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15화

Persepolis

# 쉬라즈 - 다리우스의 도시 페르세폴리스

by 그루


쉬라즈에서 파사르가다에와 키루스의 무덤, 낙쉐로스탐, 낙쉐라잡, 페르세폴리스 등을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 다소 무리가 오는 계획이지만 전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유적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쉬라즈에서 동쪽으로 75Km에 위치한다.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다리우스 1세 Darius(기원전522~기원전485)는 페르시아를 전성기로 올려놓은 왕 중의 왕(샤한샤)이며 아케메니아왕조의 모든 왕들이 지켜나갔던 키루스의 유지를 그대로 받들어 지키고 발전시켰다.

그는 키루스가 했던 것처럼 다민족 국가였던 페르시아를 단합시키려고 애썼으며 타민족의 관습과 종교를 존중해주었고 키루스가 타민족에게 허락했던 모든 것을 인정해 주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인들의 성역에 허용했던 특권을 인정했으며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도록 허락한 것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줘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도록 도와주었다. 고대 엘람의 사제들에게는 호의적이었으며, 이집트의 법을 정비하고 종교의식을 존중하며 이집트의 주신 중의 하나인 아몬 신을 기리는 성전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는 현재의 이집트 ‘자가지그’에서 ‘수에즈’까지 이어지는 운하를 건설하여 홍해와 나일 강을 연결했고, 이후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기도 한 왕실의 건축가였다.




말이나 동물들도 오르기 좋도록 나지막한 높이의 걷기 좋은 111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높이 12m의 테라스 위에 자리를 잡은 왕궁이 눈앞에 끝이 없이 펼쳐진다. 가까이 나지막한 쿠헤라흐마트Kuh-e Rahmar산을 등지고 있는 페르세폴리스는 눈짐작으로도 규모가 하나의 작은 도시 같다.


크세르크세스가 세웠다는 만국의 문 The Gate of all Nations을 거쳐 들어가는데 아시리아미술에서 나타나는 사람 얼굴에 날개 달린 황소의 모양을 한 인면수신상이 이 곳이 페르세폴리스임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오른쪽으로는 페르세폴리스의 중심, 다주식으로 지어진 알현전인 ‘아파다나’가 보인다. 아직도 수려한 홈이 그대로 남아있는 지붕을 받치고 있었던 열 개가 조금 넘는 석주들의 높이는 20m, 더 자라기라도 하려는지 하늘로 높이 향해있다. 부서진 석조기단의 기둥머리의 문양이 아직도 선명한 것이, 이집트 사원의 기둥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양을 닮았다. 이집트건축에서 석조 기둥을 세우고 지붕은 나무로 마감했던 형식이 이곳에도 보인다.


이집트의 발달한 건축술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에도 영향을 미쳐 각기 제 땅에서 생산되는 돌과 재료들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만들었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거대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집트 신전의 기둥을 보고, 훗날 대리석이 풍부한 그리스에서는 멋진 대리석 기둥 양식을 만들어낸다. 그리스의 이오니아지방을 다스렸던 페르시아는 우아한 이오니아식 그리스기둥 양식을 접목한 듯하다.


이 곳에 지어진 모든 건물들은 석조원기둥으로 지탱을 했는지 흩어져있는 기둥들이 제법 많다. 기둥 위에는 그리핀이나 독수리, 황소와 사자형상 등의 동물들의 머리가 얹혀 있다. 아소카왕의 사자석주같은, 동물들의 머리가 올라가 있는 후대의 기념비들은, 페르시아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기둥축과 둥근장식은 이오니아양식, 건축의 시스템과 기둥의 기단과 기둥머리등의 장식은 이집트양식이다.


아파다나의 부조 페르세폴리스왕궁의 백미다. 당시의 궁정을 오고 갔던 창과 방패를 진상하러 온 인디아인, 크로와상을 닮은 모자를 쓴 질그릇을 들고 가는 아시리아 사람, 낙타와 꽃병을 들고 온 박트리아 사신, 뾰족 모자를 쓰고 말과 팔찌와 의류를 가지고 온 스키타이 사람, 난쟁이들이 쓰는 모자를 쓰고 옷감과 도자기를 진상하러 온 바빌론 사람들, 아, 당시의 의상을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세계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곳에 그대로 살아 있다.


아파다나의 부조, 질그릇을 들고 가는 아시리아 사절단들
아케메네스왕조의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자와 황소 모티브, 사자는 통치자의 힘을 의미하지만, 노루즈(이란의 새해 3월 21일)에서 새해, 새것을 상징기도 한다.


왕궁의 동남쪽에는 보물창고가 있다. 피정복민들의 우월함을 인정하여 그들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존중했던 키루스의 유지를 그대로 실천하여 피정복민들의 양식을 융합한 아름답고 웅장했던 건축물은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군이 궁을 하룻밤 잿더미로 만든 뒤, 당나귀 2만 마리와 낙타 5천 마리에 보물을 실어 하마단(당시 엑바타나)으로 날랐다. 이후 2260년 동안 파묻혀있던 고래의 왕도는 1931년 미국 시카고대 동방연구팀에 8년간 발굴한 결과 빛을 보게 되었다. 페르세폴리스왕궁을 건설한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한 사실도 확인이 되었다.

발굴 당시 발견된 다리우스의 초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고 한다. “ 아후라 마즈다와 다른 모든 신들의 뜻에 따라 나는 이 궁전을 건축한다.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우며 장엄한 궁전을 만드는 것이 나의 뜻이다.”



낙쉐로스탐 Naqsh-e Rostam


페르세폴리스에서 서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낙쉐로스탐 Naqsh-e Rostam이 있다. 이곳에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다리우스 2세의 무덤이 있다. 바위를 십자가 모양으로 파서 그 안에 부장품과 함께 매장하고 전면은 부조로 장식한 조로아스터식 무덤이다. 십자가 모양은 아흐라마즈다의 펼친 날개와 몸을 도식화시켜놓은 상징일까, 조로아스터교에 깊은 지식이 없지만 십자가의 원형이 어쩌면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무덤 앞에는 조로아스터의 탑이 있는데 무덤과 관련이 있는 듯 범상치 않아 보인다.


십자가형식의 암굴무덤들


크세르크세스 1세와 다리우스 1세 사이의 무덤 아래에는 후대왕조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260년 에데사에서 사로잡힌 동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말 위의 사산조 페르시아 왕 샤푸르 1세 앞에 무릎 꿇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가까운 낙쉐 라잡에도 역시 사산조 시대 왕들의 위풍을 보여주는 암각이 새겨져 있다.


260년, 에데사에서 사로잡힌 동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말 위의 사산조 페르시아왕 샤푸르 1세 앞에 무릎 꿇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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