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어어~ 저 갱년기예요!

갱년기의 발견, 그 후

by 낭랑한 마들렌

원래 좀 징징거리는 성격이긴 합니다. 명색이 성인이 되고 또 부모가 되니 사람이 조금 자란 거지요. 그래도 '내가 갱년기'라는 충격은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의 블랙홀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신체적, 심리적 증상 자체로도 그렇지만 실상 그보다는 갱년기에 직면한 그 심정이 더욱 힘들었던 것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갑작스럽게 더위를 느꼈습니다. 은근슬쩍 겉옷을 벗기도 했으나 그냥 전반적으로 옷을 얇게 입어버렸습니다. 새롭게 생긴 증상도 있었는데, 역시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입니다. 덥지 않아도 그냥 얼굴이 발그레해집니다. 당황스럽죠. 가급적 아무렇지 않은 체하며 숨기려 애써보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을까?’, ‘나만 갱년기가 빨리 온 거 아냐?’, ‘이런 증상이 드러나면 내가 무척 늙은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하는 생각들로 사람 만나는 일이 불편해지기도 했습니다.


심리적 증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히려 내적 평안에 더 가까워지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무기력, 무의욕과 몸도 마음도 처지면서 자꾸 쉬고만 싶은 것, 그리고 우울감. 이런 곤란함들이 호르몬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나를 다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독서는 물론 자진해서 시작한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그저 발만 담그고 있는 상태였던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었습니다. 이해하고 나니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나아갈 수 있어 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조금 곤란한 것은 직업적인 부분이었습니다.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임했고, 거리가 멀어도 나를 강사로 불러 주는 기관에 감사하며 기쁘게 가곤 했습니다. 강의를 시작할 때는 그날의 수업을 기대하며 설렜습니다. 그러나 호르몬의 변화 이후, 그 설렘은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그저 직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기계처럼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말하는, 영혼은 어딘가에 두고 온 '그냥 강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낭독은 그렇게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나는 정면돌파를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강의 시간에 솔직하게 고백했답니다. 저, 갱년기예요!라고요. 그리고 맘껏 징징거렸습니다. 내가 이제 50인데 벌써 이럴 순 없는 거 아니냐,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거냐고요. 이제 시작인데 말입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랄 말들을 들었습니다. 나도 그래요, 나도요,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나보다도 아래 연배인 분도 이미 그 갱년기 증상들로 힘들게 지내고 있다고 하고요. 어떤 분은 "저는 10년째 그러고 있어요." 합니다. 아아, 다들 내색하지 않고 견디고 계셨구나. 나만 억울하게 겪는 일이 아니구나.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나만 혼자 늙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중 사소해 보이지만 아주 인상적인 말씀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평생 간다고 하던데요?



평생이라니, 평생이라니요! 그럴 순 없는 겁니다! 갱년기 증상이 이후 삶을 온전히 장악해 버린다니, 그건 갱년기 증상이 아니지요. 그냥 완전한 ‘변화’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강의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계속 생각합니다. 이런 혼란과 어려움들이 평생 간다고? 모르긴 몰라도 내 앞에 남아있을 50년 동안을, 이러고 살아야 한다고?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함을 직감했습니다. 기한도 모른 채 힘들어하고 징징거리는 갱년기 여성으로 살지, 혹은 그저 흘려보낼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나는 후자겠죠. 정면돌파 마들렌이니까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물론 이 말이 이렇게 가볍고 얕은 의미는 아니지만, 나는 종종 이 말을 붙듭니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대로 세상은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내가 나를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면 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는 것으로 여긴다면, 나는 그대로이며 갱년기가 살짝 스쳐 지나가는 것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성장을 여러 발달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수행할 발달과업이 있다고 봅니다. 갱년기는 아마 ‘중년기’에 해당할 겁니다. 성인 이후에는 세분화하지 않으니까요. 이제 생각해 보니, 노년기도 초기-중기-후기로 구분하는데 갱년기는 별도로 구분조차 하지 않다니, 좀 섭섭합니다. 그래요, 좌우지간 갱년기는 하나의 발달단계에 불과하다고 결론짓겠습니다. 발달단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것이 피하고 싶은 갱년기라 해도,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지요. 하지만 평생 지속할 순 없습니다. 평생 갱년기 증상이 있다면 그건 갱년기가 아니라 성품과 체질이 완전히 변한 거라고 할 수밖에요.



나는 다르게 겪기로 했습니다. 흘려보내기로 했습니다. 피할 수 없지만 머물게 할 수도 없는, 흘러가는 강물처럼, 뺨을 스치는 바람처럼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때로 바위를 치는 급한 물살이거나, 머리카락을 온통 산발로 흩어버리는 돌풍이라 해도, 잠시뿐이라는 걸 기억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나는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습니다. (물론 갱년기를 소재로 해서 말입니다.) 평정심을 되찾았습니다. 나는 발달과업을 수행 중이다,라고 마음에 새깁니다.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 있겠습니다. 아, 잠시만요, 지금 또 그 돌풍인가요?! 휘이익~ 콰아아~~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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