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눈_김광규
밤눈
김광규
겨울밤
노천 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 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시는 잘 모릅니다.
고백하자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는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학생 때 배운 시는 다 어려웠으니까요. 내가 느낀 감상 따위 있기도 어려웠지만, 있다 해도 선생님이 제시하는 것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실제 시인들도 자신의 시를 인용한 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합디다. “내 시로 문제를 냈던데, 나는 그 문제 틀렸어!”
낭독을 배우며 시는 더 어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감히 시인의 감성을 표현할 자신이 없었고, 그러기엔 너무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시 낭송을 해 보니 시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시가 이런 거였다니, 그동안 나는 뭘 본 것인가.
여전히 어설프고 어쭙잖지만 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는 만나자마자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겨울에, 밤이고, 한데 내놓인 전철역. 그뿐인가요. 눈이 내리고 바람도 불죠. 따뜻할 수 없는, 춥디 추운 배경인데도 이 시는 따뜻했습니다.
두 연인이 연상됩니다.
추운 몸을 덥히려 소중히 안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 내 나이 오십이지만,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면 ‘좋~을 때다. 살아 봐라.’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시가 주는 느낌은 맑고 신선하며 안정적이고 믿음직스럽습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집’, ‘따스한 방’, ‘바깥’이 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춥고 어둡고 힘들 때, 날이 밝을 때까지 서로에게 든든한 의지처가 되고 싶었다는 고백입니다. 특히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이라는 표현에서 시선이 멈춥니다. 연애할 때는 상대의 허물이나 단점 따위가 보이지 않죠. 설령 나에게 약점이 있다고 해도,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은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나를 그저 나로만 받아들여 줄 것 같습니다. 그와 함께하면 나는 세상으로부터 안전할 듯합니다. 시 속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인가 봅니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나 역시 한때 경험했었던 듯한 기분이 듭니다. 먼 옛날… 하도 옛날이라 기억나지 않을 것 같지만, 노력하면 됩니다. 난생처음 느끼는 설렘과 든든함, 가장 완벽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생각, 이 사람만은 나를 있는 그대로 판단 없이 용납해 줄 것 같은 안도감.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정 다양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시구를 쓸 수 있는 걸까요?
짓궂게도,
여기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에게 되고 싶었던 그것이 모두 과거형의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서로의 집이, 따스한 방이, 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는 그들은, 지금은 어쩌고 있으려나요?
아침에 발견한 이 시에 반한 나머지,
후닥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