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06화

'아바스의 꿈'

# 이스파한

by 그루

아바스 1세

로마제국과 팽팽하게 대립하던 페르시아의 사산왕조 Sasanian Empire(224~651)는 651년 어느 날 아랍인들의 침략으로 하루아침에 멸망했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들에 의해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는 페르시아인의 나라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외세에 의해 분열된 이란의 국토는 9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긴 잠을 자고 깨어난 것처럼 드디어 1501년 페르시아 왕조가 탄생했다. 사파비왕조(1501~1736)이다. 사파비 왕조의 창시자 이스마일 1세 아랍인과 오스만제국과 다른 페르시아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도구로 시아파를 선택했다.


아바스 1세 Abbas I(재위 1588~1629)사파비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매번 패했던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에서는 우위를 점했으며 빼앗겼던 국토는 다시 돌아왔다. 대상들이 오고 가는 길에는 카라반사라이를 촘촘하게 만들었으며 교역망을 더욱 확충하였다. 무굴제국과 중국을 동쪽에 두고, 오스만 제국과 유럽을 서쪽에 둔 이란은 점차 세계 시장의 중심이 되었다. 새로 천도한 수도 이스파한에는 상업을 중요시한 아바스의 정치철학을 집약적으로 구현하였다.

1606년에는 아제르바이잔 즐파Julfa지구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스파한의 상업지구 New Julfa로 이주시키고 그곳에 그들의 교회를 세워주었다. 이스파한을 비단거래의 중심지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스파한은 국토 전역에 세운 카라반사라이의 중심이 되었다. 카라반사라이 아래층에 있는 바자르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고급 상품으로 넘쳐났다. 페르시아어는 경제, 외교 언어가 되었으며 페르시아의 도자기와 그림, 카펫과 그 밖의 공예품은 오스만제국과 무굴제국을 넘나들었다.


낙쉐자한 Naghsh-e-Jahan광장(이맘광장)

낙쉐자한은 호메이니를 지칭하는 이맘광장이라고도 부른다. ‘세상의 본디 모습(원형)’이란 뜻의 낙쉐자한은 동서 길이 160, 남북 길이 510m로 넓이로는 중국의 천안문 광장 다음으로 크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내가 아는 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다.


아바스는 낙쉐자한을 건설하면서 이스파한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꿈을 꾸었다. 8만 평방미터의 직사각형 광장은 원래 나라의 행사를 위해 설계되었다. 아바스 1세 상비군의 열병식과 궁술대회, 폴로 경기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곧 광장 경계를 따라 북쪽에는 2킬로미터에 달하는 바자르가 들어섰다. 2층 건물을 짓고 상인들을 입주시켰다. 마차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긴 거리의 직사각형의 광장을 둘러싸고 동쪽에는 셰이크 로폴라 모스크, 서쪽에는 아바스 왕의 궁인 알리카푸 궁전, 남쪽에는 푸른빛이 선명한 이맘모스크가 들어섰다. 바자르 내부에는 돔 지붕을 인 교차로가 있어 마드라사와 목욕탕, 카라반사라이, 작은 모스크 등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알리카푸궁 발코니에서 바라본 이맘광장 이맘모스크(샤 모스크)의 미나렛이 보인다.


셰이크 로폴라Sheikh Lotfollah

광장의 동쪽에 위치한 셰이크로폴라는 미나렛이 없는 모스크다. 아바스(재위 1588~1629)가 존경하는 저명한 스승의 이름이었거나, 혹은 장인의 이름에서 모스크의 이름이 왔다고 여겨진다. 아바스시절 1602년에 착공하여 1619년에 완공했다. 나지막하지만 우아한 돔이 어느 건축물보다도 돋보인다. 푸른 빛 입구에서 복도를 따라 들어간 돔의 내부는 사방 19m의 텅 빈 공간에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곳인 키블라만 있을 뿐 섬세하면서 완전한 문양의 향연 그 자체이다. 촘촘한 타일로 장식한 텅 빈 공간은 환상적인 푸른빛으로 가득 차있다. 돔 아래에 있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은 바닷물을 통과한 햇살처럼 부드럽게 타일바닥에 내려앉는다.

새가 원형의 날개를 편 듯한 돔 천장의 격조 있는 아름다움은 그 누구라도 단숨에 사로잡는다. 반대편인 서쪽의 알리카푸궁과 근처의 하렘에서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다는 말이 있으나 아직까지 발견된 바는 없다. 듣고 보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알리카푸궁에서 바라본 셰이크로폴라의 크림색 돔은 오후 햇살에 더욱 빛난다.


Sheikh Lotfollah내부/ 천정은 새가 날개를 원형으로 편 듯한 문양이다.
한낮의 Sheikh Lotfollahah


알리카푸궁전 Ali Qapu

양쪽으로 바자르의 긴 아케이드와 연결되어 있는 시아 이슬람의 1대 이맘이었던 알리의 이름을 딴 알리카푸Ali Qapu궁은 언뜻 보기에는 실용성 위주의 근대건축을 닮아있어 밖에서 보면 아주 평범하다.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시장의 한 부분처럼 왕궁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원래 왕궁의 정문은 광장 반대쪽에 위치한다고 한다. 왕궁이라기엔 올라가는 계단마저 좁게 느껴진다. 현대식 건물처럼 6층으로 되어있는 이곳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계단을 올라가 발코니에 올라서면 그제야 아바스가 보인다.


4층의 발코니에 들어서면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궁에서 보이는 가늘고 긴 아름다운 18개의 오래된 목조기둥이 서 있다. 이곳 발코니에서 아바스는 열병식이나 폴로경기를 관람했다. 아바스 주변으로는 귀빈들을 위한 관람석이 마련되었다.

발코니는 보수 중이지만 페르시아의 정원의 양식을 표현한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광장과, 멀리는 소페산까지, 세상이 다 보인다.


위로 몇 층 더 올라가면 압바스의 개인 취미를 알 수 있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음악 감상실이 나온다. 소리의 공명을 위해 벽과 천장을 각종 문양 등을 치장벽토 stucco를 이용하여 꾸민 음향시설을 매력적인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다. 문양은 도자기 문양이 많다. 당시에 가장 비싼 가격으로 교역되는 상품은 단연 도자기였다. 비싼 수집품 중에 인기가 많았던 중국산 도자기이거나, 페르시아 카샨의 러스터 도자기 모양으로 구멍이 뚫려있다.

아바스는 또한 열렬한 음악광이었던 것이다. 춤을 좋아해서 신하들 앞에서 춤추기를 좋아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생각난다.


왕 중의 왕 ‘샤’가 사는 궁이지만 아바스 1세는 공간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고 직사각형의 틀 안에 자신의 궁전을 끼워 넣었다. 바자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궁은 있어도 시장과 같은 틀 안에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궁전은 처음이다. 상인을 중시하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아바스의 정치적 생각이 이런 왕궁 구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바스의 음악 감상실의 벽과 천장


Shah Mosque(이맘모스크)와 바자르

지금은 이맘모스크라고 부르는 모스크의 원래 이름은 ‘샤 Shah 모스크’다. 1611년에 시작한 모스크 건축은 20년이 걸렸다. 광장의 남쪽에 위치한 모스크는 어디에서도 눈에 보이는 46m의 미나렛이 웅장하다. 사원은 본당이 메카를 향하도록 설계를 하는 관습으로 모스크의 중심축이 각도가 살짝 틀어져 있다.(셰이크 로폴라와 마찬가지로) 사원 뒤쪽에는 규모가 큰 마드라사가 있다. 들어가려고 하니 입구에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오늘부터 3일 동안 이어지는 기도 때문이라고 하는데 큰 종교 행사라고 한다.


정문은 모자이크로 짜 맞춘 다양한 색깔을 한 반짝이는 타일이 아름답다. 이완의 화려한 벌집 장식인 무카르나스만 봐도 배부르다. 덕분에 따가운 한 낮, 차가운 타일의 기운이 느껴지는 난간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가한 시간을 만끽했다. 광장 주변은 소풍 나온 유치원생부터 야외학습을 나온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호기심 많은 고등학생들까지 어린 청춘들이 눈에 많이 띈다. 젊은 이란을 느낀다. 언젠가는 이란 사람들의 활기가 진가를 발휘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


샤 모스크, 지금은 이맘모스크라고 더 많이 부른다. 푸른색 타일이 아름다워 블루 모스크라고도 부른다.


바자르는 이맘광장을 둘러싸고 있어 어디에서나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지금도 이스파한 대 시장이라고 부르는 엄청나게 큰 바자르는 당시에는 동과 서에서 모여든 실크로드의 모든 물건들이 모이는 가장 중요한 거점 시장이었다. 지금도 옛날과 별로 다르지 않은 수공으로 장인들이 직접 물건들을 생산해내는 모습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상업을 국가의 힘으로 생각해 장려했던 아바스 시대의 풍경을 짐작해 본다.


이 골목 저 골목 구경하다가 이란 사람들이 밥 먹을 때 깔고 먹는 작은 테이블보 같은 깔개를 가격도 저렴하고 가벼워서 기념으로 한 장 구입했다. 집에 와서 바닥에 깔아 보니 이란에서 볼 때보다 너무 예쁘다. 여행은 짐과의 싸움이다. 여행의 노하우가 쌓여 갈수록 짐의 무게는 반비례한다.


바자르 뒤쪽의 골목으로 들어가 케밥 전문집을 찾았다. 바자르에서 본 큰 솥에 양고기를 삶아낸 듯 누런 기름기가 올라와 있는 수프 두 가지가 끓고 있다. 손님이 많은 곳인지 저장고에는 끼워놓은 꼬치가 그득하다.


바자르 뒷골목 식당에서 먹은 점심, 구운 토마토는 꽤 맛있다.


광장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면 이맘모스크의 조명은 서서히 밝아지면서 바자르 아케이드의 불빛들이 아치를 그리며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한다. 먹거리를 준비해서 나온 가족들은 삼삼오오 돗자리를 펴고 광장의 야경을 즐긴다. 어둠이 짙은 잘 가꿔진 나무 옆이나 분숫가에는 고전적이어서 더욱 낭만적인 연인들도 보인다. 광장 주위에 퍼지는 딸랑거리는 마차소리는 아름다운 셰이크로폴라의 크림색 돔 위에 어스름 둥글게 떠 있는 보름달을 깨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