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박새가 돌아왔다!

# 새와 친해지기 - 2

by 그루

동박이가 돌아왔다!


설마 돌아올까 했지만 지난해 2월 말에 우리 집 아파트 발코니에서 떠났던 동박새 두 마리가 올해 2월 다시 찾아왔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꿀을 좋아해 동백꽃이 피는 남쪽이나 서쪽 섬 지역에서 주로 생활한다. 환경이 좋은 곳에서는 텃새로 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꽃이 많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나그네새다. 동백꽃이 한창인 곳에서는 꽃에 머리통을 들이박고 정신없이 즙(꿀)을 먹는 동박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동박새는 동백꽃의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이동시켜 수분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래서 동박새란 이름을 얻었다. 나는 얘들을 동박이라고 부르는데 눈 주위에 하얀 고리 모양의 털을 가지고 있어 영어로는 White-eye라고 부른다. 동박새라고 부르는 우리 이름이 더 좋다.


전체적으로는 숲 속의 요정 같은 짙은 연둣빛 몸에 멱에서 가슴 부분은 노랗고, 배는 하얗다. 옆구리는 살짝 밝은 갈색 모카커피 가루가 묻은 것처럼 보이며 날개 아래 부분은 올리브그린색을 띤다. 흰색 고리를 가진 눈을 포함해 얼굴은 순전하기 그지없다. 실제로도 온순하여 어쩌다가 창을 사이에 두고 눈을 마주치는 일이 생겨도 쉽게 달아나지 않는다. 날카롭고 제법 긴 야무진 부리는 꽃의 맨 아래에 있는 꿀통을 마구 뒤지고 다닌다. 두 마리가 항상 같이 다니는데 사람 근처에서 살아가는 참새나, 날쌘 박새에 비해 사람을 별로 피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한 마리가 먹이를 먹으면 다른 한 마리는 망을 보더니, 익숙해지니 두 마리가 같이 먹기도 한다. 딱새나 직박구리는 암컷과 수컷이 확실히 드러나는데 비해 동박새는 구별이 어렵다. 처음에는 몸통이 둥글게 생긴 아이가 암컷이며 날씬한 애가 수컷이라고 짐작했지만, 보면 볼수록 암수 구분은 쉽지 않다.


2021년 2월, 참새에 쫓기듯 달아나는 동박새

작년 2월에 아파트 발코니에 연둣빛 동박새 두 마리가 찾아왔다. 한 눈에도 지쳐 보였으며 조심스러운 움직임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나그네였던 동박새는 매일 방문하는 참새와 박새, 직박구리를 피해 이른 시간에 먹이통에 접근하는데 다른 새들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꽤 오랜 시간 먹이통에 앉아있었다. 그때부터 동박새를 빨리 보려고 이른 새벽에 블라인드를 올리고 장갑을 낀 손으로 먹이통을 조심스럽게 창밖으로 내놨으며, 먹이통을 들여놓으며 어둠이 내리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그때만 해도 새를 알아가는 방법이 매우 서툴러서 이처럼 먹이를 내주고 어둠이 오면 먹이통을 들여놓는 일뿐이었다. 그 후로 온통 동박새에 꽂힌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검지 손가락 만한 몸은 가늘고 긴 부리와 꼬리를 빼면 정말 작다. 움켜잡은 다리는 짙은 청회색인데 철사를 야무지게 꼬아놓은 것처럼, 가늘지만 매우 튼튼해 보인다.

동박이는 약 3주 정도 우리 집 발코니에 머무르다 3월이 다가오던 어느 날, 인사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 허전함에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휑했다.

“내년 겨울에 다시 오겠지?, 그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좋겠다.” 발코니를 들락날락하던 남편이 혼잣말로 위로하듯 중얼거린다.

눈이 내린 2월 어느 날


그리고 다시 2022년 2월이 되었다. 동박새는 일 년 전처럼 피곤한 기색도 없이 연둣빛을 그리면서 두 개의 별처럼 반짝반짝 우리 앞에 나타났다. 분명히 그놈들이었다. 설마 다시 올까 생각했지만 다시 찾아준 동박이에게 환호했다. 서쪽 바다에서 왔니? 남쪽에서는 올 리가 없다. 하지만 남편의 바람대로 새끼 동박새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동박새는 5월경에 번식하며 4개 정도의 알을 낳아 12일 포란 기간을 지나 부화한 후, 12일이 되면 새끼와 헤어진다고 한다. 냉정하다. 실제로 약한 동물들은 냉정한 면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내가 그렇다.


그래서 유난히 춥게 느껴졌던 올해 2월은 동박이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새와 친해지는 것이 다소 미숙했던 예년과는 달리 물그릇도 준비하고 동박이가 좋아하는 사과를 나뭇가지에 꽂아주었다. 다른 과일은 흐물거려서 직박구리가 한입에 내동댕이쳐버린다. 사과가 제격이다. 박새나 곤줄박이는 주둥이가 짧아 과일에는 접근해봐도 먹지를 못한다. 2월이 다 갈 무렵, 작년처럼 동박이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근교 화훼 단지에서 동백꽃 한 그루를 사다 발코니 화단에 놓아두었다. 가기 전에 좋아하는 동백꿀을 먹이고 싶었다. 역시 동박이다. 두 마리가 꽃송이마다 머리를 처박고 들락거리는 몸짓에 내가 다 황홀하다.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했는지, 아쉬웠다. 그러나 동백꽃 때문이었을까, 한 달이 지나 3월이 되어도 동박이는 떠나지 않는다.

참새들과는 즐겁게 친구처럼 어울리고 쇠박새와는 제법 내외하는 우리 집 발코니 주인장 동박새를 바라보며 “이제는 떠나야 하는데, 왜 안 가지? 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니, 옆에서 “그냥 이곳에 살게 놔두지 왜 보내려고 하냐”라고 한다.

하지만 동박이는 이곳에서는 울지 않는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역시 울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먹을 것이 있어 행복해도 낮은 관목 사이로 숨어 다녀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울지 않아야 노출이 적어 그나마 안전한 것이다. 남쪽 금오도 높은 가지 위에서 소리 높여 우는 동박새의 목소리는 깜짝 놀랄 만큼 청아하고 우렁찼다. 의사표시를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하늘 가까이 날 수 있고 온갖 꿀이 들어있는 꽃송이들이 있는 서쪽(남쪽에서는 서울까지 올라올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의 아름다운 고향으로 보내고 싶었다.

오늘, 소나기를 닮은 봄비가 내렸다. 비를 피해 잠시 안쪽으로 들여놨던 동백꽃이 하나 둘 떨어져 화분 위를 덮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저녁 무렵에는 하루 종일 얼굴을 안 보여준 동박이를 생각하며 동백꽃 화분을 밖으로 내놨다. “정말 떠났구나” 하는 생각으로 동박이를 떠올리면서 책상에 앉아있는데 “에구, 이제야 나타났네!” 하는 남편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실루엣이 동박이다. 동백꽃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놀 수 있는 놈은 동박이 밖에 없다. 반갑기도 하지만 떠나지 않아 걱정이 앞선다. 예년에도 떠나기 전에는 뜸하게 나타나긴 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블라인드를 올리며 연둣빛 반짝이 동박이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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