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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자들 1

국경수비대를 만나 보았는가

by 낭랑한 마들렌

지도상 위치도 애매한(?) 중앙아시아. 지금은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제가 그곳에 있었던 2001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1년 정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살고 있던 때, 카자흐스탄으로 여행을 갔다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다시 우즈베키스탄의 집으로 돌아가는 코스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던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 쪽으로 가는 장거리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비자는 당일 만료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자정 전에 그 나라를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출발 예정 시각이 지나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았는데 기사의 말이, 좌석이 많이 비어있으므로 채워져야 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먼 거리를 운행해도 이문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요. 어쨌든 출발 시각이 정해져 있던 것이니 버스를 출발시켜야 한다고, 사실은 우리가 비자 만료로 자정 전에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때 기사는 분명히 장담을 했습니다. 나는 그의 뻔뻔했던 눈동자까지도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인데도 말입니다.


아, 자정 전에 국경 통과할 수 있어요.
충분히 갈 수 있다고요. 걱정하지 마요!



믿을 수 없었지만 달리 어쩔 도리도 없었습니다. 한민족으로서 도저히 인내할 수 없는 길고 긴 시간을 대기하고서, 자정을 두 시간 남긴 시각에야 좌석이 거의 채워져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국경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지만 좌우지간 마음이 불안해 피곤한 몸에는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막을 달리길 몇 시간, 우리에게 무슨 일이 펼쳐질지 알지 못했던 때. 휴게소 같은 것도 없는 사막 어딘가에 잠시 정차해 용변을 보고 오라고 하더군요. 남자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변을 보고, 여자들은 불빛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한참만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세상에, 이 동네(중앙아시아 사막지대)에 이미 몇 개월 살아온 사람이지만 늘 새롭구나!


국경은 어디쯤인가. 이미 지난 건지, 아직 멀리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도 듣지 못하면서 자정은 지나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국경에는 국경수비대, 즉 군인들이 지키고 서있는 국경 초소가 있었고, 버스 승객들을 모두 검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여기가 국경이구나, 하고 알아차렸을 때는 새벽 2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와 일행은 이미 불법체류자였습니다.


무장한 군인들은 기사를 포함해 승객들을 모두 맨몸으로 버스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째려(?) 보며 면면을 살피고, 차에 올라 승객들의 짐도 확인했습니다. 물론 여권과 비자도 제시하도록 했지요. 검문이 끝났는지 모두 차에 타라고 하더군요. 가슴을 쓸어내리려던 순간, 우리 두 사람은 짐을 가지고 다시 내리라고 하더군요.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요.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비자가 끝났으니 여길 통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방을 꺼내와 버스에서 다시 내리니 군인들은 버스를 출발시켰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나는 버스 기사에게 부족한 언어실력으로 마구 따졌습니다. 당신이 분명히 말했지 않냐, 자정 전에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네가 늦게 출발해서 이렇게 되었으니 군인들에게 말을 좀 해 달라, 제시간에 출발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버스 기사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는 모른다, 하고 그냥 가버리더군요. 그 사막 한가운데, 십 대처럼 보이는 이십 대 여자 승객 둘을 남겨두고 덜덜거리며 한국산 버스는 가버렸습니다. (현지인들에 비해 한국인은 매우 동안이어서 사람들이 나이를 물을 때 스물여섯이라고 대답하면 내가 러시아어를 잘 몰라서 열여섯을 잘못 말한 줄 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한국의 노후 차량들을 수입해 운행하곤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라는 것을 그때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당연히 당황했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불빛 하나 없는 사막이었기에 눈앞은 그냥 캄캄했습니다.


찬찬히 둘러보니, 국경인지 뭔지 알 수 있는 어떤 표식도 없었고 초소도 없었습니다. 그저 커다란 드럼통에 장작 같은 것을 넣고 불을 피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여름이었지만 아시다시피 사막이기 때문에 밤엔 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 때문에 그 정도 불이라도 없으면 안 되었습니다.


군인들은 군복 차림에 총을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내놓고 우리를 흘깃거리며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상상이 되나요? 그들의 존재 자체가 공포이고 위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또 공포스러울 수밖에요.


우리는 러시아어를 조금 할 줄 알뿐, 각 나라의 민족어는 거의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카자흐어로 말했기에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에서 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추우니 불을 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 곁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 여기서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해도 쥐도 새도 모르겠구나.'


등골이 오싹해지고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가 점점 더 조여왔습니다. 두려움으로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습니다. 추워서 떠는 건지 무서워서 떠는 건지, 도무지 이성적인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만의 언어로 시시덕거리며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었고, 우리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커진 눈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비자가 만료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내 상상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감히 그들에게 물어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렇게 공포에 떨며 사막 한가운데에 밤새 서있어야 하는가.


그때 승용차 한 대가 보였습니다. 우리 쪽으로 곧장 달려오는 자동차는 우리에게 또 어떤 해를 끼칠지 몰라 새로운 두려움이 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특정 국가를 모함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당시 인신매매 같은 것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현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던 터라 그 순간의 공포는 뇌에서 시작해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저 차에는 누가 타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오는 것일까. 이젠 정말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일까.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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