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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Jan 09. 2024

해적들의 섬 ‘Moyenne’

# 세이셸 - Ste. Anne 해양국립공원


Brendon Grimshaw


1962년, 그림쇼 Brendon Grimshaw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신문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영국 식민지에서 갓 독립한 격변기의 탄자니아(당시는 탕가니카)에서 영국인인 그는 앞으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그의 일자리를 현지인에게 넘겨주고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이번이 마지막 휴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세이셸로 떠나는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이셸에서 몇 주를 지내는 동안 원시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세이셸의 아름다움에 관심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활기가 넘치는 아프리카 특유의 떠들썩한 도시에서 살았던 그에게 세이셸에서의 휴가는 그야말로 평화로웠다. 앞으로의 일자리 고민은 뒷전이 되었고 그냥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삶을 갈구했다. 그가 수도 빅토리아와 가까운 동부 연안에 있는 작은 섬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세이셸의 수도인 빅토리아에 퍼져나갔다. 그는 휴가를 보내면서 매물로 나와있는 몇 개의 섬을 보러 다녔다. 빅토리아와 너무 멀린 떨어진 섬을 제외하고는 모두 맘에 들었다. 다만 그림쇼의 주머니사정이 문제였다.


그림쇼의 휴가는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 지도를 보여주면서 Cerf 섬 옆에 있는 작은 섬에 관심이 있는지 의향을 물었다. 섬은 주인이 살다가 떠난 지가 한참 지나서 지금은 관리가 엉망이라고 했다. 그 덕에 섬은 시세보다 헐값에 나와있었다. 그림쇼가 해볼 만한 가격이었다.


탄자니아로 복귀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그림쇼는 청년을 따라 연안에서 멀지 않은 섬을 보러 떠났다. 작은 보트로 30여분 안에 닿은 섬은 Cerf 섬과 Lond 섬 옆에 있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Round 섬에서 내린 그는 눈부신 모래톱에 드리운 채 찰랑이는 Turquoise 물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물로 나온 무아옌 Moyenne 섬은 주변에 있는 다른 섬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했다. 그러나 주변의 섬들과 연결된 모래톱, 투명한 공기와 낮은 바다와 일렁이는 햇빛이 어우러진 풍경은 인생을 걸만큼 아름다웠다. 누구라도 무아옌을 보기 위해 이곳에 와본 사람이라면 포기하지 못할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연을 만나면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거나, 아우라가 보인다고도 한다. 그림쇼도 무아옌을 보자마자 특별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작은 보트를 타고 Round 섬에 내린 사람들


브랜든 그림쇼는 휴가를 마치고 탄자니아로 돌아가기 전날, 마에 섬에서 살고 있는 섬의 주인인 Philippe과 저녁을 함께 한 후 그에게 8,000 루블을 지불했다. 달러로 환산하면 약 10,000달러라는 싼 값에 작은 섬 하나를 구입한 것이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섬은 관리하지 않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버려진 섬이었다. 사람이 떠나 버린 폐가처럼, 코코넛열매조차도 잡초 위에 떨어졌다. 언제부터 방치했는지 모를 정도로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땅은 황무지로 변해있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그림쇼는 평생 친구가 된 세이셸 사람 르네 라포츈 Rene Antoine Lafortune과 함께 섬을 정비해 나갔다.


쓰레기와 잡초가 지층을 덮었던 섬은 두 사람의 노력으로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들은 둘이 살 집을 짓고 하나씩 산책로를 만들어 나갔다. 르네 라포츈은 가끔 마에 섬에 있는 집을 오가며 섬에 거주했지만 그림쇼는 1973년 섬에 정착한 이후로는 무아옌 섬을 떠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무아옌이 본래 열대 우림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이 39년에 걸쳐 심은 야자수와 마호가니, 망고를 비롯한 16,000그루의 나무는 이제 숲을 이루었다.   


1980년 경에는 여행자들의 입소문을 통해 세이셸이 마치 인도양의 낙원처럼 명성이 자자해지기 시작했다. 투자가 몰리며 덩달아 세이셸의 작고 아름다운 섬들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아옌 섬은 수도 빅토리아가 가까워 리조트의 입지로는 최고였다. 그림쇼에게도 섬을 사겠다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그중에는 5천만 달러에 섬을 구입하겠다는 투자자도 있었다. 하지만 브랜든 그림쇼는 그의 꿈을 바친 무아옌 섬의 미래를 위해서는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그림쇼의 나이가 81세가 된 2007년에는 그동안 동고동락한 친구 라포츈이 세상을 떠났다. 주변의 다른 섬들이 리조트로 개발되는 것을 보면서 그림쇼는 섬을 구입할 때보다 훨씬 더 진지해졌다. 자신이 죽고 난 후에도 자연에 가깝게 회복한 무아옌 섬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8년 그는 라포츈과 함께 복원한 Moyenne 섬을 세이셸에 돌려주었다. 세이셸 정부는 브랜든 그림쇼와의 약속대로 무아옌 섬을 옆에 있는 성안나 섬을 비롯한 6개의 섬과 함께 해양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브랜든 그림쇼는 자신의 영혼 같은 무아옌을 원래 자리에 그대로 돌려놓았다. 그와 친구가 즐겨 찾았던 두 명의 이름 없는 해적의 무덤 옆에는 마지막 5년을 함께 살았던 아버지 Raymond가 묻혀 있었다. 2012년 그는 세 사람의 무덤 옆에 묻혔다.  

          

해적들의 섬 ‘Moyenne’   

       

섬의 북서쪽 모퉁이에서 해적의 무덤으로 보이는 두 개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그림쇼는 환호했다.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곳은 옛날부터 해적들이 숨긴 보물에 관한 전설이 바람결에 떠도는 곳이었다. 카리브해와 인도양의 섬들은 수백 년간 해적들의 근거지였다. 카리브해에 비해 인도양에는 섬들이 많지 않다. 동인도로 가는 항로상에서 누가 봐도 세이셸은 보물을 숨기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해적들이 숨겨놓은 보물들이 세이셸 어딘가에 그것도 여러 군데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던 생각이었다. 영국인인 그림쇼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영국 소설 보물섬의 내용이 뼛속깊이 새겨진 사람이었다. 그는 영국 소설가 Daniel Defoe(1660~1731)의 작품으로 1719년 발매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에 매료되었거나, 1883년에 발간한 해양 모험소설 ‘보물섬’에 등장하는 소년 짐 호킨스처럼 해적들이 숨긴 보물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섬 주변에서 해적의 시대에 숨겨놓은 보물을 찾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는 무아옌에서 보물을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을 수도 없이 상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친구와 더불어 가끔은 보물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1976년 만나서 친구가 된 파텔 Patel의 회상에 의하면 그림쇼는 시간이 날 때면 종종 섬안에 있을지도 모를 보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르네, 오늘 할 일은 다했으니, 오후에는 보물을 찾으러 갑시다.’    

 

Lond 섬과 Round 섬 사이의 모래톱이다. 뒤에는 Cerf 섬이 보이며 더 멀리 보이는 것은 마에 섬이다.


선착장에서 약 4.5킬로미터 배를 타고 달리면 여러 개의 섬이 있는 성 안느 해양국립공원에 닿는다. Turquoise(터키석 색깔)와 light sea green(청록빛보다는 투명한) 색깔이 찰랑이는 물빛 사이로 녹색의 작은 섬들이 떠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성 안느 해양국립공원은 6개(아주 작은 섬까지 합하면 8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섬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수도 빅토리아와 가까운 이유로, 정부가 관리하는 여러 혐오 시설(예를 들면 교도소와 검역소, 나환자촌)이 들어서 있었다.  


 해양공원에서 가장 큰 섬은 성안느 섬이며 Cerf 섬에는 약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Cerf 섬과 Lond  섬, Round 섬, Moyenne 섬은 하나의 큰 덩어리인데 물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각각의 섬이 된 것처럼 보였다. Cerf 섬을 제외하고는 섬들은 산호가 부서진 밝은 색 모래톱으로 연결이 되어있다. Round 섬에서 Lond 섬으로 연결된 모래톱 오른쪽에는 Cerf 섬이 가까이 있다. Cerf 섬 맞은편으로 무아옌 섬이 떠있다.  

왼쪽 마에 섬 선착장에서 아주 가까운 해양국립공원


Moyenne 섬은 해안선을 다 합해도 2킬로미터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섬이다. 섬의 이름은 중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moyenne에서 유래했다. 멀리서 무아옌을  바라보면 바다에서 솟아 나온 듯한 녹색의 평범한 무인도다. 멀리서 보면 대한민국의 서해나 남해에 볼 수 있는 작은 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섬들이 모래톱으로 연결되어 있는 해양 국립공원 안쪽으로 들어오면  주변의 아름다운 섬들과 어우러진 무아옌은 아름다워 보였다. 거기에 더해 아름다운 사람 그림쇼의 이야기는 평범한 무아옌을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Lond 섬과 Round 섬이 연결된 산호가 부서진 밝은 모래톱은 마치 물 밖으로 살짝만 올라온 고운 육계사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섬과 섬사이는 바람과 조류에 의해 운반되는 퇴적물로 점차 메워져 수심이 더욱 얕아질 것 같다. 그림쇼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지금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Round 섬 해변에 내려 Lond 섬과 Cerf 섬이 보이는 녹색의 숲을 낀 둥글고 큰 화강암이 앉아있는 해변을 지나 햇빛에 찰랑이는 모래톱을 걸어 다녔다. 해양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곳에 들어오면 어디를 둘러봐도 정신을 놓아버릴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과의 교감은 시간이 지나도 머릿속에 그대로 간직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림쇼의 눈이라고 많이 다르겠는가, 1962년의 어느 날, 그림쇼는 moyenne 섬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음에 틀림없다.          

 

Round 섬에서 바라본 Moyenne 섬
왼쪽의 섬은 Lond  섬이다.

 

무아옌을 비롯한 공원 내의 섬들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Ste. Anne 섬과 Cerf 섬, Round 섬, Lond 섬에 있는 리조트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가장 쉽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인된 투어사의 하루 여행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마에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에 선착장에서 배를 타는 순간 신고 간 슬리퍼는 바구니 안에 담긴다. 슬리퍼는 마에로 돌아오는 늦은 오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스노클링을 한 후에는 반나절동안 섬과 섬사이의 반짝이는 모래톱을 걸어 다녔다. 큼지막한 화강암은 쉼터가 되어주고 청록빛 숲은 낮잠이라도 쉽게 들 수 있을 만큼 아늑하다. 스노클링은 다른 바다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섬 사이를 찰랑이는 물속과 모래톱을 경계 없이 걸어 다녔던 시간은 어디에서도 만나기 힘든 쉽지 않은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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