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파한 Isfahan은 11세기 셀죽왕조(튀르크계)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16세기 사파비왕조 때 지금의 도시형태가 만들어졌다.
아름드리나무들과 온갖 꽃들의 향기에 휩싸이는 아름다운 거리와, 예술작품 같아서 걷기보다는 바라보고 싶은 다리들과, 강변 따라 조성되어 있는 오래된 정원과 오솔길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과 우아하지만 간결해서 더 아름다운 모스크들 그리고 지금도 과하지 않은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사로잡는 왕궁들이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에 생명을 주는 자얀데 Zayandeh 강이 흐른다.
덥지 않은 오후, 소페산에서 내려와 자얀데 강변으로 행했다. 이스파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다리인 카주 Khaju다리에 도착했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사자상이 눈에 띈다. 사자는 페르시아의 문장이며 곧 왕 중의 왕인 ‘샤’를 의미한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카주는 한 눈에 보기에는 잘 지어진 요즘 잘 나가는 건축가가 지은 현대식 건축물처럼 보였다. 왕이 머물렀다는 발코니와 페르시아 건축양식의 Kucheh를 차용하여 디자인한 양쪽 복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카주다리
원뿔형 아치, 많은 사람들이 다리 밑 아치에서 잠을 자든가, 노래를 부르던가, 데이트를 하던가
다리의 원뿔형 아치는 어떤 건축물의 아치보다도 믿음직스럽게 간결하고 우아하다. 댐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카주는 다리가 아닌 하나의 성곽처럼 느껴지는 것이 우리나라 수원의 화성 화홍문이 생각난다. 가뭄으로 물이 흐르지 않아 오히려 구조가 한 눈에 보이는 카주는 1층은 댐, 2층은 아치로 만들어진 교각, 3층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다리로 되어있다. 다리 옆으로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과 스탠드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라도 이 다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1층과 2층 그리고 3층의 모습, 다리의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카주다리를 건너 자얀데 강변의 산책길로 들어서니 한강변이나 안양천과는 차원이 다르다. 걸으면서 따 먹을 수 있는 과실수들 하며 튼실한 나무들, 어디에선가 날아와 코끝을 간질이는 향기들, 나무 그늘을 뒤로 하고 데이트하는 연인들. 뽕나무엔 오디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지나가던 연인들은 슬쩍 연인의 입술에 넣어 주기도 하는가 하면 오디를 맘껏 채취하는 가족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끝이 없이 이어지는 강변의 정원이다.
강변에서 오디를 수확?하는 가족/ 소박해서 더 마음이 가는 추비 다리
시간만 나면 안양천으로 뛰쳐나가는 나는 물을 보며 걷는 강변 산책을 좋아한다. 지금은 말라있어 물이 흐르지 않는 자얀데 강이지만 잘생긴 자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다리의 모습만으로 위로를 하면서 강변을 걷는데 나무라는 뜻을 가진 추비 Chubi다리와 페르도시 Ferdosi다리가 나타난다.
원래 나무다리가 있던 자리에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추비다리는 카주다리에 비해 소박하다. 나는 완벽함보다는 소박함이 더 좋다. 완벽함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소박함은 나를 웃게 만든다. 긴 다리의 작은 아치들이 빛이 난다.
이란의 3 대시인 페르도시(935~1020)의 이름을 딴 페르도시 다리는 우리나라의 한강 다리들처럼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로 평범한 현대적인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바스 1세의 명령으로 1602년 완공된 이스파한의 명물 씨오세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자얀데 강의 가장 넓은 폭에 만들었다는 씨오세폴의 33개의 아치가 카메라가 줌인하는 것처럼 내 시야에 놀라운 모습으로 들어온다. 사진으로만 수없이 봤던 씨오세폴(다리)이다.
400년이 족히 넘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단단하고 균형 잡힌 몸으로 늘씬하게 강을 가로지르는 자태는 말해 무엇하랴. 역시 물이 없어 모조리 드러난 다리의 기단과 그 위에 표현된 아치는 건축학적으로 얼마나 잘 만들어진 다리인지를 보여준다. 다리 하나하나에도 미학을 논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을 강물에 걸어놓는 시대의 창조자들에게 경의를.
물이 빠진 씨오세 다리의 모습, 물이 있었다면 아름다운 반영에 가려 다리 아래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몇 천년 동안 밟아도 끄떡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다리들은 재주많은 아르메니아장인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섞인 다리들이다. 이란인들이 매우 존경하는 아바스 1세는 뛰어난 수완가이면서 정치가였다. 그는 수도를 이스파한으로 옮긴 후 머리가 뛰어나 장사를 잘하며 손기술이 좋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면서 졸파지구로 이주시킨다. 이 다리들은 당시에는 하이테크 기술이었던 아르메니아장인들의 신기술을 도입해서 만들어진 압바스의 최고 건축물이었던 것이다.
저녁 낙쉐자한 광장(이맘광장)의 야경을 보고 씨오세폴에 다시 왔다. 다리 주위에는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교통경찰까지 등장해 정리를 한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스파한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강변으로 모여든다. 강물이 말라있는 씨오세폴의 야경이지만 사람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강물의 부재를 잊게 만든다.
시오세 다리 야경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중심 거리인 차하르바그와 이어져 있어 다리 부근에는 각종 쇼핑센터와 먹을 만한 곳도 많다. 어쩔 수 없이 이스파한의 밤에는 쏟아져 나온 인파와 하나가 된다. 피루지 호텔에서 씨오세 다리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당근주스는 일품이다. 이스파한을 떠날 때까지 주스 아저씨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하루에 네다섯 잔씩 마셔댄 당근주스는 아무리 먹어도 탈도 안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