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파한 졸파지구와 아르메니아 교회
졸파지구는 아바스 1세가 의도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정착을 위해 만든 지역이다. 아바스는 카즈빈에서 이스파한으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뛰어난 상술과 기술, 능력을 가진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용하기 위해 각종 특혜를 주어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졸파지구에 살던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할 지역을 만들어 주었다. 당시의 이스파한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곳으로 보인다.
이스파한은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들을 이용하여 서방과의 비단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습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도 아름다운 이스파한의 거리와 다리들 그리고 건축물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메니아
현재의 아르메니아의 영토는 동으로는 아제르바이잔, 서쪽에는 터어키, 남쪽은 이란, 북쪽에는 조지아로 둘러싸인 작은 내륙국가다. 서기 40년경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 아르메니아는 로마보다 약 30년 앞서 301년 지구상에서 거의 최초로 기독교를 공인한 기독교 국가이다. 12 사도 중 바르톨로메오와 유다에 의해서 전파된 기독교는 정식 명칭도 서유럽의 가톨릭이나 동방정교와는 다른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제일가는 자랑거리인 문자가 아르메니아에서는 이미 천년도 더 전인, 5세기(405년)에 브람샤프왕의 지원을 받은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에 의해 만들어졌다. 36자로 만들어진 아르메니아 알파벳은 그리스어 성서를 아르메니아어 성서로 번역할 때 최초를 사용되었다. 이후 3자가 추가된 아르메니아 문자로 그들은 아르메니아 고유의 문화와 유구한 역사를 기록해왔다.
아르메니아는 지정학적으로 페르시아와 로마,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 몽골과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터키와 러시아와 소련의 틈바구니에서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나마 흑해 쪽은 조지아, 카스피해 쪽은 아제르바이잔에게 내어주고 가운데 좁게 자리 잡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지도를 보고 있자니, 문자를 가지고 있던 민족의 자존감이, 거센 유라시아 대륙의 각축에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어온 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크 교회 Vank
졸파지구의 중심은 반크 교회 Vank이다. 뜨거운 한 낮이지만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서늘해져 온다. 교회는 아바스 2세 시절 1692~1701 아르메니아인들의 모금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교회 내부를 장식한 그림 또한 아르메니아 화가들에 의해 꾸며졌다.
교회는 제법 잘 만들어진 평범한 교회와 수도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의 땅, 다른 민족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애써 그 고통과 인내를 존중하려 한다.
박물관 입구에는 양쪽에 두 사람의 흉상이 맞이한다. 왼쪽은 이란의 구텐베르크라 부르는 17세기 사람 가차투르 바르다페트 Khacha Tour Vardapet(1590~1646)이고 오른쪽은 아르메니아의 글자를 만든 5세기 사람인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361~441)이다.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두 사람이 모두 문자와 관련이 있다는 게 특별했다.
박물관에는 졸파의 금속활자1646년라고 쓰여 있는 인쇄기, 마음을 기울여 기록하고 그려나간 성경책들과 심지어는 다이아몬드 만년필로 머리카락에 써 내려간 영혼을 쏟아 부은 성경구절들, 결코 의미 없다고만은 볼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14쪽 0.7g인 성경책을 만든 열망과 인내는 그들의 뛰어난 기술과 두뇌를 넘어선다.
교회 앞에는 아르메니아(혹은 이란)의 구텐베르크라고 부르는 가차투르 바르다페트 Khacha Tour Vardapet(1590~1646)의 동상이 말없이 서 있다. 차분한 거리의 분위기지만 이란의 중요한 쇼핑가답게 찻집과 카페, 상점들이 즐비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을 뒤로 하고 지나가는 택시에 올랐다. 흔들리는 미나렛 Shaking Minarets을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