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반성이고 스승이다.

제18화 아르헨티나 멘도사 마이푸 가는길

by 그루


멘도사에서 만난 사람들



다음날 아침, 시골정취가 가득한 멘도사 근교에 위치한 마이푸의 와이너리들을 방문하고 싶어 일단 호텔 가까운 곳에서 터미널행 버스를 탔다. 아뿔싸! 동전이 없다. 지폐로는 버스비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당황해하는 우리를 본 한 남자, 자리에서 뻣뻣하게 느릿느릿 일어서더니 우리 두 사람의 버스비를 내준다. 목에는 하얀 기브스를 해서 고개도 돌리지 못하는 신세의 남자였다. 얼굴이 새빨개져 어찌할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어딜 가냐?”고 묻는다. 마이푸를 가기 위해 터미널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곳은 작은 도시지만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답게 터미널도 꽤 멀다. 꽤 긴 시간 달려 터미널이 나오자 내리라고 하면서 따라 내린다. 그때는 몰랐지만 답례로 가지고 있던 작은 물건을 드리고 고마움을 표시하자마자, 재빨리 길을 건너는 남자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같은 번호의 버스에 올라탄다. 출근길에 만난 어리버리한 외국인에게 멀고 복잡해서 찾기가 어려울 것 같은 길을 제대로 알려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거였다.


이런 일이~, 비록 목에는 기브스를 했지만 핸섬하고 진정으로 친절했던 아르헨티노가 타고 가는 버스를 멍하니 한 동안 바라보았다.


과연 최근에 터미널의 위치를 옮긴 듯 터미널의 규모가 크고 여기저기 복잡하다. 30여분 교외로 빠져나가니 끝도 없이 휑~ 한 벌판에 가로수와 간혹 띄엄띄엄 보이는 건물들만 보인다. 수출보다는 내국인의 소비가 더 많은 와인의 나라에서 멘도사는 아르헨티나 와인 생산량의 70% 이상을 생산한다고 한다. 벌판이 끝이 안 보이는 사막처럼 넓다. 멘도사 강과 남쪽의 루한 강에서 갈라져 나온 물길은 자연수로를 거치면서 필요한 곳에 보내준다고 하니 이 넓은 벌판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을 수로를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도 가도 사람은 물론 차들도, 표지판은 더욱 찾아볼 수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햇살만 따사로울 뿐 건조하기 짝이 없다. 겨울이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기대했었나 보다.

어쨌든 마이푸 지도를 보면서 버스 안의 가장 젊은 여자에게 “우리가 와이너리를 가려고 하는데, 어디쯤 내리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잠시 주춤하더니 기다리라고 하면서 한 건물 앞에서 같이 내리잔다.



아름다운 아르헨티나인 사브리나


‘Animal Hospital’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마테차를 건넨다. 마이푸는 워낙 넓어서 집집마다 콜택시를 불러서 이동을 한다고 한다. 여름에는 자전거 대여도 있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버스는 보데가 앞에서 내리지 않고, 그래서 자기가 콜택시를 불러 주겠단다.


사브리나가 건네준 마테차



마이푸의 겨울, 황량한 들판에서 만났던 한 떨기 흰색 장미 같았던 그녀의 이름은 ‘사브리나’, 오늘은 아침부터 연거푸 감동이다. 나는 언제 남에게 이렇게 순수한 친절을 베푼 적이 있었는가?



100년도 넘은 로페즈 보데가


보데가 골목이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한산하다. 그중 한 보데가를 기웃거리다가 주차장 쪽을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 트렁크에 와인을 짝으로 싣는다. 이곳이다 싶어, 냉큼 들어가니 멋진 정원과 와이너리, 레스토랑, 박물관 등 작은 마을을 연상시킬 만큼 부지가 넓다. 와인의 향기가 보데가를 감싸 안고 있다고 해야 하나, 와인은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는 듯, 향긋하기 그지없다.



보데가 안에 있는 와인 박물관


멘도사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멘도사의 센트럴파크인 산 마르틴 공원을 산책하면서도, 간식을 사러 간‘까르푸’에서도 ‘사브리나’에게 받은 감동과 함께 했던 마이푸에서의 하루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든지 모든 것을 빛나게 해 주었던 시간이었다.


내게 여행은 반성이고 스승이다. 오늘 저녁 7시 45분 버스를 타고‘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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