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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May 26. 2018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

 티베트를 생각하며

   

1937년 개봉한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은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 감독 작품으로 1933년에 발표한 영국 작가 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영화화했다.    



1935년 3월 10일 밤 중국, 백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중국의 바스쿨에 파견된, 영국인 로버트 콘웨이conway(Ronald Colman분)를 포함한 다섯 명을 태운 비행기가 고도 21,000피트까지 올라갔다가 행방불명된다. 고도 21,000피트는 약 6,400m로 이처럼 높게 올라가야 할 곳은 티베트 고원밖에 없다.   

  

비행기는 티베트 국경지대의 히말라야 계곡에 비상 착륙하고 파일럿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 시간이 흘러 이들에게 다가온 일군의 무리를 따라 블루문 계곡에 도착한다. 이곳은 지도에도 없는 곳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은 티베트와 중국식 옷을 입었지만 유럽인의 모습이다. 그들이 거주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서양식 건축물과 그 안에 채워진 예술품들. 그곳에는 그들의 음악이 흐르며 그들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한다. 주인인 유럽인을 위한 요리를 하고, 그들의 승마를 위해 말을 준비하는 들러리들은 움막에 사는 티베트인들이며 이들은 계곡과 샹그릴라에 약 2천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인트로만 봐도 현대 영화 속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우수하다”는 진부한 논리가 1930년대 만들어진 영상에는 더욱 또렷이 부각되어 보인다. 언제까지 제국주의자인 그들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침묵해야 하나. 옛날 영화니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참아? 갈등하다가 그래도 심기가 불편 계속해서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시작했으니 끝내자”라는 마음으로 이틀 후 다시 보기 시작한 영화는 당시에는 매우 진지하고 절박하며 철학적인 문제를 하나씩 제시하기 시작한다.    


샹그리라의 대리인 '창'과 콘웨이의 대화
피아노를 연주하는 '산드라'와 콘웨이


샹그리라의 대리인 ‘창’에 의하면 이곳은 비범한 인물인 벨기에 태생인 페롤트 신부가 1713년 티베트 계곡에서 발을 헛디뎌 동사 직전에 원주민에게 구출되어 108세 때 완공했다고 한다.


콘웨이는 계속해서 이곳의 종교에 대해 묻자, “중용에 바탕을 두고 있소, 중용 자체까지도 절제하오. 중용을 지키면 행복해질 수 있소.” “범죄자가 생기는 것은 결핍 때문이며, 이곳은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범죄가 없소.”, “여기선 편한 마음으로 무병장수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있소.”

그러면서 당연히 탐욕과 시기도 없다고 말한다. 돈거래는 없으며 수많은 예술품과 책들은 계곡에 있는 황금과 교환해서 몇 백 년 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가지고 왔다고 한다.   

 

티베트는 호두가 많이 나는 곳이다. 영화 속에서 호두를 먹는모습이 등장한다.


날이 풀려 짐꾼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다섯 명은 2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자, 자신들은 납치가 된 것이 분명하며, 각자의 방식대로 탐욕과 의심을 키우고 내분을 일으키며, 급기야는 총소리까지 난다. 샹그릴라에서 반목과 살상이 난무하는 그들이 살아왔던 현실세계를 상기시킨다.


콘웨이와 하이라마


콘웨이는 ‘창’의 안내로 적어도 250살은 넘은 페롤트 신부(High Lama)를 만난다. 페롤트 신부는 자신이 하이라마High Lama라고 말하며 콘웨이를 의도적으로 납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을 지도자로 생각하고 데려온 의중을 말한다.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목적이 궁금하군요.”

“이곳이 계속 번영하려면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오,”

“불로 장생하는 건 달갑지 않아요, 오래 살아야 할 확고한 명분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샹그릴라가 존재하는 의미와 목적이오.”

“지배욕과 광기로 혈안이 된 인간들이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을 봤소. 더 이상의 비극이 어디 있소, 맹목적이고 잔혹한 지도자들뿐이며, 탐욕과 야만적이고 추악한 정복욕이 곧 심판을 받을 것이오.”


심판이 끝난 후 평화가 찾아오고 세계가 새 삶을 갈구할 때 인류는 문화와 음악을 되찾고 샹그릴라의 충만한 인류애, 사랑이, 기독교적인 윤리로 충만한 선한 이들의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콘웨이conway의 동생 조지(존 하워드 분)를 제외한 4명은 현실의 세계를 잊어가는 것처럼 샹그릴라의 풍요롭고 건강한 공기에 점차 익숙해간다.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산드라' , 배경의 탑들은 티베트식 탑이다.
벚꽃으로 가득한 이 장면에서 나는 티베트의 얄룽짱보강변의 복숭아꽃을 떠 올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산드라'와 '콘웨이', 그리스식 기둥들이 서 있는 정원


영화는 두 여자, 어릴 때 샹그릴라에 들어온 산드라(제인 와이어트Jane Wyatt분)와 20세 때 들어온 마리아(Margo 분)를 등장시킨다. 콘웨이가 사랑하게 된 산드라는 샹그릴라에 젖어 들어 현실을 잊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물 축이며, 반면에 1888년 스무 살에 들어와 여전히 아름다운 스무 살로 살아가는, 조지를 좋아하는 마리아는 6개월 전에도 탈출하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는, 현실세계를 잊지 않고 나가고 싶어 한다. 조지와 마리아의 계획 아래 흔들리던 콘웨이는 급기야 마음을 바꿔 샹그릴라를 떠난다.  

   



세 명은 어렵사리 샹그릴라를 빠져나왔지만, 길 안내를 맡은 믿었던 짐꾼들은 눈사태로 다 죽어버린다. 샹그릴라를 벗어난 마리아의 몸과 얼굴은 이미 70세에 가까운 할머니의 얼굴로 변해있었다. 마리아는 샹그릴라를 떠나는 순간, 그녀의 나이와 모습이 변할 줄 알면서 구차한 삶이지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현실 세계, 어쩌면 죽음을 택한 것일 수도 있다. 브라보!    


마리아의 얼굴을 본 순간, 조지는 절벽에서 추락하고 마리아도 생명을 다한다. 샹그릴라의 진실을 한 순간 의심했던, 콘웨이는 샹그릴라로 돌아가려 하지만 길을 잃고 만다.   


조지와 마리아 그리고 콘웨이는 짐꾼들과 함께 샹그릴라를 떠난다.
마침내 혼자가 된 콘웨이


콘웨이는 1년간 실종되었다가 현실 세계인 중국 선교구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회복하자마자 티베트의 샹그릴라로 돌아가겠다고 탈출, 그를 끝까지 추적하던 사람들은 티베트 국경 부근에서 그를 놓쳤다고 한다.   

  



‘샹그릴라’는 불교와 유교에서 중요시했던 중용을 미덕으로 삼고, 탐욕과 시기가 없는 무병장수하며 불로 장생하는,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적인 윤리로 충만한 선한 이들을 위한 세계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샹그릴라는 다양한 종교의 특징들을 융합한 이단 사교적인 집단의 특징들-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납치하는 행동까지-을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다.  


당시의 유럽은 경제 공황에 빠져, 누구나 할 것 없이 불안정한 일상을 보내는 시기였으며, 민주와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족했던 독일과 이탈리아는 침략의 이빨을 드러내며(2차 세계대전) 경제 공황을 타개하려고 했던 시기였다. 샹그릴라는 당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망할 수밖에 없는 꿈, 기독교적인 유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낸 것이다.


영화는 하이라마의 대리인 ‘창’과 ‘콘웨이’, ‘페롤트 신부’와 ‘콘웨이’의 대화를 통해, 다섯 명 생존자들의 갈등과 변화를 통해, 두 여성 ‘산드라’와 ‘마리아’를 대비, 탐욕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현실과 샹그릴라를 교차시키면서 영화가 상영되는 132분 동안 그 시절의 당신에게 묻는다.

    

“샹그릴라라는 곳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리의 샹그릴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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