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헤) Mahé는 세이셸에서 가장 큰 섬이며 수도가 있는 본섬이다. 마에 섬 주변에 있는 작은 섬들까지 마에에 속하며 이곳에 세이셸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거주한다.
북서쪽 해변에 위치한 보발롱에서 마에 섬 북동쪽에 있는 수도 빅토리아 Victoria 시내까지는 40여분 걸렸다. 수도 빅토리아는 매우 작다. 영국 통치의 흔적인 작은 시계탑을 지나 셀윈 클라크 마켓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빅토리아 시내는 주차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행이다. 셀윈 클라크 마켓은 1947년에서 1951년까지 세이셸 총독을 지낸 Selwyn Clarke(1893~1976)의 임기중에 만들었다. 시장을 보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규모와 색깔을 알 수 있지 않나. 시장은 약 8만 명 정도의 주민 숫자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하지만 마켓이 이곳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곳은 10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빅토리아의 오랜 랜드마크인 것이다.
총독의 이름이 선명한 현판이 달린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장 특유의 소음이 뒤섞여 들리면서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주민들의 손으로 바쁘게 건네진다. 북반구 온대에 위치한 한국과는 과일과 야채도 다르지만 매대 위에 올라와 있는 싱싱한 열대의 물고기들은 스케일과 종류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님을 기다리는 물고기 구경을 하다가 낯익은 과일들이 보이는 과일가게 앞에서 멈추었다. 8월은 망고철이 아니라지만 매대에는 다양한 색깔의 망고가 올라와있다. 멕시코와 발리에서 녹색망고를 샐러드처럼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녹색 망고를 가리키며 물었다. 먹을 수 있냐고, 상인은 녹색 망고도 익은 것이라고 했다.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 망고를 주어 담았다. 봉투 안의 망고는 세이셸의 색깔을 닮아 있었다.
셀윈 클라크 마켓
힌두사원이 보이는 셀윈 클라크 마켓 주차장에서
시장 앞에는 한자로 표기된 중국인 가게들이 보인다. 모리셔스만큼은 아니지만 세이셸에도 중국인 후손들이 많이 산다. 시장 왼쪽에는 힌두교 사원이 멋진 몬 세이셸로스 Morne Seychelles 국립공원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인도계 세이셸인들을 위한 사원이다. 아담한 크기를 한 사원의 형태는 외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인도 남부의 힌두교 사원을 닮았다. 수도 빅토리아에서 처음 마주친 인상은 인도계와 중국계 주민들의 색깔이었다.
세이셸 국민들은 모리셔스와는 다르게 중국계나 인도계 국민들보다 크리올이 90퍼센트 이상 다수를 차지한다. 세이셸을 처음 점령한 프랑스는 설탕 농장을 경영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를 비롯한 아프리카 동부 주민들을 데려왔다. 크리올은 노예로 섬에 정착한 주민들의 후손(대부분 백인남자와 흑인 여자 사이에서 출생)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19세기 초에 프랑스와 영국은 노예의 노동력을 대신할만한 인력이 필요했다. 당시 영국이 쉽게 데려올 수 있는 노동력은 영국의 통치를 받는 동안 모든 것을 빼앗긴 가난한 인도의 국민들이었으며, 영국의 농간에 손과 발이 묶인 무력한 정부를 둔 중국인들이었다. 인도계와 중국계 주민은 대부분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 들어온 계약 노동자들의 후손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적응을 잘하는 이들은 모리셔스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꽤 부유해 보였다. 자연환경이 좋아서인지 유럽인 인구도 5퍼센트나 된다.
세이셸에서는 유난히 화려한 세이셸 국기를 자주 볼 수 있다. 크리올어로 쓰여있는 'Koste Seselwa! 세이셸 국민들은 모두 모여라'라고 쓰여있는 엠블럼은 덤이다.
이든 아일랜드를 나가면서 찍은 풍경
이든 아일랜드 Eden Island는 인공섬이다. 인공 섬 위에 만들어진 복합 주거단지에는 흔히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쇼핑센터 및 호텔, 각종 레스토랑 등의 편의 시설이 들어서있다. 마에 섬에 묵는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숙소에 머무르기도 한다. 필요한 것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공항과 선착장도 가까워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잠깐 들여다만 봐야지’ 생각하고 섬 안으로 들어갔다. 주차를 위해 쇼핑센터로 들어갔다가, 쇼핑몰의 낯익은 광경에 깜짝 놀라 정차도 없이 후다닥 돌아 나왔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든 섬은 세이셸에서 유일하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구역이다. 다른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이든 섬을 지나간다. 그것만으로 이든 아일랜드를 느끼는 것은 충분했다. 섬 앞에는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요트와 배 등의 접안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나의 불행을 고백합니다.
이든 아일랜드에서 빠져나와 몬 세이셸로스 국립공원을 끼고 조성된 횡단 도로로 접어들었다. 경사가 심한 산길을 따라 오르면 마에 섬의 상징 모른 세이셸로스 국립공원으로 접어든다.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Morne Seychellois(905미터)가 자리 잡고 있는 첩첩밀림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다. 오르막 중간쯤에는 마에 섬 동쪽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미제흐 전망대 Mirante La Misere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미제흐 Misere는 프랑스어로 불행을 뜻한다. 산을 넘어가는 길 이름도 La Misere 도로이다.
인도양의 섬들은 15세기 이후 시작만 조금씩 다를 뿐 납치되어 팔려온 노예들이 첫 주민이었다. 그러므로 인도양 섬들에 남아있는 지명은 대부분의 주민인 노예들이 붙인 이름들이 많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험한 밀림을 헤치고 산을 오르다가 정글사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타쿠아즈 색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불행을 고백했을까.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길은 그들의 눈물로 얼룩진 길이 아니던가. 그들은 섬으로 끌려 왔을 때 이미 사람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10대 안팎의 나이에 끌려온 당시 노예들의 평균 수명은 30을 넘지 못했다. 젊음을 느끼기도 전에 그들은 잔혹한 노동에 자유를 속박당했던 영원한 청춘들이었다.
전망대는 마에 섬 앞바다의 아름다운 전경을 그려놓았다. 멀리로는 1시간 이상을 달려야 닿는 프랄린과 라디그 섬도 희미하게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노예가 되어 끌려온 젊은이들이 불행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희망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던 길에서 보이는 풍경은 비할 수 없이 아름답다.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전망대 앞바다 풍경
Takamaka Rum 양조장(설탕 농장)을 비롯하여 양조장 근처에는 크리올 양식으로 지은 건축물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역에 크리올 양식의 건축이 여러 채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마에 섬 동부) 여러 개의 설탕 플랜테이션이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크리올 양식의 건축물은 세이셸 크리올 협회 Lenstiti Kreol 건물이다. 공용어로 지정된 크리올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은 멀리서 보면 발코니를 연결한 기둥과 흰색 레이스처럼 보이는 난간 장식은 우아하면서도 간결하다.
아름다운 크리올 건축물/세이셸 크리올 협회 Lenstiti Kreol
마에 섬을 돌면서 주민들의 발인 세이셸 공용버스(SPTC)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자주 만났다. 여행을 하면서 버스를 보면 무척 반갑다. 여행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현지교통수단의 가장 큰 장점은 안전이다. 또한 현지의 지리와 교통에 매우 친숙해지며 그곳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푸른색 버스의 뒤를 따라가다가 버스 밑동에 칠해진 바다색이 바다와 만날 때는 버스와 바다가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퍼블릭 버스는 빅토리아가 종점이며 마에섬 일주도로를 운행한다. 버스는 주말이면 마에 섬을 둘러싼 해변을 가기 위한 사람들로 만원이라고 한다. 어디에서나 내려도 아름답고 안전한 해변이 널려있으니 말이다. 앙스 후와얄르 Anse Royale 작은 해변에 내렸다. 세이셸 사람들은 언제라도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처럼 세이셸의 바다를 사랑하는 것 같다. 가족이 즐기는 바다풍경은 감미롭다.
앙스 후와얄르 Anse Royale
세이셸의 슈퍼마켓은 알록달록 화려하다 / Takamaka Rum 양조장
세이셸의 공용 버스
Beau Vallon
보발롱 Beau Vallon은 아름다운 골짜기란 뜻이다. 세이셸에 도착한 첫날 산을 넘고 넘어서 보발롱 해변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비치 주변에 있는 마을에는 ATM기와 환전소, 작은 슈퍼마켓과 레스토랑 등이 있다. 마지막 날 돌아본 보발롱의 왼쪽인 벨롱브흐 bel Ombre 지역은 국립공원의 정글과 연결되어 있다. 보발롱과 견주기에도 손색이 없는지 역시 보발롱처럼 bel(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가 앞에 붙어있다. Ombre는 그림자 또는 투영을 의미한다. 지명만 보고도 깊고 짙은 숲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보발롱과 벨롱브흐사이의 어두운 숲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어서 마에에서 보물을 숨겨둘 만한 곳으로 유력한 곳이었다. 대항해시대는 곧 해적의 시대였다. 해적들이 약탈한 보물을 숨겨두기에는 인도양에서 세이셸만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보발롱 해변은 천상의 풍경을 보여주는 프랄린과 라디그의 바다와는 다르다. 약 3㎞에 달하는 긴 해변과 안전한 바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들로 난무한 해변은 내가 아무리 달려도 흔적을 알 수가 없다. 주변의 다양한 숙박시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밝은 기운은 그대로 내게 전달된다. 낯선 사람들 틈에 있으면 어깨가 들썩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휴식의 양면성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세이셸에서는 드물게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라고나 할까. 이곳에서는 나로 인해 아름다운 산호가 다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이셸에서 유일하게 패러 세일링 등 격한 수상 스포츠가 허용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사보이호텔에 예약했다가 바꿔서 자회사인 코랄 스트랜드 호텔에서 묵었다. 사보이보다 등급이 낮은 호텔이지만 비치의 위치는 보발롱에서 최고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레드포디(인도양에 사는 붉은 새)가 사는 새집을 들여다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