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10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 ​

# 야즈드 “It is a good and noble city”​

by 그루


이스파한에서 약 300Km, 버스로 4시간 남짓 걸렸다. 차창 밖의 풍경은 온통 황무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막과 황량한 들판에도 간간이 눈에 띄는 녹색은 분명히 그 아래는 지하수로인 카나트가 지나가는 곳이다. 황량한 것 같지만 실핏줄처럼 엮여 있는 땅 밑의 촘촘한 물줄기가 유실되거나 마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은 이란의 단단한 땅 때문이라고 한다. 물의 유실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땅과는 반대이다. 이 나라 땅 밑에는 석유도 고여있다.


It is a good and noble city


“It is a good and noble city”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1272년 방문한 야즈드를 이렇게 표현했다. 마르코폴로가 야즈드를 방문했을 당시는 몽골제국 칸 국 중 하나로 훌라구 칸의 아들인 일 칸국의 2대 황제 아바카 칸이 페르시아를 다스릴 때다. 일 칸국은 1255년 몽골의 훌라구 칸이 원정으로 얻은 지금의 이란, 이라크 지역이다.


사실상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하나로 통일한 몽골제국 내에서는 역사 이래 거칠 것이 없는 네트워크가 가장 발달한 시대였다. 말하자면 상인들이 국경을 넘을 때 비자가 필요 없는, 무엇이든지 소통되는 팍스몽골리카가 실현된 시기이다.


유네스코는 야즈드를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했다. 야즈드Yazd는 사막과 사막사이에 발달한 오아시스 도시로 이란의 중앙에 위치한다. 일 년에 약 60ml의 강수량이 전부인 이 곳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했던 물은 45Km 떨어진 시르후Shir Kuh(4077m) 산에서 카나트를 통해서 물을 공급하는데 야즈드의 카나트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실핏줄 같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체계적인 카나트관리는 이란에서도 최고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행정의 중심지였던 파르스와 호라산, 이라크 지역과 케르만사이를 이어주는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비단 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한 야즈드는 당시에도 질 좋은 비단을 생산하는 생산지였으며 쉬어가던 대상들의 도시였다.



야즈드의 상징 아미르 차크마크 콤플렉스Amir Chakmaq Complex


거리에서 시선을 하나로 모아주는 보무도 당당한 아미르 차크마크 콤플렉스 Amir Chakmaq Complex는 대상들의 숙소와 바자르, 모스크, 목욕탕 등 이 있는 지금의 복합몰이다. 15세기 티무르시대의 야즈드의 행정관이었던 Jalal-al-Din Amir-Chakhmaq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대칭형의 외관이 매우 인상적인 그야말로 야즈드의 상징이다. 밤에는 큐브형 벽감의 페르시아 아치가 만들어내는 리듬감은 환상적이다.

콤플렉스 광장 앞 쪽으로 쭉 뻗어있는 대로 양 옆으로는 거대한 바자르가, 바자르의 뒤쪽에는 수많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다.

아미르 차크마크 콤플렉스Amir Chakmaq Complex
시내 중심가의 굴뚝같은 조형물로 눈을 끄는 자연냉방장치인 Budgir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래된 골목길


대로변의 바자르 사잇길로 들어선 골목은 고대도시보다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나갔을 것 같은 흙빛 담벼락의 아치가 있는 골목길이다. 그리고 나타난 예전에는 거상의 집이었을 메흐르 호텔, 삐걱거리는 둔중한 나무문을 열고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 2층에 여장을 풀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문을 열어젖히니 분수가 있는 중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낮에는 40도를 넘나들지만 밤에는 0도까지 내려간다는 기후 차가 큰 야즈드고원의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만들어낸 질 좋은 비단을 사러 온 상인이 묵었던 방이 아니었을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밤을 맞은 그날의 대상처럼 그냥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고 싶은 방이다.


야즈드의 거리를 익히기 위해 큰길로 나와 길을 나섰다. 메흐르호텔구역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다 보면 낯선 도시지만 쉽게 호텔로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생각보다 제법 큰 도시의 늦은 오후, 거리의 사람들은 바쁜 걸음들을 옮기며 과일가게도, 저녁을 위해 빵을 굽는 빵집도 저마다 분주하다. 빵을 굽다 말고 빵집의 아저씨들 빵을 주시며 맛을 보라 하신다. 두툼한 넌(얇고 넓적한 빵) 하나면 두 사람은 넉넉한 끼니가 될 것 같은데 얇은 넌도 한 장 얹어주신다.


따끈한 넌을 뜯으며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지 아직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야즈드의 거리를 걷고 있는 늦은 오후, 노을빛이 스며드는 주황빛 색깔의 담장과 좁은 골목길, 어느 날 갑자기 도시가 모조리 땅 속에서 혹은 모래 속에서 쑤욱~ 하고 솟아난 듯 아도베형식을 취하고 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좁은 골목은 아, 우아한 양산을 쓴 듯 가는 아치형식의 Kucheh를 두르고 목걸이처럼 걸려있는 붉은 제라늄 화분 하나.


야즈드의 평범한 골목주택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산다.


해질 무렵의 주황빛 골목과 바드기르(또는 바지르)의 새어나오는 불빛들, 바드기르 Budgir는 windcatchers, windtower라고도 부르는 냉방장치로, 건물 지하에 우물을 두어 바드기르를 통해 잡아온 바람으로 물을 날려서 집을 냉각시키는 천연냉방장치이다. 야즈드에는 조금만 눈을 들면 많은 바드기르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기온이 높은 척박한 곳인지를, 야즈드의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많은 바드기르들을 보고 짐작을 할 수 있다.

이란의 전통적인 부잣집에는 낮의 뜨거운 온도를 식혀주는 바드기르가 설치가 되어있어 그 집의 부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본 이란의 가옥구조는 대부분 지하가 발달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야즈드의 지하는 다른 곳 보다 더욱 깊게 파 들어간 구조를 하고 있다. 카나트가 연결된 지하층이야 당연하지만 꼭 카나트 때문만은 아닌, 더운 사막기후의 생활구조상 일반인들이 사는 집들도 대부분 깊은 지하로 1, 2층까지 파고 내려간 구조였다.


바드기르가 있는 골목길


소박한 가로등을 따라 걷다가 고소한 냄새 따라 빵집 앞으로 다가가면 조용한 골목길에서도 빵집은 따끈한 빵을 계속 구워낸다. 빠른 손놀림을 하면서도 그 누구의 고향집의 아저씨들처럼 이내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시는 야즈드의 빵집 아저씨들, 걸어오면서 그런 빵집을 세 군데나 만났다.


좁은 골목길, 빠끔 열려있는 대문 사이로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나온 듯 작은 녹색정원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숨죽이며 문고리를 잡고 들여다보려는 순간, 꽝~!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쨍하게 고함치는 자세의 11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나는 여행자의 기분에 들떠 그만 이들의 생활에 작은 것 같지만 민망한 피해를 끼친 것이다.


어스름 빛에 젖어있는 골목의 집들은 반갑게 맞아주는 빵집 아저씨들과 구멍가게나 카페 외에는 대부분 대문들이 굳게 닫혀 있다. 다른 이란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생각해보면 야즈드는 고대 페르시아의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인들이 아랍에 의해 정복될 7세기경, 피난을 왔던 피난처였으며 지금도 이란에서 가장 많은 조로아스터교인들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내가 만났던 내부분의 이란인들이 활달하고 타인을 먼저 수용하는 태도였다면 야즈드 골목길의 굳게 닫힌 문들은 피해를 받아온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태도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앙을 고수하면서 가족을 지켜야 하는 그들은 분명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 속에서도 어려움을 안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굳게 닫힌 문단속쯤이야 기본 아니겠는가.


골목길을 돌면서 적당한 레스토랑이 보이면 저녁을 먹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돌아다니면서 얻어먹은 빵만 해도 배가 부르다. 자메모스크의 야경과 시계탑을 볼 때쯤엔 발바닥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골목길에 취해서 너무 걸어버렸다.


야즈드


하루에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것은 여행자의 기본인데 호텔로 빨리 돌아가려니 이젠 가는 길이 쉽지 않다. 그날 밤, 발바닥의 아픔 속에서도 달디 단 뜨거운 고원의 머리통 만한 멜론 한 덩이를 안고 들어왔다. 너무 어두워져 버린 밤길에서 헤맨 야즈드의 골목길도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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