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맞습니까?
마흔, 내겐 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요, 그런 귀여운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지요. 그런데 웬걸, 쉰이 되었습니다.
엊그제 교회 행사에서, "제가 막내 기관 소속입니다. 그런데 제가 올해 쉰입니다." 했더니 누군가 그러시더군요. "연소해야 하는데 연로하군요."
어릴 적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법적 성인이 된 후에는 그 젊음이 시나브로, 혹은 갑자기 사그라들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운동하지 않아도 탄탄한 몸, 연일 정크푸드로 과식해도 47kg을 넘어가지 않던 체중, 미인은 아니지만 탄력 있는 피부. 쉰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것들은 그저 신의 축복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공자께서 불혹(不惑)이라 말씀하신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내 나이가 마흔이라는 것도, 이제는 유혹에 흔들려 판단을 흐리지 않을 때가 되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어렸고 여렸습니다.
공자님이나 그렇지, 어디 일개 범인(凡人)인 나 같은 자가 나이 마흔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옛날에는 수명도 짧았고 혼인도 일찍 했으나 이제는 그 모든 나이가 최소 1/3 이상 늘어나고 늦춰졌으니 예순쯤 되어야 불혹이 가능한 것 아닐까.
나이 체계를 통일했네, 그래서 나는 아직 생일이 안 됐네, 해도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쉰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나, 불혹도 안 되는 판국에 하늘의 뜻을 알라니요. 부담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냥 나이고, 가만히 있어도 예뻤던 열일곱 그 시절의 일들이 어제 일처럼 떠올려지며, 이십 대의 불안과 삼십 대의 고단함, 사십 대에 새로이 시작되었던 진로 고민 들이 생생합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요? 그렇지 않던데요?
거울 속 저 여자는 누구인가. 외출할 일이 없는 날에도 뭐라도 찍어 발라 얼굴빛을 화사하게 만들고 싶고, 언덕 같은 동네 뒷산에만 올라도 무릎이 아픕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 하면 왜 이리 고려해야 할 것,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지요.
하지만, 어쭙잖게 오십 년을 살아 보니 이제 뭔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길에서 발만 삐끗해도 그토록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남편의 표정이 조금만 굳어 있어도 내가 뭔가 실수했나 마음이 쓰이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도 자기 삶을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기 때문임을 압니다. 나는 왜 이리 못난 엄마일까 자책했었지만, 나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며 아이들이 나에게 완전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압니다. 공부를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몇 번씩 들은 말도 때마다 새롭지만, 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공부가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불혹(不惑) 하지 못한 채로 마흔을 지나고 지천명(知天命) 하지 못한 채로 쉰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해보는 것, 그것이 '나이 든'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모르는 것, 못하는 것 많지만 그래도 도전해 볼 의지와 용기가 생긴달까요. 꽤나 용감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쉰이 된 올해에는 평생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해보려 합니다. '완벽하게'가 아닌 '완료하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