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봉에 한번 와 봐라”

# 단양 - 제비봉, 구담봉과 옥순봉

by 그루


“최고다, 제비봉에 한번 와 봐라”

10월의 어느 날, 고군산군도의 섬 관리도에 해루질을 하기 위해 단양에서 오신 분들이 단양의 ‘제비봉’을 입을 모아 말씀하시면서 엄지 척을 한다. 같은 민박집에 묵으면서 이틀 연이어 트레킹을 하는 모습을 보고 등산을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생각하셨나 보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렀다.

11월, 관리도에서 돌아온 지 한 달쯤 지났다. 남편이 저녁을 먹으면서 대뜸 내일 제비봉 가자면서 준비를 재촉한다. 아마도 제비봉을 검색하면서 꽂힌 것이다. 다소 어이가 없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배낭에 짐을 싸고 있었다.



다음 말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9시도 전에 장회나루 주차장에 도착했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회나루 쪽에서 제비봉을 오르고 이곳으로 다시 내려오는 코스인 원점회귀 코스이다. 하지만 갑자기 제비봉의 다른 들머리가 있는 얼음골에서 오르고, 장회나루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이른 아침 텅 빈 주차장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차에서 내리면서 두리번거리는 우리를 보고, 보기에도 금방 도착한 등산객으로 보이는 아저씨께서 다가왔다. “제비봉 올라갈 거요?, 그럼 따라오세요.” 하시면서 차의 뒷 트렁크를 열더니 사과 두 알까지 건넨다.


우연히 마주친 친절한 산꾼 아저씨들의 호의를 의심할 틈도 없이, 제비봉 뒷길을 택했다. 장회나루에 차를 놓고 이들이 부른 택시를 타고 얼음골로 이동했다. 얼음골은 달랑 팻말 하나 있을 뿐 이곳의 지리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들머리가 평이하다.

제비봉코스와 옥순봉, 구담봉 코스(네이버지도 캡처하여 편집)


얼음골에서 오르는 숲길은 참나무가 빽빽하여 햇빛 한 줌도 귀하다. 도토리는 발에 차일 정도로 많다. 귀여운 도토리 하나 주어 이리저리 살필 시간도 없이 다람쥐처럼 앞서는 아저씨들을 따라가기도 바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에 힘겹게 따라가는 우리를 가끔 배려하는 듯 쉬어가기도 한다. 어떻게 왔는지 모를 정도로 가파른 정상까지 1.8km 거리를 순식간에 올랐다. 어떻게 선뜻 낯선 이들을 따라나섰는지 의문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론적으로 산꾼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갑자기 나타난 천사였다. 얼음골 들머리는 경사는 가파르지만 내리막길이 없고 너덜길이나 암릉구간이 적어 빠르게 정상으로의 접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빛이 적은 숲길이며 장회나루처럼 올라가는 길이 아름답지는 않다. 서울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등산 동호회나 길을 아는 사람은 간혹 이용하는 코스로 보였다.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않은 것을 보면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길은 아닌 것 같다.


제비봉 정상에서
정상 부근의 숲길


얼음골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약 1.8km이니 장회나루 쪽에서 오르는 것보다 500m가 짧다. 빠르게 정상에 오른 덕에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산꾼 아저씨들은 한적하게 앉아 준비해온 간식과 막걸리를 들이켜면서 한잔 권하기까지 하신다. 이것저것 얻어먹고 고작 음료 한 개를 건넨 것이 너무 미안했다. 제비봉 정상석 앞에서 세 분의 우정을 기념하는 사진을 한 장 찍어드렸다.

그러고 나니 인삿말처럼 “내려가는 길은 한 길이니” 하고 말끝을 흐리고는 휘리릭 내려가신다. 사업 은퇴 기념으로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쩌면 저렇게 몸이 가벼우실까. 우연히 마주친 이를 위해 그분들이 베푼 친절을 잊지 않고 다른 이에게 건네주는 것은 내 몫이다.


장회나루까지 내려가는 길은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는 암릉구간이다. 이 구간이 제비봉의 최고 백미로 누군가가 이렇게 험한 암릉 구간을 가꾸고 다듬어 놓은 것처럼, 최고의 정원사가 꾸며놓은 정원이다. 아래로는 충주호가 굽이치며 걸려있으며 눈앞에는 암릉의 바윗돌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화려하지만 절제된 풍광은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구간마다 조금이라도 넓은 바윗돌이 있는 곳에는 서성이거나 호수를 바라보며 간식을 먹거나 앉아서 멍 때리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다만 바위틈을 뚫고 나와서 멋진 자태를 보여주는 다수의 소나무들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기대거나 잡거나 하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 싶다. 땅이나 바위 위로 드러난 뿌리들은 사람들의 발길에 수도 없이 밟히고 차일 것이므로 이들은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제비봉에서는 쉽게 내려갈 수가 없다. 더욱이 얼음골로 올라왔던 우리는 이 모습을 처음 봤으니 발길마다 펼쳐지는 경치로 인해 더더욱 내려가는 시간은 더디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산에 오르는 이라면 당연히 천천히 음미하면서 쉬엄쉬엄 내려가는 것을 권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곳은 널렸지만, 감히 장담하건대 충주호를 바라보면서 내려가는 풍경은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림이 아니다. 역시 풍경 속에는 강이든 바다든 물이 있어야 한다.

유심히 보게 된 노출된 소나무 뿌리, 넓게 퍼져있어 사람들이 안 밟고 다니기도 힘들다.
옆에 있는 능선 풍경
오래 머무르고 싶은 풍경


이처럼 눈을 뗄 수 없는 풍경은 장회나루에 닿을 때까지 계속된다. 풍경에 취해 있다가 삐끗할 수도 있으니 이곳에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구나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구간에 놓인 계단은 꽤 많은데 꼭 필요한 안전망이다.

내려오다 보면 구간마다 사진을 찍거나 쉬면서 간단한 요기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하면서 한 번의 인사로 쉽게 말을 트곤 한다. 용인에서 오셨다는 부부는 다음에는 저곳을 가보라면서 강 건너 봉우리를 가리킨다. 어제 다녀온 곳인데 제비봉보다는 수월하단다. 그러고는 건너편 말목산 근처를 가리키면서 ‘두향’의 무덤이라고 덧붙인다. 뻔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 서둘러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지금도 여전히 풍경이 수려한 단양은 교통이 불편했던 그 시절에도 명성이 자자했다. 그래서 이름이 있는 곳에는 우탁, 이황을 비롯하여 이곳을 방문했거나 거주했던 명성이 있는 학자와 사대부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퇴계 이황이 중국 후난성에 있는 소상팔경을 본떠 단양팔경(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만들고 난 이후에는 이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을 것이다. 너무 바빠 눈코 뜰 새 없었을 것 같은 김홍도와 정선을 비롯한 여러 화공들까지 이곳을 방문하여 작품을 남겼으니 말이다.

중국의 유명한 명승지에는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바위에 새긴 글씨들을 과하게 많이 볼 수 있다. 단양에 와보니 이곳의 바위들도 못지않다. 한 가지 예로 대강면에 있는 사인암에는 장기와 바둑판은 물론이요, 무려 200여 개 이상의 새겨진 글씨와 이름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양반 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는 것을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들이 풍요롭고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던 당시의 상황이나 배경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김홍도나 정선의 그림보다 더 아름다워 놀라웠던 사인암. 바위에는 온갖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삼봉 정도전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도담삼봉


두향 이야기


단양에 가면 열여덟 살 어린 두향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관광 팸플릿에도 언급되어 있으며, 두향과 이황의 조형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두향제라는 축제를 개최하여 그녀를 기리는 것을 보면 두향은 단양이 사랑하는 여인이다. 처음에는 바람결에도 들려오는 그녀의 이야기를 안 들은 척 지나쳐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관기였던 18세의 어린 여인이 48세의 단양 군수였던 한 남자를 사랑하여 수절했다거나, 또는 헤어진 후 20 여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사람이 안동에서 죽자,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포장되어 회자되는 것이 불편했다. 조선 역사에서는 양반과 기생, 양반과 힘없는 여성 이미지는 모멸감이 느껴질 만큼 갑과 을의 관계이며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다.

양반兩班은 원래 문관과 무관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가족까지 확장되었으며, 관직과 토지를 갖춘 그 가문은 대대로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했으며 군역도, 노역도 비껴가는 한 구역의 작은 통치자가 되었다.

시대가 다른 것을 감안해도, 두향의 이야기가 결코 바람직하거나 내세울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 양반兩班이 대학자 퇴계 이황일지라도 말이다. 게다가 그가 1548년 단양 군수로 부임해서 풍기군수로 갈 때까지 근무한 기간은 약 10개월에 불과했다.


옥순봉과 구담봉

제비봉 능선에서 강 저쪽에 마주한 옥순봉과 구담봉을 바라보니 구미가 당겼다. 내려오면서 단양에 사는, 제비봉을 꼭 오라고 추천해주신 분께 전화를 드렸다. “이왕 온 거 그냥 가지 말고 장회나루에서 배를 꼭 타서 구담봉은 보고 가라”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단양 사람들이 단양팔경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봉우리가 구담봉이라고 하면서.


장회나루에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유람선이 정박해있다. 풍광이 아름다운 주변은 수위만 달라졌을 뿐, 충주호가 생기기 전 그 옛날에도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가 분주히 들락거리는 나루였을 것이다. 단양과 제천을 지나가는 충주호가 있는 남한강은 한강의 원류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길은 정선과 영월을 지나 단양과 제천이 있는 충주호에 이른다. 아름다운 강마을로 명성이 자자한 중국의 구이린(계림)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을 만큼 남한강과 북한강을 통틀어 이보다 아름다운 곳을 찾기는 힘들다. 이어 여주 이포나루 앞으로 흐르던 강물은 북에서 발원하여 철원, 화천을 지나온 북한강과 두물머리(양수리)에서 만나, 비로소 큰(한) 강이 되어 서울을 통과하여 김포 쪽에서 서해로 흘러 들어간다.


구담봉과 옥순봉, 제비봉이 마주하고 있는 장회나루 부근은 단양과 제천의 경계이다. 제비봉과 구담봉은 단양이지만 옥순봉은 청풍(제천) 땅이다. 16세기 단양군수로 근무했던 이황이 단양의 아름다운 풍광에 반해 팔경을 만들었는데 구담봉 옆에 있는 옥순봉은 아쉽게도 청풍(제천) 땅이었다. 청풍 군수에게 양해를 구해도 어쩔 수 없었는데 그는 입구 바위에 단구동문丹丘洞門(단양으로 들어오는 문)이라는 글을 새겨 녛어 아쉬움을 달랬다고 한다.

구담봉과 옥순봉은 유람선 구간에서 가장 아름답다. 옥순봉은 등산로에서 볼 때보다 물 위에서 볼 때 하얀 죽순들이 세차게 땅을 뚫고 나온 것처럼 동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구담봉은 바위군들이 유려하지만 옥순봉에 비해 정적이다. 기어오르는 거북이 모습이 있다는데 거북이 모습의 바위는 찾지 못했다. 두향의 묘가 있다는 둥지봉도 아름답다.

유람선에서, 구담봉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옥순봉

제비봉을 다녀온 2주 후, 이번에는 지인 두 분과 함께 옥순봉과 구담봉을 오르기 위해 단양을 다시 찾았다. 계란재에 있는 옥순봉 구담봉 주차장에서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원래 평소에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날까 말까 하게 만남이 뜸했는데, 괜히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났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우스웠다. 국립공원 사이트를 보니 구담봉과 옥순봉은 제비봉보다 등산 난이도가 낮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니 원만하게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쉬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는 구담봉龜潭峰(338.2m), 왼쪽으로 가면 옥순봉玉筍峰(286m)이 나온다. 선택은 취향껏, 조금이라도 더 어려운 길을 먼저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구담봉을 먼저 택했다. 등반은 기대한 만큼 수려한 풍경을 눈앞에 두고 걷게 된다. 2주 전에 충주호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구담봉은 보고 또 봐도 아름다웠다. 구담봉은 물 위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역시 절경이다. 배를 타고 바라보는 구담봉을 생각하면서 산을 오르니 그 아름다움이 배가된다. 오르내리막길이 적당히 섞여 있어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옥순봉은 수려한 구담봉 쪽보다 완만하여 대체로 수월하다. 다만 옥순봉을 보려면 등산로보다는 유람선을 타야 옥순봉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등산로에서 만난 구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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