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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모릅니다

by 낭랑한 마들렌

(글이 깁니다. 감정이 많이 섞인 글입니다. 모든 의사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억울함이나 불쾌함을 느끼실 분도 극소수 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해도 악플은 사양합니다.)


동네 안과 의원에 갔습니다. 눈도 가끔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요. 정직하게 말하자면 '백내장 수술이 무서워서'입니다. 물론 안 질환이 백내장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몇 년 전엔가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받으실 때 보호자로 갔었는데, 수술 준비 장면을 복도에서 잠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무섭던지, 무섭다는 말로는 도무지 표현이 되지 않는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그 수술을 견디신 엄마가 너무나 존경스럽다 못해 이상스럽게까지 느껴졌으니 말입니다. 하여간 그 이후로 '나는 결코 심각한 안 질환에 걸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았는지, 건강검진받듯, 그리고 치과 정기검진 받듯 눈도 검진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우리 동네에는 안과 의원이 귀합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몇 개나 있지만 가까운 곳에는 안과 의원이 없어서, 차를 움직여서 가야 합니다. 접수를 하면서 검진받으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후 검사실에서 내 이름을 부릅니다. 전에도 이곳에서 검진을 했었기에 절차를 알고 있습니다. 검사실에 들어가니 이전과는 다른 직원이 있습니다. 시력검사를 하겠느냐, 하기에 필수는 아닌가 싶어서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망막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느냐, 그냥 기본적인 것만 하시겠느냐, 또 묻기에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간단히 몇 개 검사하고 진료실로 들어갑니다.


의사가 묻습니다. 이경희 님은 검진하러 오신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런데 시력검사랑 망막 사진이 없네요? 아, 하겠냐고 묻기에 안 해도 되나 싶어서 안 한다고 했어요. 의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습니다. 아니, 검사를 해야 검진을 하지, 검사를 안 하면 어떻게 검진을 하라는 겁니까? (속으로) 뭐라고요? 이 냥반 말본새 좀 보게. 이 동네 독점 안과 의원이라고 생각하시나.


의사: "검진받으러 왔으면 검사를 하셔야죠."

나: "그럼 검사를 받겠냐고는 왜 묻습니까? 필수검사면 그냥 하면 되지, 물을 필요가 없잖아요."

의사: (좀 누그러진 듯) "그야, 환자분이 검사를 하겠다고 하셔야 해 드리는 거지, 저희 맘대로 할 수는 없죠..."

나: "꼭 필요한 거라면서요. 필요한 건 당연히 하는 거죠. 접수할 때 검진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검진받으러 온 사람한테 검사하겠냐고 묻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필수검사라는 걸 알려 주지도 않았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내 나이가 올해 50입니다. 그리고 아들 같았던 딸을 포함해 아이 셋을 낳아 키웠습니다. '애가 셋이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 아세요? 의사가 뭐란다고 내 잘못도 아닌데 기죽을 마들렌은 아니죠. 직원 교육을 제대로 시키셔야지, 직원이 실수한 것으로 환자를 나무라면 안 되죠. 정말이지 병원에서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의사들은 모릅니다. 자기들이 환자들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자기들이 환자들을 얼마나 무안하게 만드는지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의사들에게 얼마나 많이 야단맞는지 말입니다. 의학에 대한 전문지식은 자신들이나 가졌지, 우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일반인이 다 알고 있는 것이라면 이미 전문지식이라고 하긴 무색하죠. 모르니까 건강관리를 잘 못할 수도 있는데 상식이 없는 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 덕분에 자신들이 돈을 버는데도 말이죠. 자신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의료 서비스를 받는 고객들에게 전문가로서의 권위만 앞세워 지시하고 명령합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검사와 처방이 있는지 모르고 속아주는데 말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동네 내과 의원입니다.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냥 몸살도 아니고 몸이 이상했습니다. 끙끙 앓는 상태였는데 기간도 길어졌고요. 결국 이런저런 검사를 다시 해 보니 간 수치가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밝힌답시고 의사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지만 별다를 게 없었습니다. 결국 의사가 이렇게 묻습니다.


의사: "그럼 왜 간 수치가 올라갔을까요?" (그걸 의사가 환자에게 묻네)

나: "글쎄요... 스트레스 때문일까요? (웃음)"

의사: (새침) "그 정도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딨나요? 스트레스 좀 받았다고 간 수치가 이렇게 올라가면 사람들이 살 수 있겠어요?"

나: (속으로) '뭐라고요? 이 냥반 말본새 좀 보게.'


이날은 그냥 속으로 부글부글하고 말았습니다. 일단 몸이 안 좋아서 에너지가 없었고 다투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간 수치가 올라간 이유에 그렇게까지 집착하지도 않고, 현대의학으로 그걸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하지도 않습니다. 현대의학은 거기까지니까요. 원인은 더 이상 캐지 않아도 된다는 사인으로 웃으며 얘기한 것이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에 한 얘기인데 환자에게 그렇게 짜증을 낼 일인가 말입니다. 의학전문가로서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 자신에게 자괴감 들고 괴로워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일이 아닌가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고 있는지 물어는 봤나요. 내 스트레스에는 1도 관심이 없으면서 '그 정도 스트레스'라니, 말씀 참 함부로 하시네, 좀 배웠다는 양반이!


의사들은 모릅니다. 환자들이 그들 앞에서는 전문가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의사들이 장사꾼으로 보일 때도 부지기수라는 것을요. 기왕에 장사를 하시는 거면 동네 장사 좀 친절하게 하시든가. 국내 제일이라는 대학병원에서의 에피소드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참겠습니다.





다시 검사실로 가서 생략했던 검사들을 하고, 다시 진료실로 가서 검진을 받고 눈이 아주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왔습니다. 안과 전문의께서는 괜스레 성의 있게 보아주는 듯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사소한 말들까지 하며 검진을 합니다. 멋쩍게 웃으며 눈은 아주 건강하니 2~3년 후에 다시 검진받으시면 되겠다고 말합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전에 왔을 때 이 의사가 잘생겼다고 생각했던 것은 취소합니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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