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리셔스 - 르몬 산
레위니옹 섬과 모리셔스 섬은 화산섬으로 우리나라의 제주도보다 약간 큰 넓이로 크기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섬 전체가 웅장한 화산군인 레위니옹에서는 제주도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미소년을 기대하고 갔다가 근육질의 우람하지만 잘 생긴 거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기자기하면서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모리셔스는 검은 돌까지 여러 가지가 제주도를 연상시켰다.
800여 미터 이하의 원추형 모양의 산들이 연결되어 있는 산맥은 섬의 중앙에서 남서쪽으로 뻗어있다. 수도 포트루이스를 둘러싼 산맥은 성벽이 둘러싼 것처럼 아늑해 보인다. 중앙에 있는 섬세한 원추형의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은 동과 서로 많은 개울과 강을 만들었다. 물이 많아 자연스럽게 비옥해진 모리셔스 섬은 저지대까지 깊은 열대우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모리셔스 섬은 인도양의 섬 들 중에서 가장 먼저 대단위로 개발되었다. 저지대의 숲은 개발하기가 쉬웠으며 중앙의 산맥 덕분에 중앙의 산에서 사방으로 내려오는 풍부한 수량은 사람들이 살기에도 적합했다. 처음에는 여러 나라 함선의 기항지로만 사용하던 모리셔스 섬은 네덜란드 인들이 빠르게 점령하고 개발하였다. 네덜란드인들이 점령한 약 100년(1598~1710) 동안 모리셔스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저지대의 아름드리 숲을 이루던 흑단나무와 다양한 종류의 야자나무, 황소거북(세이셸의 것과 종이 다른), 도도새 등 섬의 원래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갔다. 대신 섬에는 다른 곳에서 살았던 염소와 돼지, 개와 사슴, 쥐와 자바 원숭이, 고양이 그리고 네덜란드 인들과 그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데려온 노예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한 사이클론의 폐해를 맛본 네덜란드인들은 모리셔스 섬을 떠나고 싶어 했다. 가까운 아프리카 남쪽 케이프타운을 새로운 기항지와 주거지로 개발한 네덜란드 인은 1710년 마침내 모리셔스 섬을 완전히 떠났다(케이프타운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인들을 보어인 또는 아프리카너로 불렀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1715년 프랑스 인들이 ‘웬 떡이야’ 하고 섬을 점령하였다. 모리셔스 섬은 누가 봐도 금싸라기 땅이었다. 프랑스 인들은 서북쪽의 항구 포트루이스를 개발하고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동부에서 노예들을 데려와 네덜란드 인이 사탕수수를 심어놓은 저지대를 더욱 확장시켰다.
모리셔스 북동쪽 그헝 베 Grand Baie 부근에 있는 숙소에서 6시 출발하여 남서쪽 Le Morne 산까지는 1시간 50분 정도 달렸나 보다. 도착하니 61.7킬로미터가 찍혀있다.
제주도보다 조금 넓은 모리셔스 섬에서는 제주도(2023년 기준 67만여 명)의 두 배에 해당하는 인구가 살아간다(2020년 기준 약 1,271,768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가를 벗어나면 여지없이 뒤로는 원추형 산을 뒤로한 사탕수수밭 풍경이 이어진다. 모리셔스에 산이 없었다면 아마도 섬 전체가 모조리 사탕수수밭이 되었을 것이다.
한 시간쯤 남쪽으로 내려가니 카셀라 공원으로 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검은 강(블랙 리버) 구역에 들어온 것이다. 베르나르댕의 소설 <폴과 비르지니>에서 비르지니는 폴과 함께 도망친 노예를 주인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 건넜던 강이다. 소설에서 폴과 비르지니는 바쁘게 일하는 노예들과 농장주를 만났으니 당시에는 이토록 깊은 숲까지도 플랜테이션 농장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현재 이곳은 모리셔스의 옛 자연 풍경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니 옛 정글 풍경을 상상으로라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습기는 바다까지 이어져 어둡고 습한 습지에 가까운 숲이 이어진다. 이쯤 되니 질퍽이는 오프로드에서 차바퀴가 빠질까 봐 걱정이 앞선다. 포르투갈인들이 백조의 꼬리로 여겼던 곶(cape)에 르몬 산이 있다.
더운 지역이다 보니 온도가 오르기 전에 산을 오르기 위해서 일찍 움직였다. 그런데 르몬 산 입구에는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 주차장에는 차 두 대가 따로따로 움직이지 않는 차처럼 처박혀있다. 혹시 잘못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안내문도 있으니 이곳이 트레일을 시작하는 르몬 산 입구가 맞긴 하다. 입구에서 8시에 만나기로 한 투어가이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킬리만자로 산에 오르는 것처럼 방명록에 서명까지 했다. 입구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다.
Le Morne 산은 모리셔스 섬 남서부 끝에 있는 바다에 인접한 바위산이다. 바다 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바다의 라군까지 연결된 르몬 산이 그리는 선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17세기 이후 유럽인들은 모리셔스를 노예들이 거쳐가는 중간 기착지(중계무역항)로 만들었다. 아프리카 서부에서 취합한 노예들은 대체로 카리브해와 아메리카로 직접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프리카 동부와 마다가스카르, 인도 등지에서 데려온 노예들은 모리셔스가 중간 거점이 되었다. 노예들은 모리셔스에서 레위니옹이나 세이셸, 로드리게스, 마요트 등의 인도양 섬으로 팔리지만 80퍼센트 이상은 멀리 브라질이나 카리브해, 아메리카로 가야만 했다. 땅이 넓은 아메리카는 노예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포트루이스 항구, 노예선에서 내린 노예들은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마음이었다. 브라질로 가는 것은 노예들에게는 곧 죽음과도 같았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에 밀도가 높은 배안에서 이겨내지 못한 노예들은 죽어나갔다. 브라질이나 카리브해에 도착하더라도 혹사당한 노예들은 평균 서른 살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끝없이 노예를 요구하는(여자 노예들이 적었던 탓으로 그곳에서 태어나는 크리올 아이들도 많지 않았다), 넓은 땅 브라질은 어떤 곳보다도 노예들에게는 야만적이었다. 노예들은 차라리 죽기를 원했다. 죽을 수도 없는 노예들은 고향사람들이 많은 레위니옹이나 세이셸 같은 인도양에 있는 섬으로 가는 것을 간절히 원했다.
그들의 안식처
농장주를 따라 농장에 배치도 되기 전에 노예들의 탈주는 시작되었다. 모리셔스 북서쪽 항구 포트루이스의 수용소에서 시작된 탈주는 포트루이를 둘러싼 기다란 산과 모카산맥을 넘어야 하며 세 개의 젖무덤 산을 넘어야 모리셔스에서 가장 험한 정글로 향하는 블랙리버 즉 검은 강을 건널 수 있었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기다란 산을 넘기도 전에 잡혀갔다. 어떤 이는 목적지인 르몬산에 가까워졌지만 악랄한 사냥꾼에게 덜미를 잡혔다. 하지만 그물에서도 빠져나가는 물고기가 있듯이 그들의 그물망에서 하나둘씩 빠져나간 노예들이 있었다. 신발이 있었을까. 소설 <폴과 비르지니> 속 내용을 보면 당시에는 폴과 비르지니처럼 가난한 주민들은 교회에 갈 때만 신발을 신었다. 프로에 가까운 잔인한 사냥꾼들을 따돌리면서 간신히 사냥개가 짖는 소리가 멀어졌다 해도 돌투성이 정글을 돌파한 피투성이 발은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재수가 억세게 좋다면 우거진 정글 속에서 힘을 회복했다. 독이 있는 전갈이나 사나운 동물이 없는 숲은 이들에게 어머니와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탈주에 성공해서 은신처를 중심으로 르몬 산에 정착한 이들은 하나의 작은 사회를 이루었다. 우리는 이들을 마룬이라고 부른다.(탈주한 노예들을 마룬이라고 부른 것은 카리브해에서 시작되었다. 카리브해 각 지역의 마룬 사회는 머지않아 백인들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춘 곳도 생겨났다) 모리셔스에서도 르몬 산이 노예들에게 마룬 공화국 Maroon republic으로 알려진 것을 보면 마룬들이 늘어나면서 어느 정도 규모의 힘을 갖춘 작은 조직사회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을 오르면서는 모리셔스의 아름다운 라군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수중폭포(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곳)가 르몬 산 이 위치한 해안선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잠시 접어야 한다. 울창한 숲길을 올라가다가 한 지점에서 거대한 절벽 같은 바위산을 맞닥뜨렸다.
점점 쪼그라드는 이 용기는 어찌한담!
75도의 경사로 알고 왔는데 막상 현장에서 느껴지는 각도는 90도에 가까워 보였다. 잡을 곳도 없었다. 위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만 굴러도 누구라도 나가떨어지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잡을 곳은 찾자면 네발로 거미처럼 오르면서 잡아야 하는 살짝 튀어나온 뾰족한 바위뿐이었다. 평소에 겁이 많은 내가 왜 단념하지 않고 올라가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그때는 산을 내려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예로 끌려와 탈주에 성공한 그 누군가가 꼭대기즈음 어디에선가 날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마치 모리셔스에는 르몬 산을 오르기 위해 온 것처럼 스파이더의 손바닥을 부러워하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정상에 오른 뒤에야 생각한 것은 르몬 산에 형성된, 마룬 사회가 커진 다음에는 노예 사냥꾼들이 이곳까지 접근하는 것은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르몬 산을 중심으로 한 정글에서는 조직적인 공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예무역 초기에는 사냥개를 동반한 사냥꾼들은 바위 아래까지는 탈주 노예들을 잡으로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산 꼭대기까지 피신한 노예는 아무리 악랄한 노예사냥꾼이라고 해도 마룬을 체포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을 것이다.
위에 오르는 사람의 모습은 엉덩이와 다리밖에 안 보인다. 어찌하다가 산의 중간자락까지 올라왔지만 제대로 허리를 펼만한 곳이 없다. 무사히 올라간다 하더라도 내려오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때 갑자기 한참 아래쪽에서 코리안이냐고 소리 지르듯이 묻는 건장한 사내가 헐레벌떡 올라온다. 맙소사!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투어가이드였다.
“내가 굴러 떨어지면 같이 죽을 거냐고요, 제발 내 아래에 있지 말고 비켜서 오라고..”
내가 혹시라도 떨어지면 날 받치겠다고 내 엉덩이 아래에서 긴장하고 서 있는 남자에게 신경질을 부린 후였다.
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그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쭈뼛거리다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그냥 올라왔던 것이다. 약속시간에 한 시간 반 이상 늦은 이유를 힐책해야 했건만, 탄탄한 근육질의 가이드를 보자 이런, 천군만마가 온 것처럼 무조건 반가웠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잠시 라군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라군이 펼쳐진 르몬 산 앞바다는 섬 전체에 얇은 레이스를 달아놓은 것 같다. 하늘에서 라군을 바라보면 착시로 인해 바닷속으로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투쟁과 희생의 상징답게 이들의 선조들을 지켜준 검은색 화산암으로 형성된 정상 봉우리는 늠름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곶에 위치한 르몬 산은 모리셔스 노예들의 마지막 피난처였으며 안식처였다. 정상에 서보니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에서 떨어져 영원한 자유를 얻든지, 투쟁해서 삶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은 불과 한걸음 차이였다. 검은 구름이 르몬 산 봉우리를 휘감을 때면 노예들은 오래간만에 다리를 뻗고 긴 잠을 청했을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작가의 한 사람인 르 클레지오는 제주도의 성산일출봉과 모리셔스의 르몬 산이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성산일출봉과 모리셔스 섬의 르몬 산은 각 섬의 남쪽에 위치하며 감히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 같은 아우라가 감도는 풍광은 비슷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축적된 르몬 산에서 일어난 너무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한은 누구라도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우아한 흰 꼬리 열대새 Paille en Queue (White-tailed Tropicbird)들이 허공을 가른다. 커다란 바닷새를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모리셔스 항공'의 로고는 붉은 꼬리 열대새의 모양에서 나왔다. 혹시나 붉은 꼬리 열대새일지도 몰라서, 새의 가늘고 기다란 꼬리가 그리는 선을 한참을 따라가도 흰 꼬리 열대새가 맞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절벽에 둥지를 트는 이 바닷새는 노예들이 떠난 은신처에 그들의 둥지를 자유롭게 틀 수 있겠다. 부디 번성하기를.
섬 산에서 보이는 풍경은 육지의 산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세계의 풍경이다. 르몬 산에서 보이는 풍경처럼 독특한 전경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한국의 섬산을 산행할 때의 감정과 겹쳐졌다. 깊은 산속의 적막한 고요함도 좋지만 나는 역시 섬 위에 솟아있는 산 위에서 바라보는 찬란한 바다 풍경을 사랑한다. 지구는 바다가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르몬 산 산행시간은 약 3시간 40분이 걸렸다. 르몬 산 근처 해변에는 이름 있는 리조트들이 있어 많은 여행자들을 불러 모은다. 최근에는 한국사람들의 신혼여행지로도 인기가 상승하는 곳이다. 하늘에는 수중폭포를 보기 위한 헬리콥터도 떠 있으며 각종 수상 레저를 위한 각종 벌룬들이 알록달록하다.
르몬 산이 있는 남서부지역은 모리셔스에서 가장 빼어난 숲과 바다를 자랑하는 곳이다. 근처에는 유명한 샤마렐 폭포와 7 Colored Earth 등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많다. 오전에 힘든 르몬 산을 올랐다면 점심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모리셔스의 정글을 굽어보면서 바다풍미 가득한 크리올 요리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