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섬 - 신안 기점, 소악도, 12사도 순례길
북반구의 11월은 가을걷이도 끝나고 긴 겨울과 12월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열정을 잠재우고 냉정을 찾아가기 위한 시간인 것이다. 11월만큼 매력이 없는 계절이 있을까, 자연의 색깔은 퇴색되어 마음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을 쉽게 찾지 못한다. 바삭거리는 갈색빛과 둔탁한 회색빛의 도시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11월 말,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기점 소악도로 향했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을 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떠나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고나 할까, 나만 떠나는 것에 시큰둥한 게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압박이 없는 여행이 필요했다.
압해도 송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12시 30분 출발하는 배를 탔다. 약 40분 만에 대기점 선착장에 도착한다. 거주민이거나 여행객이거나 몇 사람은 소악도나 소기점도에서 내리기도 한다. 하늘은 맑고 높은, 늦가을의 대기점도에는 네댓 명의 방문객이 다였다.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11월은 여행의 최적기인 셈이다. 날씨만 좋다면 말이다.
대기점 선착장에는 첫 번 째 베드로Petro의 집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반갑게 맞아주는 듯한 모습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는 팔각형의 하얀색 몸에 얹은 군청색 지붕은 이곳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안녕하십니까? 베드로 아저씨! 종을 흔들어 어부 베드로를 깨운다. 어쩌면 일상에 흥미를 잃은 나 자신을 깨우는 퍼포먼스일 수도 있겠다.
그는 예수의 제자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며 많은 이들은 성격이 급하고 실수도 잦은 인간적인 시몬을 좋아한다. 예수는 갈릴리의 어부인 그에게 바위, 또는 반석을 뜻하는 이름(게타=Petro)을 선물했다. 그의 이름은 Peter(영어), Пётр(러시아어), Pedro(스페인어) Pierre(프랑스어), 심지어는 아랍어까지 남자아이의 이름으로 가장 선호하는 이름이 되었다. 베드로의 집이 반갑다면 이미 그대의 순례는 시작이 된 것이다. 고즈넉한 산사는 종교를 불문하고 그 누구라도 품어주듯이 이곳이 기독교인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도착하는 순간 알아차린다.
베드로의 집 안에 있는 길쭉하고 작은 창을 통해서 만난 바다는 또 다른 세상이다. 조심스럽게 왼쪽에서 고개를 내민 엉겅퀴 한 송이, 엉겅퀴 꽃은 가시가 있어 사납지만 강인하고 아름답다. 예쁜 색깔로 인해 자꾸 쳐다보게 만드는 꽃이다. 가시는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기도 한다.
베드로의 집을 뒤로하고 왼쪽으로 약 1킬로미터 거리의 언덕을 하나 넘으니 동화 속 주인공이 나올 것만 같은 두 번째 안드레아(Andrew)의 집이 보인다. 어젯밤 안드레아의 집 옆에 있는 민박을 예약했다. 얼른 방에 짐을 던져놓고 나섰다. 그리스와 비잔티움에서 선교를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래서인지 지붕은 양파를 닮은 전통적인 러시아의 지붕 모양이다. 안드레아는 베드로의 동생이며, 이들의 동료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포함한 네 사람은 같은 시기에 갈릴리에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이들은 규모가 있는 어업으로 생활했으며 꽤 풍족했다고 한다.
세베대의 아들 중 형 야고보James는 세 번째의 집주인이다. 그는 스페인에 이주해 살던 이스라엘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44년 경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12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야고보의 제자들은 참수당한 그의 시신을 배에 실려 보냈다. 시신은 스페인 북서쪽 갈리시아 지방으로 부패하지 않고 왔다고 한다. 가리비 조개껍데기로 뒤덮여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해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묻혔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가리비 껍데기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상징이 되었다. 12 사도 순례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12킬로미터의 순례길은 12 사도의 집을 연결한다. 가리비 껍데기는 12 사도 순례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 번 째는 요한John의 집이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예수는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다.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당시 로마제국 땅이었던 튀르키예의 에페수스Ephesus로 이주했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지는 것은 매우 위험했으므로 요한은 마리아를 불불산Bülbül Mountain에 은신시켰다. 지금도 남아있는 마리아의 은신처는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이다. 12제자 중 가장 어렸던 그는 이들 중 가장 오래 살았으며 순교하지 않은 유일한 사도이다. 요한의 집 앞에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조형물을 연상시키는 유니콘이 바다를 바라본다. 유니콘은 우리나라의 해태처럼 상상 속의 동물인데 코뿔소의 뿔과 흰색 말을 결합시킨 동물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아시아 등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유니콘의 뿔은 순결을 나타내며 기독교에서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의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모셨던 요한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대기점도에는 이들 네 사람의 집과 다섯 번째의 집 빌립Philip의 집이 위치한다. 빌립의 집은 대기점도 남쪽에서 소기점도로 이어지는 노두길을 뒤로하고 언덕 위에 서 있다. 아이들의 동심을 자극할 만한 디자인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발했던 아르누보의 향기가 그윽하다. 어부였던 그는 소아시아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고 보니 대기점도의 다섯 사람은 모두 어부 출신이다.
기독교는 암울하고 궁핍했던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에서 긍정적인 공헌도가 매우 크다. 특히 육지보다 섬에 먼저 들어온 기독교는 섬사람들을 개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다하였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섬에는 기독교인들이 많다. 증도면에 속한 대기점도와 소악도 등에는 이곳이 고향인 문준경 전도사의 열정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주민들은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12 사도의 집이 신안의 작은 섬 대기점도와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과 딴섬에 성공적으로 터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순례길은 지금은 충분히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로 보이고도 넘치는 기독교와는 다른, 소박하고 순전하며, 때론 열정이 넘쳤던 2,000년 전 초대교회의 원형을 작은 섬에서 열 두 제자의 이름을 되뇌며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순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열두 개의 건물을 건축한 이들은 대부분 비기독교인이다. 김강, 강영민, 김윤환, 박영균, 손민아, 이원석 작가와 프랑스 작가 장 미셀 후비오Jean Michel Rubio와 파코Pako, 브루노 프루네Bruno Fournee와 포르투갈 사람 아르민딕스Armindix와 독일 작가인 에스피 38 등이 참여하였다. 건축가들은 한 두 평에 불과한 작은 집에 종교와는 상관없이 익명의 사람들이 만나게 될 따뜻한 미래의 세상을 담았다.
빌립의 집까지 보고 노두 갤러리에서 시간을 보낸 후 설렁설렁 들어가니 민박 주인아주머니는 저녁을 먹으라고 부른다. 어쩌면 하루 중 제일 즐거운 시간이다. 남이 차려준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매일 식구들을 배려해서 밥상을 차려야 하는 사람이나 알까. 민박집에서 묵을 때는 대부분 밥은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 민박집 밥은 섬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하여 내주는 정갈한 집밥이다. 호불호가 있지만 반찬의 맛을 떠나서 내가 차린 밥이 아니니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내게 섬여행에서 밥시간은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창 밖의 꽃 담장 위로 붉은색 지붕이 솟아있고 돌아가는 바람개비 뒤로 안드레아의 집이 보이며 붉게 물든 갯벌 뒤로 수평선이 이어진다. 장막처럼 빠르게 어두워지는 칠흑 같은 섬에서의 하룻밤은 파도소리마저 잠재우고 심장소리마저 멎은 듯하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번쩍 눈을 뜨니 해가 중천이다. 8시가 지났으니 밥을 먹으라고 부른 것이다. 후다닥 아침밥을 해치우고 소기점도를 향해 나섰다. 대기점도의 빌립의 집을지나 노두길을 넘어가면 오른쪽 저수지 안에 여섯 번째 바르톨로메오Bartholomew의 집이 보인다. 바르톨로메오를 전도한 사람은 다섯 번째 집의 주인인 빌립이다. 바르톨로메오는 톨마이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나다나엘Nathanael과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소아시아와 파르티아, 아르메니아 등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곳에서 순교한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색유리로 만들어진 집은 들어갈 수가 없다. 단지 감상할 수 있는 조형물처럼 보인다. 그것은 시간, 시선의 위치에 따라 풍경과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 천천히 한 바퀴 돌다 보면 저마다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수 있다. 퍼뜩 떠오르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바르톨로메오의 축일은 아이러니하게도 1592년 8월 24일 프랑스에서 일어난 위그노 학살 사건이다. 가톨릭교도들이 정치적으로 부상하는 개신교인 위그노들을 바르톨로메오 축일을 기하여 학살하기 시작한 날이다. 성인의 의미보다도 그날 프랑스에서 일어난 처참한 역사적 사건으로 그를 기억한다.
약 10여분 걷다 보면 외국 작가들이 2020년 3월까지 1년 동안 숙식과 현장 사무소를 병행했던 허름한 공간이 나온다. 그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그곳에서 5분여를 걸어가면 일곱 번째 토마스Tomas의 집이 나온다. 그는 갈릴리 출신의 어부로, 성경에서 강직하지만 의심이 많은 인물로 그려진다. 도마라고도 부르는 그는 이란과 인도 남부에서 선교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경인 도마복음의 저자이기도 하다. 가톨릭신자인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이 토마스이다. 푸른 창틀과 진한 감청색의 문은 강직함의 표현인가. 최소한의 장식으로 디자인한 토마스의 집은 한마디로 간결하다. 내부 인테리어가 아름답다.
소악도로 진입하는 노두길 전에 왼쪽으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식당도 있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섬에서 드문 서비스 공간이다.
마태오Matthew의 집은 소악도와 연결되는 노두길 중간에 있다.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러시아 정교회 양식을 가져왔다. 교회는 거친 갯벌과 대비되어 멀리서도 아름답다. 러시아에서도 이런 작은 교회를 두세 번 본 적이 있는데 그 유명한 모스크바에 있는 바실리 성당도 이런 작은 교회 여러 개가 모여서 이루어진 교회이다. 마태오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 로마제국의 공무원인 세금징수원이었다.
소악도에는 순례길의 동기가 된 1940년대 문준경(1891~1950) 전도사가 증도면에 세운 11개의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인 소악교회가 있다. 교회 앞에 놓인 보따리와 고무신은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을 말해준다. 어떤 인물 동상의 이미지도 이것을 따라갈 수 없다. 그녀의 보따리는 모든 것이 어려웠던 시절 선교보다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물건들로 채워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녀의 마지막 교회인 소악교회는 12 사도 순례길을 탄생시킨 산실이었다. 교회가 주는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 앞에서 그냥 떠나기가 아쉬웠다. 말끔한 뜰에 있는 의자에라도 가서 앉아보고 싶었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교회를 지나면 소악도 남쪽 끝 지점 오른쪽에 아홉 번째 작은 야고보James의 집이 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라고 부르며 요한의 형제이며 세 번째 집의 주인인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열렬한 민족주의자이며 열심당원으로 알려져 있다.
소악도에서 노두길을 건너면 진섬이다. 진섬까지 왔다면 순례가 거의 끝나간다. 소악도 선착장도 이곳에 있으므로 배시간에 맞춰 배를 타면 된다. 노두길을 건너면 열 번째 유다 다대오Jude Thaddaeus의 집이다. 예수를 팔아넘긴 가리옷 유다와 다른 사람이다.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호성인이다.
유다 다태오의 집에서 나와 선착장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탑처럼 보이는 열한 번째 시몬Simon의 집이 보인다.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바닷가를 향해 있다. 내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다른 예배당보다는 못하지만 바닷가를 바라볼 수 있는 벤치에 앉으면 온갖 시름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유다 다태오와 시몬은 열심당원이었다. 당시 열심당원이라면 로마에 반기를 든 유대 민족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강제병합 시절에 독립을 위해서 노심초사하는 부류의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처음부터 가리옷 유다의 집이 제일 궁금했다. 세상과 결코 섞일 수 없는 운명의 바다를 넘어간 그의 집을 작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는 12 사도의 살림을 맡아 한 사람이었다. 짧은 생을 마감한 유다가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 가졌던 직업은 세리였다고 추정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열두 번째 가리옷 유다Juda Iscariot의 집을 염두에 두었다면 물때를 꼭 보고 방문해야 한다. 섬은 쉽게 다가가지 못하므로 아름답다. 그 섬들 중에서도 쉽게 건너갈 수 없는 외딴섬은 애처로워 더욱 아름답다. 그 섬을 사람들은 딴섬이라고 불렀다. 유다의 집 입구에는 꼬인 기둥 위에 종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꼬인 기둥은 변화를 주어 작품의 가치를 높이는 표현방법이지만 유다를 생각 하면서 고뇌한 작가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이미 꼬여버린 그의 처지를 애달픈 마음으로 바라보며 집을 지었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은 사람들의 발길을 닿게 만들었다. 종을 가볍게 흔들었다. 순례를 마치는 종소리가 유다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