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페루, 쿠스코 근교 피삭과 삭사이와망....
다시 돌아온 쿠스코는 푸근하게 고향처럼 맞아준다. 햇살이 좋은 아침, 오늘은 밤에 출발하는 버스로 볼리비아로 넘어 가야 하니 남은 시간 현지 투어를 알아보기 위해 아르마스 광장으로 나갔다. 나이 지긋한 부부들, 가족들이 곳곳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투어를 알아보니 여행사마다 자리가 쉽게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인 것이다. 토요일인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알아 봤을 텐데, 다행히도 적당한 가격으로 피삭을 비롯한 삭사이와망, 켄코, 땀보마차이 등을 돌아보기로 했다.
피삭 Pisac
쿠스코에서 피삭으로 가는 내내 버스는 우루밤바 강을 끼고 달린다. 유난히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들이 보이는 이 계곡을 잉카인들은 ‘성스러운 계곡’이라 부르는데 잉카제국 시절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이곳으로 인해 쿠스코는 먹을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계곡을 끼고 달리다 보니 피삭이다.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토요일이어서 페루비안들이 가족끼리 나들이를 온 것이다. 주차장도 만차여서 아래쪽에 주차를 하고 언덕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고산지대에서 언덕을 오르는 일은 묵직한 시멘트 포대를 발에 끌고 가는 기분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높은 곳을 좋아하는 잉카인들이었기에 유적들을 보려면 대부분 더 올라가야 볼 수 가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 쿠스코가 해발 3400미터인데 대부분의 중요한 유적지는 쿠스코 시내보다 놓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4000미터를 넘나드는 곳을 다녀야 하는 것인데 무리하면 순간 정신을 놓아 버릴 수가 있다.
다소 무질서하게 주차가 되어 있는 언덕을 오르다가 보니 길가에 군것질거리들을 판다.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도 때울 겸 고산으로 지친 몸도 추스르고 옥수수와 전통 음료를 사서 나무의자에 앉았다. 옥수수의 알들이 얼마나 크고 실한지, 하나만 먹어도 든든해진다. 역시 이곳은 옥수수의 고향이다.
잉카제국이 단시간에 제국을 형성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농작물 생산이 발달해 잉카의 백성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한다. 피삭도 예외 없이 물길은 집집마다 수로가 연결이 되어 있고 마을을 통과한 물은 하나도 손실되지 않고 조형적으로 잘 다듬어진 계단식 밭으로 흘러 들어간다.
규모가 꽤 큰 마을은 계곡을 바라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고 잉카의 중요한 거점 지역답게 정상에는 태양과 달의 신전이 있고 전망이 좋은 곳에는 군인들이 거주한 곳들도 잘 보존이 되어 있다.
피삭에서 쿠스코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땀보마차이 Tambomachay를 비롯한 여러 유적지들이 나타난다. 뿌가뿌까라, 껜꼬, 삭사이와망까지 보고 나면 바로 쿠스코 시내이다.
땀보마차이에 도착하니 입구에 해발고도 3765미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땀보라는 지명이니 이곳도 숙소나 객사가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공원 같은 느낌의 야트막하게 경사가 길게 난 언덕을 올라가는데 숨이 차 올라온다. 건기여서 많은 물은 아니나 우기였으면 제법 많았을 것 같은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아마도 물이나 비에 관한 제사를 지낸 곳처럼 제단 같은 곳에 물이 작은 폭포처럼 바위를 타고 흐른다.
땀보마차이는 '잉카의 목욕탕'이라 불렀다고도 하는데 물에 얽힌 전설 하나쯤 있지 않을까. 페루사람들이 자랑하는 맥주 꾸스께냐가 이 일대의 물을 사용한다고 하니 꾸스께냐가 맛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땀보마차이를 나오니 바로 뿌까뿌까라 Pucapucara가 보인다. 멀리서 보면 마치 둥근 성벽을 두른 요새처럼 보이는 뿌까뿌까라는 땀보(객사)역할을 했던 곳이다.
잉카시대 땀보는 쿠스코에서 10킬로미터마다 있는 숙소였으며 창고, 또는 물건들이 교환되는 장소였다. 잉카는 북으로는 에콰도르의 ‘키토’에서부터 남으로는 칠레의 중부까지 23,000킬로미터에 이르는 길로 동쪽으로는 아마존까지 뻗어 나갔으니 수없이 많은 파발꾼들이 땀보마다 넘쳤으리라. 땀보들은 자연스럽게 마을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이다.
쿠스코가 언덕 아래 한 눈에 보이는 곳에 거대한 유적인 삭사이와망Sacsahuaman이 서 있다. 이곳은 퓨마의 모양을 한 쿠스코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데 한 눈에도 요새나 성벽으로 보인다. 아마도 중요한 신전이거나 그에 버금가는 중요한 곳이었을 것이다. 엄청나게 큰 거석들이 쿠스코 시내의 12각의 돌처럼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지금은 3층까지만 남아있는데 원래는 4층이나 5층까지 있었던 것을 식민지 시절 정복자들이 그들의 도시를 건설하는데 아랫 부분의 돌보다 비교적 가벼웠던 윗부분의 돌들을 갖다 사용했다고 한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대함은 파노라마 사진을 찍어도 다 들어가지 않는다. 토요일이어서 꽤 많은 페루비안들과 관광객들이 있건만 그들은 그냥 하나하나의 점들에 불과하다. 셔터를 누르며 그 앞을 지나가는 나는 끝이 없는 긴 사열대 앞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잉카의 군인들도 정복을 마치고 돌아와 이곳에서 쿠스코까지 들리는 함성을 지르며 사열을 하지 않았을까.
삭사이와망을 보고 나오면 눈 아래 거석이 들어오는데 바로 껜꼬Kenco이다. 동굴로 들어가는 미로의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의식을 치르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이 눈에 띈다. 잉카인들의 신앙의 형태를 짐작하게 하는 곳이다.
키가 큰 유칼리나무들이 안데스의 구름을 배경으로 하늘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