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40분, 칠레의 산티아고를 출발한 버스는 한두 시간을 지나니 아직 국경은 못 왔는데 벌써 눈바람이 몰아친다. 가파른 안데스가 시작되려나보다. 버스 안에는 아르헨티나 행 버스여서인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많이 탑승해 있다. 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하나같이 보온병 옆에 끼고 주석으로 된 마테 잔을 계속 빨아대고 있는 모습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이 곳은 남미대륙의 서쪽으로 길게 뻗은 안데스 산맥 중 가장 높은 산인 ‘아콩카과’가 위치하는 곳으로, 히말라야 산맥의 8,000m급 이상 14좌를 제외하고는 아콩카과 Aconcagua(6,962m)는 7 대륙에서 가장 높은 최고봉이라고 한다. 물류를 가득 실은 컨테이너 트럭들이 느릿느릿 바짝 긴장을 하고 오른다.
정오가 가까워져 배가 출출해질 즈음 엄청난 바람이 불어 대는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나타난다. 국경이다. 항상 그렇듯이 국경을 넘는 일에 하루는 깨져버린다. 어느 나라든지 국경에서 그리 수월하게 보내주는 나라는 유럽을 제외하고는 드물다. 그래서 시간 깨지는 것을 포기해야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파고드는 겨울 고산의 바람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국경의 위치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지만 표지판에 있는 이름으로 보아 오르코네스 계곡 Los Horcones 2,800m 부근인가 보다.
남미 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
와인과 봄의 도시 멘도사로
자연슬로프가 있는 스키장
입국 수속을 마치고 여유가 좀 생기자, 눈에 덮인 교회도 낭만적으로 보인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과 분주히 오가는 리프트들이 지나간다. 부러움은 흩뿌리는 눈발 속에 날려버리고 봄의 도시, 녹색의 도시, 와인의 도시 멘도사 Mendoza로.
오후 4시 즈음 공기도 상쾌한, 반듯한 길들 과 멋진 가로수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멘도사에 도착했다. 사막성기후여서 강수량이 적은 대신, 인근의 높은 산맥에서 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을 이용한 관개시설이 발달한 멘도사는 포도, 올리브, 야채 등 농작물 생산이 대표적인 산업으로 발달했다.
멘도사의 주택
이 곳은 남미 최고의 와이너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와인의 지존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와인의 고장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 보르도가 원산지인‘말벡’은 맛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병과 곰팡이 때문에 보르도에서 매번 실패한 품종이다. 하지만 멘도사에서는 대표적인 품종으로 거듭 낫기 때문이다.
멘도사는 안데스 산맥의 지맥인 로스파라미요스산맥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해발 761m 지점에 위치한다. 높은 산맥으로 인해 비가 적은 사막성기후로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많이 난다. 고산이어서 낮의 온도는 자외선에 많이 노출되어 포도의 당도를 높여주고 서늘한 밤의 온도는 와인의 산도를 높이고 천천히 익어가면서 탄닌은 더없이 부드러워진다. 거기에다가 건조한 기후는 곰팡이균의 활동을 막아 자라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고산지대의 낮과 밤의 많은 온도 차이는 포도의 짙고 고운 색깔을, 풍부한 향미가 생겨나게 만든 것이다.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가까운 보데가를 방문했다. 여행객의 흥분까지 겹쳐 칠레에서 매일 저녁 마셨던 와인은 저리 가라, 지금까지 마셔 본 와인 중에 최고이다. 화이트 와인을 가지고 다닐 걱정은 붙들어 맸는지 무거운 줄 알면서도 두 병을 후딱 구입해 버렸다.
멘도사는 집앞의 보도는 주인이 꾸민다. 깔끔하고 다양한 보도블럭들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과하게 마신 와인으로 어깨동무하며 거닐었던 멘도사의 공원들과 반듯반듯한 거리, 갤러리, 인디펜던스 광장의 작은 공연들, 어두웠지만 빛났던 바이크 카페와 총각, 멘도사가 허락해 준 여유를 마음껏 만끽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