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를 좋아한다.
겨울날, 눈이 하얗게 쌓이면 수풀 사이에서 지내던 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 앞에 나오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열량이 높은 돼지 비개를 나무 꼬챙이에 꿰어 새들에게 먹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산속에서는 아마도 산사의 스님들이 새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 주었을 것이다. 이렇듯 새들과 사람들과의 교감은 꽤 자연스럽다.
인연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그랬다.
배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은 가끔 서해의 먼바다로 낚시를 가곤 한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낚시를 하는데 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앉아서 쉬고 있는 거야.” 가끔 배에 작은 새들이 지쳐서 내려앉을 때, 물도 주고 먹을 것도 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어깨에 새가 앉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요할까 봐 새가 앉아있는 동안 낚시를 안 했다고 한다. 새에 대한 생김새를 물어봤지만 “그냥 아주 작았어, 참!” 하고 만다. 새가 오랫동안 자신의 몸에 의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에게는 예기치 못했던 생명과의 만남이었다. 지친 새의 숨소리까지 느꼈을 것 같다.
이 일은 한동안 잊고 살다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겨울, 남편이 발코니에 있는 화분 위에 작은 그릇을 하나 놓더니 새가 먹을 수 있는 모이를 조금씩 놓기 시작했다. 정원을 고스란히 느끼는 아파트 1층에 살기 때문에 지나가는 새들을 자주 보게 된다.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도 반대하던데”, 하면서 우려의 눈초리를 보냈더니, 고양이와는 다르다면서 옛날부터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 사람들은 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늘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릴 적 시골에 살 때 추운 겨울날 아침에 나와 보면 춥거나 배고파서 죽은 새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새들이 어떻게 알아볼까 했지만 일주일 후부터 박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새들과의 교류가 처음이었던 나는 새가 찾아왔다는 사실에 놀랐고 환호했다. 그것도 흔한 참새가 아닌 박새들은 너무 예쁘고 참새보다도 훨씬 작았다.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약간의 회색으로 치장한 신사처럼 말쑥한 넥타이를 맨 것 같은 박새는 얼마나 빠른지 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잽싸다. 박새보다 훨씬 작은 귀여운 쇠박새는 보통 박새들과 어울려 다니는데 먹이통에 올 때는 소리없이 다녀간다. 새는 작을수록 예뻐 보인다.
박새 중에서도 성숙해 보이는 놈이다.
우리나라 산야에 가장 흔한 새 중의 하나인 박새, 잘 생겼다.
귀여운 쇠박새, 크기가 박새의 2/3 수준이다.
그리곤 새초롬한 딱새들이 찾아왔다. 손가락 중지만 한 딱새는 수컷이 화려한데, 생김새는 암컷이 훨씬 예쁘다. 그런데 두려움이 많은 귀염이 오목눈이는 주변 작은 나뭇가지 사이에서 놀지만 절대 접근은 하지 않는다.
새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니 동네 산책길에 있는 정자(영학정) 지붕의 기와 사이사이에서 참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유려한 한옥 지붕 기와의 틈이 참새들의 아파트였다. 참새 소리야 누구나 알지만 박새와 오목눈이, 직박구리와 또르르르 굴러가는 예쁜 목소리를 가진 섹시한 콩새까지 그들의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또한 다른 세상이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도 맑은 비음이 섞여있는 박새 소리가 들리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발걸음은 더욱 느려지고 조심스러워진다. 청명한 가을날 들려오는 아름다운 콩새 소리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혹자는 은쟁반에 또르르르~ 콩알이 굴러가는 소리라고 했지만 비유가 너무 약하다.
딱새를 보는 순간, 반했다.
어미가 데려온 새끼 참새, 털이 안 빠져 어미참새보다 커 보인다.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목 깊이 넣어준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먹이를 놓지 않다가 6월 초, 갓 태어난 참새가 찾아왔다. 날지도 못하는 새끼를 어떻게 데려왔는지 새끼는 꼼짝도 못 하고 화분 위에 앉아있다. 털로 뒤덮인 새끼는 어미 참새보다 덩치는 훨씬 크다. 조심스럽게 모이를 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먹이를 계속 새끼 참새 입에 깊게 넣어주는 어미 참새 모습에 후덜덜 가슴에 통증이 몰려왔다. 70~200 렌즈를 낀 카메라로 이들의 광경을 몰래 들여다보다가 전율이 온 것이다.
박새는 4월 말이나 5월경 번식을 위해 어딘가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추워지기 시작한 늦은 가을날,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에 떠들썩하게 몰려오는 우아한 박새들의 행렬을 집 앞에서 만났다. 이들의 부재를 얼마나 궁금하고 애타게 기다렸는지 알고 있었을까.
2월의 어느날 느닷없이 동박새 두 마리가 찾아왔다.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올해 겨울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혹시나 싫어할까 봐 조심스럽게 새 먹이를 놓아주었다. 2월의 어느 날, 처음 보는 연둣빛 새가 찾아왔다. 2월은 새들의 이동시기도 아닌데 화들짝 놀라 관심을 기울였다. 사진을 찍어보니 눈 둘레가 하얗다. 동박새였다. 남편이 동박새를 보더니 지난해 낚싯배에서 내 가슴에 앉았던 새라고 하면서 놀란다. 남쪽이나 서쪽의 섬에 있는 동백꽃 옆에서 살아가는 동박새가 우리 집에 오다니, 손가락만 한 수컷과 조금 작은 암컷 두 마리였다. 동박새는 텃새이지만 나그네 새이기도 하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지나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이동하는 새들은 한 곳에서 일주일이나 열흘쯤 에너지를 보충하고 떠난다고 한다. 정말로 15일쯤 지나니 매일 찾아왔던 동박이가 사라졌다. 남쪽으로 혹은 서쪽에 있는 섬으로 갔는지, 내년에 또 오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새가 떠난 며칠 동안은 창밖이 정말 허전하다.
동박새, 눈 둘레가 하얗다
동박새에게 참새의 날개짓은?
먹이통에서 참새에게 쫓겨나는 동박새
동박새를 검색해 보니 동백 숲이나 벚꽃 더미에서 찍은 사진들이 보인다. 그 모습에 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주로 꽃의 꿀을 좋아하는데 동백 꿀을 제일 좋아한단다. 그중에는 길게 꺾은 꽃가지 끝에 달아놓은 먹이 등으로 연출한 사진들이 보인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들과 어미 새를 찍기 위해 대포를 장착하고 새둥지를 둘러싼 사람들의 무리에 화가 난 적도 있었다. 새뿐일까, 야생화를 찍기 위해 거리낌 없이 꽃을 꺾거나 물을 뿌리는 것을 본 적도 있는지라 연출사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을 넘는 연출사진에는 일단 고개가 돌아간다. 지나친 행동은 작은 생명의 생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것을, 행동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3월 초, 여수 남쪽에 있는 금오도를 방문했다. 숲이 울창한 금오도 비렁길은 다양한 새소리 들을 들을 수 있는데 내 앞에 나타나 주기 전에는 이곳에서 새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동백꽃이 흐드러진 길에서 동백꽃의 꿀을 가장 좋아한다는 동박새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놈들을 만날 꿈은 꾸지도 않았는데, 힘차게 울어대는 – 집에 온 동박새와는 다른 종이지만 마치 그놈들인 것처럼 - 동박이를 만났다.
금오도 비렁길에서 만난 동박새, 서울에서 만났던 종과는 다른 동박새다.
어청도에서, 딱새 한 쌍
어청도의 송골매
그리고 이어서 3월 말에 새들의 섬, 어청도에서 사람을 개의치 않고 행동하는 새들을 만났으며, 그곳에서 외국인 탐조객을 만난 후부터 조류도감과 새에 관한 책들을 사기 시작했다. 발코니에 찾아오는 새들을 보며 즐거워하거나 산책길에 만나는 새들의 목소리에 행복해하는 수준이었던 소극적인 태도를 벗어나, 어청도 방문은 나를 탐조에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날이 따뜻한 요즘은 새 먹이통을 들여놓았다. 5월 말에서 6월 초 새끼 참새들이 올 때쯤 먹이통을 내놔야겠다. 좁은 뜰이지만 새들이 좋아하는 열매가 많은 나무를 하나 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