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칠레의 창 '발파라이소'
오늘은 일요일이다. 여유 있게 아침을 먹고 근처 ATM에서 페소를 좀 찾고 산티아고 터미널로 향했다. 낭만적인 항구이며 산티아고의 외항인 발파라이소를 가기 위해서다.
산티아고의 시내를 벗어날 즈음 창밖에는 녹색 축구장들이 끝이 없이 이어지는데 내가 보고 있는 오른쪽만 해도 줄잡아 열두어 개는 되어 보인다. 피노체트의 17년 집권 기간 동안 반체제인사들을 처형한 장소가 축구장이었다는 이야기가 스치듯 떠오른다. 운동장에는 휴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역시 축구는 남미를 대표하는 운동임에는 틀림이 없다.
칠레의 잔디구장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길옆에는 칠레의 와이너리들을 소개하는 예쁜 팻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을 들어 멀리 보니 포도밭들이 끝이 없는 수평선을 이루고 있다. “칠레에서는 와안 값이 물 값보다 더 싼 것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즐비한 와이너리들을 보고 지나가자니 새삼 그럴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티아고에서 하루, 아니 한나절만 할애를 해도 와이너리 투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속으로 계획을 잡아보니 어렵긴 하다. 오늘 하루는 발파라이소와 비냐 델 마르에서 보내고, 내일은 산티아고 시내를 쏘다녀야 한다. 그다음 날은 아침 일찍 아르헨티나의 멘도사로 넘어가야 하니, 이럴 때는 무리한 강행은 안 하는 것이 나의 성격이며 선택이다. 서울에 돌아가서 생각하면 백이면 백 아쉬운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지만, 아마도 이런 태도가 내게 장기여행을 건강한 몸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 중요한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바다로 창을 낸 언덕의 도시 발파라이소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2시간 정도, 달렸을까, 발파라이소다. 도시 입구부터 곧 무너질 것 같은 높은 언덕에 집들이 보인다. 역시 발파라이소는 언덕의 도시이다.
터미널에서 내리니 마치 장날 이기라도 한 것처럼 메인도로가 애드벌룬과 함께 왁자지껄하다. “일요일이어서 그런가?”생각하기엔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 같은 인파를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오늘 이곳에 무슨 행사가 있어요?”하고 물으니 아하! 어린이날이란다. 대충 들으니 아마도 매해 8월의 첫째 일요일이 어린이날인 것 같다.(?)
Plaza Italia부터 Plaza Victoria까지 갖가지 공연과 행사, 먹거리로 그득하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알록달록 페이스페인팅, 아빠 어깨에 무동을 탄 사내아이, 예쁜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들, 나마저 들썩들썩 공연스레 내입 꼬리가 올라간다.
걸어서 하늘박물관으로
이름도 낭만적인 창공 박물관 Museo a Cielo Abierto으로 오르기 위해 왼쪽의 언덕을 바라보니 급한 경사의 병풍 같은 언덕들이 길게 항구를 감싸고 있다. 창공 박물관은 말이 박물관이지 특별한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창공으로, 언덕으로 오르는 경사가 심한 길과 계단들, 그래도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집집마다 특별한 장식과 페인팅, 개성이 돋보이는 집들, 페인트가 벗겨져있거나 녹슨 지붕들, 타일로 꾸민 계단 등, 그리고 몇 번은 쉬어야만 올라가는 높은 언덕, 언덕마다 백 년도 넘은 아상소르Ascensor라는 엘리베이터가 운영이 되고 있는 언덕 자체가 하늘 박물관인 것이다.
혹여 그 많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칠레의 유명한 작가의 벽화를 발견한다면 더욱 멋진 발파라이소 언덕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우리나라의 통영이나 서울, 부산 등의 산동네에 예쁜 그림들로 장식된 벽화마을들은 아마도 발파라이소를 벤치 마킹한 셈이다.
창공 박물관에서 한참 길을 올라가다 따라 올라가다 보면 칠레의 시인‘네루다 Pablo Neruda(1904~1973)’의 집을 만날 수 있다. 전 생애를‘시’와‘칠레’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며 살았던 네루다는 산티아고에도, 가까운 발파라이소에도 본인의 취향에 맞는 집을 갖고 살았던 걸 보면 정치적 탄압을 겪은 시인이자 정치인, 외교관이었지만 많은 양심수들처럼 비참한 생활이나 말로는 겪지 않은 듯 보인다.
창공 박물관 쪽에서 지금도 여전히 운행되고 있는 가장 알려진 콘셉시온 언덕의 아상소르를 타려면 쁘랏부두로 가기 전 언덕을 왼쪽으로 놀고 아센소르 표지판을 잘 보고 걸어야 한다.
아상소르를 타는 순간 나는 영화 속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100년 전 흑백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티켓을 사고 몸으로 차가운 철제 회전봉을 밀고 들어간다. 순간 깨는 꿈이지만, 이런 희열은 내게 깨알 같은 재미이다.
언덕의 정상은 여행객들을 위한 멋진 카페와 선물가게, 레스토랑 등이 있는데 오래된 뚜리 시계탑과 쁘랏부두, 시원한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내가 느낀 발파라이소의 항구를 둘러싼 언덕들은‘바다로 난 창’이다. 파나마 운하가 생긴 이후 항구가 급격하게 퇴락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그래도 컨테이너선이 많이 오가는 걸 보면, 산티아고의 외항이며 칠레 제1의 항구 역할은 여전한 것 같다.
급경사의 언덕을 한나절 이상 오갔으니 다리도 아프고 배는 더욱 고프다. 가고자 하는 레스토랑이 지도상으로 소또 마요르 광장이나 쁘랏부두에서 멀지 않아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젠 걷고 싶지 않다는 것, 근방이지만 택시를 타고 Porto Viejo 레스토랑으로 직행했다.
이곳은 해산물의 천국 칠레에서도 발파라이소다. 오기 전부터 “발파라이소에 가면 배 터지게 해산물을 만끽하리라”고 얼마나 별렀던가. porto Viejo는‘오래된 항구’라는 뜻인 것 같은데, 흠,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역시 항구의 오래된 레스토랑 분위기다. 주문했던 모든 메뉴가 좋았지만 메인 메뉴인 Mariscal Cocido는 내가 그동안 먹어왔던 해산물탕의 최고, 재료 그 자체의 시원한 국물 맛과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글을 쓰면서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부두가 보이는 넓은 광장이다. 푸른빛의 해군본부와 그 앞에 자랑스러운 태평양전쟁의 영웅들이 소또 마요르 광장과 쁘랏부두를 바라본다.‘이끼께의 영웅들’이라고 쓰여있는 칠레의 히어로들을 쳐다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 관심 없는 척 지나쳐버렸다.‘이끼께’라면 지금은 칠레의 태평양 연안 휴양도시, 예전엔 볼리비아의 땅이었던 곳이다. 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했을 터, 조국에서는 영웅이지만 그들은 그저 침략자의 앞잡이였을 뿐이다.
태평양전쟁 War of the Pacific이란 20세기 일본이 발발한 전쟁이 아니고 1879년 칠레와 볼리비아, 페루 사이에 일어난 국토분쟁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 중의 하나인 아타카마 사막의 초석 지대를 놓고 칠레가 볼리비아의 땅을 점령하면서 일어났다. 그야말로 ‘네 이웃을 경계하라’이다. 1884년 볼리비아는 태평양으로 통하는 길을 잃었으며 내륙국가가 되어버렸다. 그 후부터 볼리비아의 해군들은 티티카카 호수에서 훈련을 하며 해군본부는 당연 티티카카 호수에 위치한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정부는 “볼리비아는 태평양 연안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면서 2013년도 4월 24일 ICJ국제사법재판소에 칠레를 제소했다고 한다. 볼리비아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그지없지만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부디 애타는 볼리비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길 온 마음으로 바란다.
배가 부르니 마음도 무거워지나? 하늘도 무거워 보인다. 구름이 손에 닿을 거 같다. 스산한 마음에 부둣가를 하릴없이 기웃거리고 피에로 아저씨 얼굴 보며 히죽거리고.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해는 서쪽으로 기어들어가고 산티아고행 버스에 올라탔다. 차창으로 세차게 때려주는 빗 자국마저 급 우울해진 나를 도와준다. 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Gossens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녹슨 지붕과 퇴락한 느낌이 더 정겨웠던 발파라이소를 떠난다. 오래전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영화를 누렸던 흔적이 남아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