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칠레 국경, 체 게바라를 생각한다.
칠레로 들어오니 입국 사무소부터 사무원들의 옷차림도 깔끔하고 입국 순서도 체계가 있고 화장실도 깨끗하다. 그러나 어린 자식을 두고 온 것처럼 마냥 볼리비아 땅에서 멀어지는 게 아쉽고 서운하다.
칠레 국경을 넘어도 설산들은 나를 따라오고 거친 고원의 느낌은 그대로이다. 120여 년 전 이곳은 볼리비아의 땅이었다. 볼리비아는 칠레 페루와 싸웠던 태평양전쟁(1879-1884)으로 구리와 초석 광산이 있는 금싸라기 땅이며 태평양과 접해 있는 아타카마 주를 칠레에게 빼앗기고 항구가 없는 내륙국가가 되었다. 지금 나는 그곳 아타카마 사막으로 간다.
아타카마로 가는 길, 광산의 도시 칼라마에 도착했다. 휴게소의 차갑고 사무적인 여직원의 태도에 순간 적응을 못하고 멈칫거렸다. 한국처럼 이곳은 물질로 사람의 가치척도를 재는 문명 세계인 것이다. 낡은 오토바이‘포데로사’를 타고 칠레를 여행하던 체 게바라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싶을 만큼 칠레 사람들은 친절하다.”라고 말했던가. 칼라마 Calama는 거대한 구리로 이루어진 산인 추키카마타 Chuquicamata광산이 있는 곳이다. 광산의 노동자들을 보며 체 게바라는 이곳에서 혁명을 꿈꾸게 된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San Pedro de Atakama
생각보다 일찍 어두워진 아름다운 사막 마을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에 도착, 이름이 예쁜 허름한 숙소 빠니리Paniri에 여장을 풀었다. 영락없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바닷가의 민박집이다. 방에 들어가려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그때서야 침대를 어디에선가 갖다 놓는다. 여행은 춥고 배고픈 것,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마을로 들어오는 길, 어두워져서 그런가, 나지막한 담장의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너무 낭만적 이리만치 예쁘다. 칠레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하던데, 짐을 내던지듯 방에 넣어놓고 레스토랑을 찾아 나왔다. 흙으로 되어 있는 예쁘고 좁은 골목길들은 마냥 걷고 싶고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은 담장 너머 들여다보고 싶어 진다. 이런 낭만적인 곳에서는 누구든지 분위기에 젖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거리의 집들은 소박한 불빛을 기울이고 있고, 심지어는 레스토랑마저 환한 빛을 내지 않는다. 밝은 것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청춘인 여행객들뿐이다. 그날 밤 감상에 젖은 대가로 볼리비아에 비해 엄청나게 물가가 비싸기도 하지만 값비싼 저녁 값을 지불해야만 했다.
계획대로라면 내일 하루 아타카마 사막을 보고 내일 밤에는 산티아고로 떠나야 한다. 남미는, 특히 칠레는 나라가 길어서 밤에 움직이는 버스를 선호한다. 버스터미널의 사무실이 문을 닫기 전에 예매를 해야 하는데, 급하게 가니 문을 닫는다. 내일 아침 7시 30분에 문을 여니 그때 오란다. 표가 없으면 큰일인데.
늦게 잠을 잤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이라고 해도 마을이 작아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나온다. 가끔씩 등교하는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아침 찬바람을 가르며 지나갈 뿐, 인적 없는 이른 아침의 골목길은 어젯밤에 느끼지 못했던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집도 담도 전부 흙을 햇볕에 굳혀 만든 벽돌로 만든 adobe 양식의 건물들이다. 일 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이어서 그대로 굳어 포도가 된 단단한 흙길, 오랜 세월로 인해 모서리가 둥글어서 따뜻해 보이는 흙벽돌과 흰색으로 마무리한 회벽, 나무로 만들어진 파란색의 문들은 꾸미지 않은 미니멀한 세련됨까지 느끼게 한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더니 7시 30분이 넘었건만 문이 닫혀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한 30여분 기다리니 그때서야 출근을 한다. 내 뒤에 줄을 섰던 사람들은 티켓을 구입하지 못해 돌아선다. 사람의 심리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듯, 저절로 기분이 뿌듯하고 좋아진다. 잠을 덜자고 새벽에 나온 보람이 빛이 난다. 뒷자리면 어떠랴 산티아고를 갈 수 있는데.
아침을 먹고 나니 이른 아침 그렇게 추웠던 날씨가 따뜻해진다. 골목 여행사에서 아타카마 사막 투어 예약을 하고 마을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의 마을답게 자유로운 영혼들이 여기저기 튀어 나온다. 아르마스 광장 옆 아도베 Adobe양식으로 지어진 아담하고 소박한 교회가 서 있다. 산 페드로 교회다. 따뜻한 느낌으로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모름지기 교회는 이렇게 생겨야 하거늘. 코발트빛 하늘 아래 산 페드로 교회는 초현실적이다.
아타카마 사막
태평양에 면해 있는 아타카마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으로 약 2000만 년 동안 건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을 벗어나니 바로 아타카마 사막이 펼쳐진다. 사막에는 협곡이 있는가 하면 달의 분화구 같은 곳이 있고 소금 암석으로 이루어진 동굴, 온천까지 기묘한 지형의 집합체처럼 몸과 동공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또한 변화무쌍한 사막의 지형으로 사막 트레킹과 샌드 보딩을 비롯한 산악자전거까지 다양한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막 여행을 하다 보면 뜨거운 기온과 햇빛, 심하게 건조한 바람 등으로 인해 몸은 고단하지만 늘 예상 밖의 즐거움과 볼거리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막을 다녀와서 또다시 사막을 동경한다.
내 기억 속, 추억이 오랫동안 머물다 가는 곳, 아타카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