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추천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요즘 매일같이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는 유난히 자극적인 제목을 단 책들이 많습니다. 재치 있는 언어유희에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제목이 열일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목은 번듯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왠지 속은 듯한 기분이 드는 경우입니다.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는 다릅니다. 이 책의 제목은 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담백합니다. 저자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노빠꾸’라는 말은 결코 허세나 수식이 아니라 태도임을 알게 됩니다. 그의 삶은 예상보다 훨씬 치열하고 단단합니다. 나는 얼마나 뜨겁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고, 결국에는 작가님께 한 수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패기 넘치는 젊은이의 도전기’입니다. 지난번 월드컵 이후로 한창 유행했던 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표어를 몸소 보여준 이야기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몹시 가부장적인 가문에서 자란 젊은 여성, 벨기에로 결혼 이민을 간 한국인, 혼혈인 두 아들의 엄마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사실 그런 것쯤 없어도 괜찮을 그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벨기에가 아니었어도, 젊음이 한참 지난 뒤에도, 아마 같은 방식으로 삶을 밀고 나갈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자 송영인 작가는 브런치에서 ‘고추장와플’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다가 출판사의 제안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필명에서부터 작가의 거침없는 재치가 느껴집니다. 글은 가볍고 유쾌하며 역동적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온 지 몇 년 만에 공무원이 되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공무원 시험은 경쟁이 치열하기로 악명 높으니까요. 반면 벨기에는 언어의 장벽이 가히 악명을 떨칠 만합니다.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해야 하고 지역 사투리까지 필요하다고 하네요. 그런 곳에서 작가는 언어 학습으로 시작해 공무원이 되었고 대학원 과정을 공부해 석사 학위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보아도 좋을 ‘은근과 끈기의 한국인’이라는 표현 또한 저자의 것입니다. 그러나 행간에 놓여 있을 수많은 땀과 고단함과 가끔의 눈물들 역시 독자는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국내에서 대학원생이던 시절, 벨기에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힘겹게 결혼 허락을 받아낸 이야기. 모든 것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이국땅에서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자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들. 벨기에인이자 한국인인 두 아들의 단단한 엄마로 서기까지의 과정이 속도감 있는 문체로 담겨 있습니다. 이 시대에 국제결혼과 해외 정착이라는 소재는 자칫 진부할 수도 있지만, 독자들은 낯섦과 호기심으로 작가의 삶을 계속 들여다보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독자를 이끄는 힘은 벨기에라는 낯선 배경보다는, 살아가는 데 진심인 저자의 태도입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는 열정과 패기, 결코 약자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 무엇보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당당히 외치는 자세가 그것입니다. 읽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요즘의 급식체로 말하자면,“이렇게까지 한다고?”
나는 한국 국적도, 이미 계약서에 사인한 내 집도, 시험을 통과해서 얻은 내 공무원 자리도, 그중 어느 것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p109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내 완벽하지 못한 네덜란드어가 고까우면 그건 너의 인성 문제다’라는 정신으로 부끄럽고 숨고 싶은 본심을 덮었다. p140
저자는 “할 수 있다! 해 보자!”라고 온몸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1부 ‘국제결혼한 여자 말고 보통의 사람 되기’와 2부 ‘남의 나라에서 엄마 되기’라는 소제목을 보아도 삶 속에서 그의 지향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목에 쓰인 ‘노빠꾸’, ‘상여자’ 등의 낱말들은 어법에도 맞지 않고 거친 분위기마저 풍기지만, 작가의 태도를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는 찾기 어려울 듯합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의 말에 잘 들어맞는 사례라 생각되네요.
“거의 맞는 단어와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정말 크다. 그것은 반딧불과 번개의 차이다.” - 조지 오웰
유쾌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 유쾌함은 가벼움이 아니라 단단함에서 비롯됩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독자의 마음이 괜스레 뿌듯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호기심에 열었어도 겸허히 미소 짓게 만들죠. 가볍게 시작하고 상쾌하게 덮는 책이었습니다.
작가는 담담하게 안부를 전하며 끝맺습니다. ‘나는 나로 잘 살고 있다’고. 이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머뭅니다. 그는 앞으로도 자기 자신으로, 그렇게 잘 살아갈 것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책은 이 책을 만든 출판사 ‘꿈꾸는인생’의 대표이자 편집자인 홍지애 작가의 『책 만들다 우는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제목만 보고 벌써 사랑에 빠졌습니다.
벨기에에서 작은 승리를 거둔 이후로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길은 열릴 것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p50
해외에서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어떤 배경을 가졌든 무슨 공부를 했든, 지금의 나는 그저 벙어리에 귀머거리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했다. p52
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지금은 도전할 때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p88
버티는 것에 자신 있는 편이지만, 때로는 도망치는 것이 답일 수도 있는 것이다. p146
어디에 있건, ‘될 때까지 해 보겠다’는 마음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p164
개미(저자)가 베짱이(남편)와 만나게 된 것은 순리일지 모르겠다. 그래, 베짱이, 너는 화초 같은 남자 해라.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나를 믿고 따라와! p172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짜잔 하고 나타났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로 전래동화를 읽어 주며 한국어 발음을 듣게 했고, 이어 네덜란드어로 무슨 내용인지 설명해 주었다. 다른 나라에 대해 배우는 수업에 선생님이 지원자를 찾으면 망설이지 않고 나가 한국을 소개했다. …… 젓가락 사용법을 알려 주고 한글로 자기 이름 써 보기 등의 체험 활동도 함께 했다. p206
유럽에서 소위 중산층은 경제적인 측면이기보다 문화적인 개념이라고 봐야 옳다. 외국어를 두세 개 정도 구사하고, 다루는 악기가 하나쯤 있고, 고등 교육을 받았으며, 문학을 즐기고 예술에도 해박한, 교양 있는 집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221
한국인도 벨기에인도 아닌 누군가가 아니라, 한국인이기도 하고 벨기에인이기도 한 나의 아이들이 두 나라를 모두 마음에 품고 그 특별함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p235
나는 ‘나’로 잘 살고 있다.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