려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조지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포도덩굴이 집을 타고 올라온 전형적인 조지아 주택을 개조해 만든 레스토랑이다. 시그나기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카케티 지방의 평야. 산책길에서
성 조지 교회가 보이는 풍경




우리나라의 막걸리처럼 유리자에 넣어온 하우스 와인 1리터에 8 라리, 돼지고기로 만든 (므)쯔와디와 포도잎을 이용한 똘마 그리고 조지아 요구르트 마쪼니를 시켰는데 먹을 만하다. 아름다운 시그나기에서 조지아 와인을 앞에 두고 천국 같은 풍경을 보고 있는데 뭔들 맛있지 않겠는가.


므쯔와디. 조지아의 돼지고기 요리는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다.




시그나기 박물관

고풍스러운 시청사와 연결된 19세기 조지아의 철학자이며 역사학자, 문학가인 Solomon Dodashvili의 이름을 딴 솔로몬 도다쉬빌리 광장엔 아침부터 8월의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이 많다.


시청사 옆길로 들어가면 뮤지엄이 있는데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뮤지엄의 입구에는 짐승의 뿔로 만든 술잔 Khantsi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을 청동으로 표현한 ‘타마다상’과 뒹굴듯이 놓여 있는 와인 항아리 크베브리Kvevri가 과연 조지아답다.

박물관 입구에 앉아있는, Khantsi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을 청동으로 표현한 ‘타마다상’

타마다는 축제나 잔치에서 주관하는 사람을 일컫는데 술자리에서 건배를 주관하는 사람도 ‘타마다’라고 한다. ‘타마다상’은 꽤 오래 전의 작품처럼 보이는데 뮤지엄 밖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1충에는 고고학 박물관으로 조지아의 역사와 생활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유물들이 있는데 문양에는 포도문양이 역시 많다. 지리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조지아의 남자들은 용맹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효율적으로 사용했던 짧은 칼들은 거의 예술작품이다.

니코 피로스마니와 백만 송이 장미

2층에는 피카소 등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조지아의 국민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ashvili(1862-1918)의 작품들이 많다. 프랑스의 화가 루소와 루오를 합쳐놓은 듯한 화풍이다. 루소의 그림보다는 어둡고 강하며 더 간결하고 담백하고 루오의 그림보다는 훨씬 감성적이다. 보이지 않는 원시적이며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시그나기와 가까운 마을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한 그는 트빌리시로 이주한 후 빈곤한 생활을 하는 중에도 조지아의 혼이 담긴 작품들을 그렸다. 이후 1912년경 유럽에 그의 이름이 알려졌으나 한 신문의 혹평에 그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글은 독이 되어 심지어는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나보다.

알려진 일화는 허구가 가미된 사실일지라도 피로스마니의 편향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나오는 길에 피로스마니의 사진을 보고 찍어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준다. 피카소가 피로스마니를 그린 귀한 사진이 있는 자료다.

위, 두 번째 그림이 피카소가 그린 니코 피로스마니


그의 불우한 삶과 한 여인(프랑스 출신 배우였던 마르가리타)에게 그의 모든 것(그림과 집 심지어는 피까지)을 팔아 구입한 엄청난 꽃과 장미를 보내 사랑을 고백한 슬픈 사랑이야기가 그의 사후 알려져 라트비아 작곡가의 곡에 러시아의 시인 안드레이 보즈넨센스키Andrei Vozenesensky의 시를 붙이고 러시아의 국민가수 알라 뿌가쵸바 Alla Pugacheva가 1980년대에 발표한 "백만 송이 장미 Millions of Red Roses"로 태어났다고 한다.

원래 그 가사가 담긴 곡을 듣고 싶어 음원사이트를 검색했더니 뿌가쵸바의 곡은 있으나 언젠가 들어봤던 부드러운 저음의 러시아 남자가수가 부른 곡은 없다.

Millions Of Roses

Once upon a time an artist live, he had a house and canvases

But he fell in love with actress, who adored flowers

Sold all his painting and works,

And for the summ, he had got,

He bought the ocean of flowers

Million, Million, Million, of Red Roses

who's in love, who's in love in earnest

Would turn his life to flowers for You.

Morning You'll look out from the window

perhaps, You have lost Your mind...

As the extension of Your dream,

Square is full of the flowers at Your sight.

Your soul would grow cold

"What a rich man plays tricks here?"

But, standing under Your window,

Train took her into the night, their rendezvous was too brief

But her life was lift was light was lightened with the wild song of roses.

The artist lived in loneliness, he went through much grief,

But his life was lightened by a square, full of flowers.

피카소가 그린 작업실의 피로스마니를 스케치한 사진이 있는 니코 피로스마니의 생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을 나오면 왼쪽으로 전에는 레스토랑으로 사용한 듯한 발코니가 나온다.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은 시그나기에서 마주친 최고의 풍경이다. 뮤지엄을 나오면서 오늘 한 번 더 와도 되겠냐며 티켓을 보여줬더니 그러란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만나는 에레클 광장은 여행객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도 있는, 시그나기의 중심이다. 광장에는 와인 항아리 크베브리 위에 우뚝 서 있는 사슴이 서 있다. 피로스마니의 그림에도 곧잘 등장하는 수사슴은 시그나기의 심벌이다. 아니 조지아의 상징일 것이다.


에레클광장의 수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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