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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히 Feb 02. 2022

브랜드 창업 일지 모아 읽기

혼자 일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어느날 나에게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그 어떤 것도 나를 이리 긴 시간 무기력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나는 그 무기력함에서 서서히 나오고 있다. 그 방법은 바로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일. 


그저 익숙했던 일상의 패턴들 늘 반복적이고 익숙한 일들. 그러한 것을 그저 해내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적같이 더 이상은 찾아오지 않을 것 만 같았던 희망과 꿈이 생겼다.


첫회사에 대한 기억은 그리 좋게 남아있지 않는다. 8개월의 취준생으로 준비하면서 나는 나에게 어떤 직업이 어울릴지 이리저리 입어보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미술을 전공했기에 당연 아동미술, 퍼포먼스 유학미술 , 입시미술 , 디자이너 쪽으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직접 부딪혀가며 찾아다녔다. 

그러다 나의 맞는 옷을 찾은 건 바로 <세트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었다.

공고내용만 보아도 설렘과 호기심이 마구 용 솟았다.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호기심이고 다른 하나는 재미인데, 그중 호기심을 건드렸으니 추진력이 특기인 내가 안 움직일 수 없었다. 바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았다.

직장 위치는 집에서 1시간 40분 거리에 과천에 한 스튜디오였다. 나에게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았다. 넓은 스튜디오에서 실장님과 면접을 보며 왠지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을 받았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그 당시 60년대가 아닌 무려 21세기 2016년이었는데 월금은 50만 원이었다. 충격은 잠시 그러나 나에게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너무나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열정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열정 페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 나는 나의 젊음과 열정을 이 직업과 바꾸기로 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 합격 전화를 받고 다음 주 바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도 이 세상의 쓸모가 된 것 만 같았다. 

사실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점점 쓸모를 잃어갔었다. 대학을 나와도 갈 직장이 없다는 사실,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감...등  이러한 쓸데없는 걱정들을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자존감이 뚝뚝 떨어졌었다. 


그렇게 쓸모를 회복한 출근 첫날! 

모든 게 새롭고 흥미로웠다. 동료들은 풀에 스프레이를 덧 뿌리고 페이트로 벽을 칠하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못질을 하는 풍경은 너무나도 나의 설렘을 자극했다. 어찌 보면 막노동 같아 보이지만 나에겐 큰 놀이터 같았다. 창고에는 온갖 페인트와 물감들, 붓, 목재 등 재료들이 가득했다. 



3) 저 퇴사할래요 


그러나 이렇게 들뜬 마음은 2년 6개월 후 싸늘하게 식어 퇴사를 선택하게 된다. (갑자기 ?)


퇴사 후 가장 먼전 한 것은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이었다.

나는 배가 고픈 사람처럼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닥치는 대로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방을 꾸미는 것.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퇴직금으로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고 오랫동안 품었던 조명을 샀다 , 하나씩 해 나가면서 허기가 조금씩 채워지자 , 눈이 떠지고 서서히 활기가 생겼다.  허기를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내 배고픔을 적확히 알았고, 그것은 <창작과 노동>이었다.


적적한 노동과 그 안에 창의성이 존중되는 일 


허기가 채워지자 다양한 발상과 전환이 시작되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버터를 보고 비누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버터 비누? 이 쓸데없는 생각은 나를 방산시장으로 인도했고 , 그곳에서 수제비누를 사고 염료를 사 집으로 돌아왔다. 버터 모양에 가장 비슷한 형태를 찾아가며 만들기 시작했다. 

첫 회사를 다닐 때처럼, 무언가 새로운 일은 늘 기분 좋은 설렘을 선물해주었다.

호기심에 재미가 붙자 동력은 더 높아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패키지는 어떻게 만들지? 진짜 버터 껍질처럼 만들고 싶은데.. 가장 익숙한 홍대 호미화방으로 향했다. 여러 종이들을 만져보며 딱 생각했던 머릿속에 그려본 종이와 일치한 것을 찾았다! 오예.  이리저리 잘라보고 프린트하며 버터 비누를 조금씩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나갔다.  아마도 이때,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2) 걱정은 쓸데없는게 아니야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저 운이 좋았다고 말하기엔 조금 억울한 면이 있어 운이 좋았다는 말 보단, 어쩌다 보니..라고 주로 말을 흐렸다. 뚜렷한 대답을 못한 것이 영 찝찝했다. 사실 이 부분을 생각해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나? 그렇게 나는 이 부분을 깊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쩌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었을까?  


가장 가까운 대답은 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였다. 

내가 기억을 하는 건 대학교 때부터이다. 학부시절부터 그림을 참 많이 그렸다. 그림에 주제는 거의 '나'에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과 창작의 시간은 4년 동안 흘렀고 ,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8개월의 시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나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의 과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고 싶고, 나에게 어떤 능력이 있고, 단점이 있는가,,, 등등 


이 고찰 덕분에 퇴사 후 나는 비교적 빠르게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졸업 후 취업 준비하던 8개월의 시간 , 행복했지만 어느 순간 지옥이 된 회사생활 , 퇴사 후 잠시 막막했던 순간 들 이러한 긴 쉼표들 덕분에 나는 내가 왜 힘들어했는지 나를 더 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힘든 경험을 통해 배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나는 예쁜 쓰레기라고 부른다. 예쁜 쓰레기를 통해서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닐 땐, 왜 이렇게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퇴사 후 '나'에 대한 고찰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퇴사를 통해 회사에서 배운건 <나는 자율성이 없는 반복적인 행위, 패턴이 읽히는 일, 불공평함 >을 잘 못 견딘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나에게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과 사건을 통해 나는 어떤 일을 못하는지 좋아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돋보기를 들고 나의 과거의 기억 속으로 조각을 찾아 떠나보라! 분명 실마리를 발견할 것이다. 



4) 무계획의 쓸모 _우선해보는거야


그렇게 퇴사 후 나는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메이드파니는 처음에 브랜드명을 만들고 기획 아래 시작한 브랜드가 아니었다. 버터 비누가 먼저 만들어지고 그다음 브랜드화가 시작되었다.


첫 프리마켓을 나가던 해 브랜드명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나는 브랜드명을 만들기 시작했다. 위트가 있고 특이한 이름을 짓고 싶었다. 출발은 '나'로 시작되었다. 나의 본명은 한환희 이니셜은 HHH 모두들 이니셜을 특이해하고 재밌어했다. 나는 이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의미를 갖. 다. 붙이기 시작했다 

Have a Happy Hour!  행복한 시간 되세요!라는 의미였다. 


그저 나의 시작은 본능적이고 무계획적이었다. 그저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버터 비누가 만들어지자 버터에 관한 무한한 상상이 펼쳐졌다. 버터 한 조각을 썰어낸 모습이 납작한 에코백처럼 보였다. 잔디 위에 펼쳐진 돗자리가 잔디 위에 떨어진 버터 한 조각으로 보이고 버터 세상이 펼쳐졌다. 그렇게 에코백을 만들고 피크닉 매트를 만들고 피크닉 하는 우리의 일상이 담긴 일러스트 타월을 만들며 일상에서 발견한 재미를 찾아 제품을 만들고 메시지를 전했다. 상상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건 꽤 짜릿했다. 작고 귀여운 식료품 가게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5) 브랜딩이 뭐에요? 


하지만 이 즐거움도 잠시 제품수가 많아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무언가 복잡해져 갔다. 

그때 마침 창업자를 도와주는 프로그램 공고를 보게 되었고 나는 바로 신청했다. 그곳에서 처음 나는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만나는 전문가들마다 모두 제품의 디자인은 너무 좋은데 브랜딩이 안되어 아쉽다는 조언을 한 목소리로 했다. 


도대체 브랜딩이 무엇인가 말인

그때부터였다. 브랜딩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 1년을 허우적거렸다. 브랜딩이라는 책은 정말 거의 다 읽어본 것 같다. 페르소나, 철학, 미션, 타깃, 설루션 등등 처음 듣는 용어들 속에 메이드 파니를 끼어 맞추는 일은 영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답안지에 답을  채우려고 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것은 한순간에 채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브랜딩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혹은 브랜딩이라는 근사한 단어에 속아 근사한 옷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빨리 벗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브랜딩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재밌게 살고 싶었고, 삶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나답게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의 팝업을 참여하다 나는 결국 이름을 바꾸게 된다. MADEFANNIE 


이름을 바꾸어 나가면서 나 스스로도 조금씩 정의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읽었던 브랜딩 책들의 결실이 열리는 것인가? 


MADEFANNIE 

FUNNY=FANNIE = 파니가 만들다 =나를 만들다 


일상에서 찾은 버터 한 조각. 엉뚱한 상상으로 이상하게도 늘 똑같았던 일상이 조금 말랑해졌다. 나처럼 누군가에게 이 한 조각이 딱딱해진 일상을 조금 말랑하게 해 주길 바랬다. 일상에서 찾은 작은 재미였다. 이 재미를 같이 나누고 싶었다. BUTTER는 나에게 그러한 의미였다. 


BUTTER than yesterday! 원래는  better than yesterday 가 맞지만 위트를 주었다. 어제보단 더 나은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더 나은 삶에 대해 고민했다.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나'의 주체성은 사라지고 쳇바퀴 속에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나'다운 삶을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의미했지만 그 안엔 더 나은 나를 만들다는 의미가 강했다. 

어쩜 나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MADEFANNIE  FANNIE는 누구의 이름으로 대체 가능하다. < MADE _______ > 나를 만드는 것. 나를 만들어 왔던 과정을 통해 나는 나를 더 알아가고 성장해 나갔다. 누군가에게도 그러한 도움을 주고 싶다 


아마도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브랜딩이고 나발이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브랜딩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 찾고 , 더해가고 , 나누는 것이었다. 


6) 우린 모두가 비슷하다 


얼마 전, 지인과 나눈 이야기가 있다.


지인과 힘듦을 나누던 중 지인은 나에게 


"너는 참 행복해 보여..."

"난 너처럼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 "

"회사 너무 노잼이야 ".  


그 말에 나는 이런 말을 했다. 


" 그래?"

" 나는 회사 다니고 싶은데 ㅋㅋㅋㅋ"

" 너랑 나랑 다를 거 없어 그냥 나의 일부를 네가 좋게 바라봐주기 때문에 좋아 보이는 거야 " 

" 나 되게 행복해 보이지? 막 좋아하는 거 하고 돈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지?"

" 근데 나도 '나' 나름에 고충과 슬픔 불행을 느끼면서 살고 있어 "

" 근데 그 불행을 계속 보다 보니깐 더 불안해지고 불행만 보게 되더라"

" 그리고 사람들은 다 각자의 불행을 가지고 살고 있더라고 근데 차이점이 뭔지 알아? "

"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 산다는 것 " 

"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

" 힘들지만 방향을 바꾸려고 하고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거야 " 

" 그러니깐 삶이 조금 낫더라 " 

" 야 그리고 재미없으면 그냥 퇴사해 나랑 창업하자ㅋㅋㅋㅋ"


우린 서로를 부러워하며 비슷한 고민을 나누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7) 일상에서 찾은 한 조각 


나는 이대화에서 메이드 파니의 방향성을 발견했다.


1) 하고 싶은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것 (공동체)

2) 혼자만의 외로움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 (너는 혼자가 아니야 )

3) 같이 기쁨을 누리는 것 (몰입) 



나는 처음 제품을 만들고 판매했지만 지금은 조금은 다양한 변화를 꿈꾸고 있다.

제품을 넘어 공간을 만들고 싶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공간. 커뮤니티. 


#배달의민족 #장인성 이사님 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브랜드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있으면 그때부터 세계관이 생기는 것 같다"


이제부터 메이드 파니의 세계관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물음표를 붙여보자!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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