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샨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전 11시경 출발한 시외버스는 오후 1시 45분경 이스파한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눈이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 곳은 거리가 숲처럼 나무가 많아”
5월 중순을 겨우 넘겼을 뿐인데, 그냥 도시의 한 모퉁이 정도가 아닌 전체가 나무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도로를 오가는 많은 차들마저 녹색의 숲에 가려져있다. 호텔은 차하르바그거리 근처에 위치했다.
세계 최초의 가로수거리 차하르바그
Char는 4를 bagh는 정원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파르시)로 4개의 정원이라는 뜻이다. 차하르바그의 원조는 쉬라즈 근교에 있는 키루스왕의 왕궁이며 정원인 파사르가데이다. 물길을 따라서 걸을 수 있는 세계정원의 근본이 된 차하르바그양식의 정원은 델리에 있는 무굴의 후마윤의 묘, 카불에 있는 후마윤의 아버지 바부르 샤의 묘,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 등에서 나타난다.
1598년 완공된 당시의 거리에는 먹음직스러운 과실나무와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과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중앙으로 흐르는 시냇물에는 철마다 피고 지는 꽃잎들이 떨어져 시냇물을 타고 흘러 도시 전체가 꽃향기에 취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1598년 아바스 1세가 수도를 카즈빈에서 이 곳으로 천도하면서 조성한 이 거리를 'Chahar Bagh' 라고 이름을 붙인 아바스는 이스파한 전체를 온갖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키루스왕의 파사르가데를 닮은 하나의 정원으로 만들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영국과 러시아의 수탈에 시달릴 당시의 근대 왕조인 카자르 왕조 시기에 아름답던 차하르바그의 나무들은 전부 잘려서 팔려나갔다. 예전의 모습은 아니지만 나중에 심어진 여전히 푸른 거리의 나무들은 아름답다. 어찌됐든 지금도 거리 가운데는 물이 흐르고 있어 우거진 양쪽의 나무들과 꽃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차하르바그는 세계 최초의 가로수거리이다. 지금도 이 길은 도시의 남쪽인 소페산 아래에서부터 씨오세다리를 지나 쇼하다 로터리까지 이어진다. 호텔에 여장을 푼 뒤에 에스파한을 내려다볼 수 있는 5월 한 낮의 소페산Soffeh Mount. (해발 2073m)으로 향했다.
소페산Soffeh Mount과 인동덩굴
stone bench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소페산은 과연 어마어마한 돌덩어리의 단이 도도하게 도시를 바라보며 서 있다. 산의 중턱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에스파한의 해발고도가 높아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 산은 그냥 돌산, 그늘 하나 없는 어마어마한 바윗돌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인들이 이 곳에 오면 호기롭게 걸어 오르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소페산
이스파한을 보려고 소페산에 올라온 것이다. 이스파한이 수평선을 그리며 아스라이 보이는 것이 퍽 넓다. 케이블카가 시작되는 산의 중턱에 내려오니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꽃마다 찾아다니며 향기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한참을 찾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작은 백합처럼 길쭉하면서 하얗고 노란 꽃들이 섞여 있는데 담쟁이처럼 뒤엉켜 자라 있다.
인동덩굴
그때는 몰랐는데 사진을 찍어 와 서울에 와서 알아보니 인동덩굴이다. 6월의 안양천 산책길에 인동덩굴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향기 때문에 다가간 것이다. 꽃은 이란의 것보다 4분의 1 정도로 작고 크게 자라지 못하지만 분명 인동덩굴이었다. 관찰해보니 꽃은 흰색으로 피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노랗게 변한다.
한국의 전통문양에는 인동문양이 정말 많이 쓰인다. 고구려 강서대묘의 천장 굄돌, 백제 무령왕의 관식, 신라의 천마총의 천마도 둘레 등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예부터 많이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도 인동덩굴문양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동문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하여 그리스에서 로마와 페르시아 사산조(로마와 숙명적인 대결구도를 이루었던 페르시아의 왕조) 미술을 거쳐 변화하면서 중국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우리나라 일본 등지로 퍼진 것이다. 불교는 물론 이슬람 문화에서도 꽤나 광범위하게 쓰이는 문양으로, 덩굴속성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에 장수를 의미하는 길상의 의미로 많이 퍼져나간 문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