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12화

자라투스트라와 아후라 마즈다

#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착착과 아테쉬카데 그리고 침묵의 탑

by 그루

착착 Chak Chak

대지의 풍경은 거친 산맥의 와일드한 웨이브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 아래로 끝이 없이 이어지는 사막은 황무지 그 자체이다. 어도비 마을 하라나크에서 나와 ‘착착’으로 갈 때도 그랬다. 차는 달 표면의 한 부분을 달리는 것처럼 불쑥불쑥 솟아있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모래 산 몇 개를 돌고 나니 멀리 산기슭에 우묵하게 들어앉은 사원이 마치 주인이 떠난 새집처럼 보인다.

사원은 637년 이슬람 세력인 아랍인들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때 공주와 일군의 신도들이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만들어졌다.‘착착’이란 이름은 사원안쪽의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딴 의성어이다. 물이 떨어지는 곳의 상태나 듣기에 따라서는 착착으로 들렸을 수도 있었겠다.

사원 가까이 도착하자마자 경건함을 고취라도 시키듯 어두워진 하늘에서는 우당탕탕 굵은 소나기가 쏟아진다. 사막에 내리는 비는 축복이다. 비를 맞으며 제법 높은 경사 진 산등성이를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인공으로 판 작은 굴에는 아케메네스 왕조를 나타내는 부조가 새겨진 묵직한 문이 달려있다. 동굴의 벽에는 조로아스터교를 소개하는 간략한 정보가 붙어있다. 공간에는 청동화로에 타고 있는 방문객들 뿐, 다른 종교에서 보이는 화려함도 간단한 장식물도 없다.

동굴 외부에도 이곳과 관계되는 사람들이 기거하는 곳일 것 같은 간편하게 지은 건물들이 있을 뿐이다.


불이 있는 작은 동굴 안, 열심히 사진 찍는 관광객들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등 현대 종교에 영향을 끼친 고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와는 달리 신을 위한 집이 없으며 신의 형상도 만들지 않는다.


창시자로 여겨지는 조로아스터는 태어난 시기를 기원전 15세기 또는 7세기경 등으로 추정하는데 ‘조로아스터’를 파르시(이란어)로는 ‘자라투스트라 Zarathustra’라고 한다. 그의 출생은 아직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태어난 지역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지역인 박트리아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을 마기 Magi라고 하는데, 그들은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점성술에도 능한 사람들이었다. 영어의 ‘마술’을 의미하는 Magic은 조로아스터의 사제인 ‘마기’에 어원이 있으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동쪽에서 별을 쫓아온 동방박사 세 사람도 마기였다고 알려져 있다.


메디아왕국과 아케메네스 왕조를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가 국교로 채택되어 발전했다. 선한 신 아후라 마즈다가 악의 신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한다. 결국에는 메시아의 의미를 갖고 있는 사오쉬안트Saoshyant의 등장으로 선과 악의 싸움이 종결된다고 한다.

동굴에서 바라본 벌판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권이다.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서 온 곳이지만 지금은 조로아스터교인들의 중요한 성지이며 신앙의 장소가 되었다. 야즈드 가까이 있는 불의 집 The Yazd Atash Behram에서 나는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침묵의 탑 Dakhmeh-ye


조로아스터교에서는 빛과 불, 물과 흙을 신성시해서 사람을 땅에 묻는 토장이나 화장을 하지 않고 조장이나 풍장을 했다. 조장의 장소였던 침묵의 탑 Towers of Silence은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에서 나온 매장 풍습의 장소이다.

지금은 이란에서 조장이 금지되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장례가 이루어졌다. 금지된 이후 조로아스터교인들은 토장을 하긴 하는데 흙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시멘트로 무덤의 바닥을 마무리하고 남녀노소 누구든지 같은 크기의 무덤을 만든다고 한다. 신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때 조로아스터교가 순식간에 무너진 제일 큰 원인은 조로아스터 사제계급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계급사회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신 앞에 평등하다는 이슬람에게 먹힌 것이다.


조장터가 있는 산
뼈를 수습하던 곳


종교는 과연 소수의 사람만을 위한 것인가.


사람의 시신이 썩는 것보다 건조되어 미라로 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은 기후를 가지고 있는 땅에서 조장은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조장은 주검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가장 빠르게 진행이 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침묵의 탑은 70m의 산과 50m 높이의 산 위에 한 개씩 만들어져 있는데 어떤 종교의 의식장소보다도 더 겸허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듯하다. 주검이 머물다 가는 곳이란 의미만 잊는다면 전망이 좋은 이곳에 올라와 가깝게 느껴지는 도시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을 만한 곳이다.


독수리나 새들이 주검을 빨리 먹고 갈 수 있도록 뼈를 토막으로 분리해서 놔두면 살점을 다 먹을 때까지 가족이나 성직자들은 산 아래 장소에서 산 위의 시신이 뼈만 남을 때까지 12일에서 길게는 20여 일 동안 머문다. 남은 뼈는 깊은 웅덩이에 쌓아 놓으면 세월에 지나면서 삭아 없어지는데 때로는 약품으로 삭아 없어지게 하기도 한다.


조장터에서

뼈를 수습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저 기대어 있을 뿐

그래도 내가 살아가야 하는 곳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이곳이 아니라

황량한 저 산 너머


침묵의 탑이 보이고 오른쪽탑앞에는 물저장고와 물을 식혀주던 바드기르(천연 에어컨디셔너)가 보인다.


아래쪽에는 가족이나 성직자가 머무는 곳과 물을 담아두던 저장소, 바드기르 등이 설치되어 있다. 지금도 여전히 기능이 가능한 천연 에어컨 바드기르는 더운 날 주검을 보내고 이 곳에 묵었던 유족들의 몸과 마음의 시름을 식혀 주었다.

가까이에는 지금은 자신의 조상들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묻혀 있을 조로아스터 교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아테쉬카데The Yazd Atash Behram


아테쉬카데Atashkadah는 불의 집 Fire Temple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불은 남부 파르스지방의 사원에서 보존하던 불씨를 이곳에 가져온 470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유리 안에 있어 가스나 전기로 유지되는 불처럼 보이나 사람이 직접 불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 역할을 하는 실내는 흰색 옷을 입은 조로아스터가 그려진 그림과 역시 조로아스터에 관한 내용이 벽에 붙어 있을 뿐 별다른 장식이 없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스크나 교회, 신당 같은 성전이 아닌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흔히 아는 것처럼 불을 경배하는 종교가 아니다. 불은 의식에 사용되는 것으로 빛과 물 그리고 흙과 함께 상징적이며 신성시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화교라고 부르는 조로아스터교의 명칭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에는 약 4만 명 정도의 조로아스터교 신자가 있는데 야즈드에 약 2만 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그 밖에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서 이주한 사람들의 후예들은 현재 인도의 뭄바이 파키스탄 등에 살아가고 있다.


아테쉬카테도 1934년 해외 이주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졌는데 페르시아 건축의 형식을 취했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생각을 담은 건축으로 간결하며 소박하다. 건물의 중심에는 사람의 몸에 넓은 날개를 한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당신에게 바른 생각, 바른말, 바른 행동을 원하는 아후라 마즈다의 눈이 바라보고 있다.


간결하고 소박한 페르시아양식의 건축물과 양 옆의 과실수가 있는 가든, 건물 중앙 윗부분에는 사람 몸에 날개가 있는 아후라 마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