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14화

키루스의 정원

# 쉬라즈 - 페르시아 건국의 아버지 키루스대왕과 키루스 실린더

by 그루

키루스의 실린더


이란을 가기 전까지 이란에서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처럼 아랍어를 사용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들은 아랍어와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 Parsi 어를 사용하는데 파르시란 Pars파르스 지역에서 사용되어진 언어라는 말이다. 즉 이란고원의 남서쪽에 위치한 지금도 여전히 파르스인 파르스 지역은 키루스가 태어나서 묻힌 곳이며 아케메네스 왕조가 일어난 지역으로 페르시아가 발흥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와 소아시아에는 아시리아, 메디아, 바빌로니아로 이어지면서 수 없이 제국들이 나타났 사라졌다. 바빌로니아의 뒤를 이어 동쪽으로는 인더스까지 닿은 대제국을 이룬 것은 페르시아였다.


이란 건국의 아버지 ‘키루스대왕 Cyrus’(기원전 559~기원전 529)은 성경에는‘고레스’로 표현된다. 그는 정복한 땅의 다양한 민족의 문화와 왕조를 존중하면서 정책들을 유연하게 융합하여 실시하고 관용을 베풀어, 메소포타미아는 물론 그리스에서까지 군주의 모범이며 이상으로 칭송되어지는 인물이다.


키루스와 가장 가까운 시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기원전 430~기원전 354)은 키루스를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 비길 자가 없는 가장 위대한 세계 정복자”라 칭하였다.


Cyrus Cylinder, 테헤란 국립 박물관 왼쪽입구에 있는 사이러스 실린더 모형


그는 최초로 인간의 기본권을 선언한 왕으로 그 내용을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있는 ‘Cyrus Cylinder’에 새겨 놓았다. 사이러스 실린더는 1879년 영국의 과학자들이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발견한, 점토로 만들어진 표면에 설형문자가 새겨진 실린더(원통형)이다. 그것은 사이러스왕(키루스)에 의해 페르시아 전 제국에 공표된 명령으로 새로 점령한 땅의 주민들의 관습과 종교 활동,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바빌론시절 강제 이주된 유대인들은 자유롭게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한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도 키루스왕(사이러스, 고레스)의 정치철학을 모델로 했다고 전해진다.

메디아(기원전 780~기원전 550)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를 제압하고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550~기원전 330)를 연 키루스는 4가지 원칙을 기본으로 전쟁에 임했다. 첫째, 적의 우군을 먼저 제거하고, 둘째, 수비보다는 먼저 공세를 택했고, 셋째, 적에게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지 않고, 넷째,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켜 적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영화‘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영국대령 T. E. Lawrence도 1차 세계대전 무렵 오스만 제국과의 게릴라전에서 키루스 4 원칙에서 영감을 받아 아카바전투(1917)와 다마스쿠스전투(1918) 등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키루스는 메디아왕국의 터전인 파르스 지역에 수도를 정하고, 그가 사랑한 파사르가데궁전 가까운 곳에 묻혀있다. 파사르가데궁전은 쉬라즈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대중 교통이 없어 택시나 승합차를 세를 내어 다녀오는 것이 편하다.


왕의 정원 파사르가다에(가데)


벌판에 댕그라니 홀로 있는 무덤, 키루스왕의 무덤은 놀랍게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있다. 페르세폴리스를 폐허로 만든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를 시켜 화려한 무덤 안의 부장품을 다 꺼냈다. 그래도 무덤만은 그대로 두어 존경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이슬람 시대에도 살아남은 위대한 왕의 무덤은 솔로몬 왕의 어머니가 묻힌 곳이라 하여 성소로 생각해 파괴를 면했다고 한다.


키루스의 무덤


키루스의 무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북동쪽에 위치한 파사르가다에 Pasargadae는 아케메니아Achaemenia왕국의 첫 번째 수도로 키루스가 도읍으로 정한 곳이다. 파사르가다에는 페르시아의 정원이란 뜻이다. 휑한 벌판에 나무 한 그루 없어 이름이 무색하다. 걸어가기에는 너무 넓은 곳에 왕궁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수메르, 스키타이, 아리안족과 관련된 곳에서 발견되는 쌍어문의 문양도 보인다.


쌍어문, 양쪽에 비슷한 부조가 마주보고 있다.


내게 쌍어문은 곧 아리안족의 상징처럼 비칠 때도 있었다.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즈음 김병모 교수의 쌍어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도 땅에서 시집온 허황옥 왕비와 김수로왕릉의 쌍어문과 신라의 금관 이야기 까지, 하지만 지구는 둥글다.


쌍어문이 출현하는 곳이 아리안족의 핏줄이 퍼져나간 곳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피보다 문화와 종교의 전파는 생각보다 더 빠르다. 물고기 문양은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하는 조로아스터교에서도 나타나는데 조로아스터교나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불교, 기독교, 유대교 등에서도 물고기 문양은 나타난다. 거의 대부분의 세계 인구는 힌두교와 불교, 유대교, 기독교에 노출이 되어있질 않나?



왕궁의 유적지 사이를 걷다 보면 따가운 고원의 햇살 아래 왕궁의 돌 틈 사이로 엉겅퀴와 붉은 양귀비들이 건강하고 고운 자태로 피어있다. 어쩌면 이들의 조상은 오래전, 키루스의 정원 돌담에 피어 있지 않았을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파사르가데의 정원은 가운데 분수(분수는 페르시아의 발명품)와 연못이 있었다. 석재를 깎아 물이 흐르는 운하를 만들고 그 둘레를 따라 나무들은 간격을 맞춰 심었으며 정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정자를 가지고 있었으며 제국의 수도답게 모든 땅에서 가져온 식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파사르가다에의 가다에(가데)는 정원을 뜻하는 ‘가든’의 어원이 되었다. 페르시아 정원은 기원 후 이슬람 세력이 들어오면서 이슬람정원 양식으로 계승 발전되어 이슬람 정복의 길을 따라 인도의 무굴제국, 아프리카 스페인, 유럽 등으로 퍼져나갔다.


파사르가데 왕궁터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메디아의 공주 아미티스를 위해 만들었던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이미 보고 알고 있었을 키루스는 바빌론의 정원 양식을 참고해서 정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페르시아 정원의 기본이 되었다는 파사르가다에왕궁의 정원을, 지금은 사막화 된 키루스의 왕궁에서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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